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數)가 어떻게 세상을 지배하는지 보라
인류는 모두,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수천 년 동안 뭔가의 지배를 받고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지금까지 인류를 지배하는 것이 사상이나 종교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인류를 지배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피타고라스가 확실하게 정리해 주었다. 그는 기원전 6세기경에 살았던 사람으로, 만물의 원리는 수(數)라고 주장하였다.
이 주장은 고대뿐 만 아니라, 오늘날도 인류의 정신세계를 장악하고 있는데 거의 종교적 수준이다. 오히려 수(數)는 종교를 뛰어넘어 사상과 종교들을 지배하고 있다. 한마디로 종교 위의 종교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이 수(數)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는 이유는 모든 것의 시작과 과정, 결과가 수(數)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수(數)에 의해 탄생하여 수(數)에 의해 움직이고, 공산주의(사회주의)는 수(數)를 하향 평준화를 시도하다가 실패했다. 우리가 어떤 체제 안에 살고 있던지 수(數)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다.
오늘날의 과학문명은 더욱 그렇다. 이 과학문명은 수(數) 그 자체이다. 과학을 신봉하는 자들은 수(數)를 숭배하는 것과 같다. 고도로 발달된 과학 문명을 일으키는데 일등 공신을 한 것이 컴퓨터이다. 이 컴퓨터는 이진수(數)로 만들어졌다. 수(數)는 문자체계 중의 하나인데, 이것에 대해 '유발 하라리'는 자신의 저서 '사피엔스'에 이렇게 말하고 있다. <쓰기는 인간의 의식을 돕는 하인으로 탄생했지만, 점점 더 우리의 주인이 되어 가고 있다.>
현대 문명은 어린아이에서부터 노인, 학생에서부터 직장인에게 까지, 모두 수(數)의 통제 하에 살아가고, 수(數)에 의해 모든 가치가 결정된다. 어떤 때는 수(數)가 많으면 행복하고, 어떤 때는 수(數)가 작으며 행복하다. 수(數)의 성격에 따라 인간의 행복이 좌우되는데, 학생은 높은 점수를 받으면 좋고, 직장인은 월급을 많이 받으면 행복하다. 반면 경찰에게는 범죄의 수가 적어야, 소방관에게는 화재의 수가 적어야 행복하다. 인생에 있어서 수(數)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예를 들고자 하면 끝이 없다.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하라, 다득표가 승리한다, 비싸다/싸다, 명품/짝퉁, 가깝다/멀다, 실적이 많다/작다. 많이 모였다/작게 모였다. 풍성하다/초라하다. 많이 벌었다/작게 벌었다, 잠이 안 올 때도 수를 세고, 시간도 수(數)에 의해, 음악도 주파수(數)에 의해, 돈이 많은 사람은 많은데로, 적은 사람은 적은데로, 모두 수(數)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