동화 속으로 1
나는 1990년대 후반에 중동(중앙) 아시아 지역으로 갔는데, 그 지역은 그때까지 인터넷이 잘 구축되어 있지 않았고, 한류란 것도 없었기 때문에 현지인들은 동양인을 보면 무조건 "중국인? 일본인이냐?" 물었다. 그럴 때면 나는 항상 "한국인"인 것을 몇 번 강조하였다. 그러면 현지인들은 “가라테? 쿵후 할 줄 아냐?”라고 한다. 나는 “가라테, 쿵후가 아니라, 태권도를 할 줄 안다"라고 하면서 간단한 발차기 시범을 보이곤 하였다. 시범 후에는 당연히 온갖 박수갈채와 환호를 받게 된다.
나는 그 당시 도시 외곽에 살고 있었는데, 우리 집으로부터 걸어서 5분 거리에 우리나라 60,70년대 분위기의 시골이 있었다. 그곳에는 잔디로 덮인 넓은 공터가 있고, 늘 공을 차는 아이들로 차고 넘쳤다. 어느 날 저녁 무렵, 한국 친구와 함께 흰 태권도 도복을 입고 공터로 갔다. 그날은 어찌 된 것인지 아이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천천히 공터 주위를 뛰기 시작했고, 3바퀴를 뛰고 있을 때 즈음 동네 아이들(나이 5~8세 정도 되는) 몇 명이 우리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십여 명의 아이들로 늘어났다. 우리는 몇 바퀴를 더 뛰고 멈추었는데, 뛰는 것을 멈추자 아이들은 우리 주변을 에워싸고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우리가 어디서 왔으며, 어느 나라 사람이고, 지금 어디서 살고 있는지? 그리고 왜 흰 옷을 입고 이렇게 뛰고 있는지?
초롱 초롱한 눈빛과 호기심으로 가득 차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나는 장난기가 발동하여 이렇게 대답했다. “얘들아 우리는 하늘에서 왔어, 우리는 하늘에서 온 천사야” 이 말을 들은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장난치지 말라고 하였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내 말을 믿지 않았지만, 점차 나의 설득력 있는 논리로 설명하자 분위기가 아주 진지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하였다. 나의 논리는 이러하였다.
“너희들 이렇게 생긴 사람 본 적 있니? 그리고 이런 옷을 본 적이 있어?” 당연히 아이들은 “아니”라고 했다. 나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우리가 동양인들처럼 생긴 것은 방금 중국에서 와서 그래, 천사들은 어느 나라를 가든 그 나라 사람처럼 변하거든, 아직 우리가 중국인처럼 보이는 것은 조금 전에 거기서 왔기 때문이야, 곧 점점 너희들처럼 변할 거야, 그리고 우리가 지금 뛰고 있는 이유는 하늘을 날기 위해 준비운동 하고 있는 거지, 우리 천사들은 날개가 워낙 커서 준비 운동을 해야 펼칠 수 있거든, 우리가 입은 흰 옷 안에 아주 얇은 날개들이 차곡차곡 접혀 있어;”
장난치던 아이들이 나의 진지한 모습과 논리적인 답변에 설득당하며 점차 나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몇 가지 질문을 더 하였다. “그럼 천사님 이 운동장에서 날개를 펼치고 날 수 있어요? 그리고 오늘 날아갔다가 언제 다시 와요?” 나의 대답은 이랬다. “이 운동장에서 날개를 펼치면 순간적인 큰 충격이 발생해서 너희들이 다칠 수 있어, 언덕 위에서 날개를 펼쳐야 바람을 타고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거든, 그리고 오늘 이 마을을 떠나면 아마도 200년이나 300년 후에 다시 올 수 있을 거야”
그러자 아이들은 아주 아쉬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그럼 천사님이 날아가는 것을 볼 수 없군요. 천사님과 내일 다시 만나고 싶은데”
나는 마지막으로 이 말을 남기고 떠났다. “우리가 날아가는 모습을 여기서 볼 수 있을 거야, 우리는 저 위 언덕에서 날개를 펼 거야, 그러니 우리를 따라오지 말고 여기서 지켜보고 있어, 지금 떠나면 너희 손자들의 손자들 때에 다시 올 수 있을 거야, 그러니 나중에 너희들이 크면 자녀들에게 천사들을 본 것과 천사들이 다시 올 거라는 말을 꼭 전해주어야 해 알았지?”
아이들은 모두 아쉬워하는 눈빛으로 “예, 알았어요, 잘 가세요’라고 대답했고, 우리는 천천히 집이 있는 언덕 쪽으로 뛰어갔다.
지금도 순진한 시골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이 내 기억 속에 생생하다. 그 아이들은 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동화 속, 상상의 날개를 펼쳤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