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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밭의 환상

잔디밭에 대한 환상

by 로진

우리는 때때로 잔디밭에 대한 환상에 젖는다. 특히 중년의 부부는 언덕 위에 탁 트인 풍광이 있고, 현관 앞에는 연녹색의 잔디가 깔려 있는 전원주택을 상상한다. 십 수년 전 우리나라 대중가요 중에 이런 비슷한 가사 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실 우리나라는 초원이 거의 없어서 상상하기 힘들지만 말이다.


우리들의 이러한 잔디밭의 환상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중앙아시아 초원에 살고 있는 유목민들 사이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이런 환상들, 어차피 초원에 살고 있는 유목민들은 천연잔디 위에 텐트를 치고 일상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우리 같은 정주민들처럼 잔디밭에 대한 환상은 없다. 그들은 수 천년 전부터 조상 대대로 잔디밭에서 태어나, 잔디밭에서 살다가, 잔디밭에서 죽어, 잔디밭에 묻힌다. 한마디로 말해서 잔디밭은 그들의 삶, 그 자체인 것이다.

우리의 잔디밭 환상은 16세기 프랑스 왕국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점차 잔디밭은 귀족들의 상징이 되어갔고 후에는 자본가들의 전유물이 되었으며 오늘날은 선진국 중산층들의 필수품이 되었다. <호모데우스, 유발하라리> 이 얼마나 흥미로운 문화적 차이인가?


우리 정주민들은 잔디를 관리하기 위해 돈을 드려 여러 기계를 사고 시간을 들여 잔디를 깎고 마르지 않도록 수시로 물도 주며, 때로는 약을 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날아다니는 각종 벌레들로 인해 괴로워하다가 결국에는 잔디를 깐 것에 대해 엄청 후회를 하고, 어떤 사람은 잔디를 모두 걷어내고 다시 시멘트로 덮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는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잔디를 깔지 말라고 조언까지 한다.


반면 유목민들은 잔디를 관리하려 하지 않는다, 아니 관리할 수도 없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의 천연 잔디를 어떻게 관리하겠는가? 그들은 관리하려 하지 않고, 잔디 그 자체를 그냥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삶을 잔디와 함께 누린다. 그들은 잔디 위에서 말을 타며 공놀이, 활쏘기, 사냥 등등을 하며 인생을 즐긴다. 고통스러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초원(천연잔디)은 유목민들의 상징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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