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살리는 그림이야기
*이 글에 담긴 내담자의 사례는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하였으며 하늘이(가명)의 이야기는, 자신과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본인의 흔쾌한 허락을 받아 쓰였습니다.
'선생님. 이 나무는 시커멓게 불에 타서 부러진 나무에요.
모습도 거의 없어지고 있어요.'
이제 20살을 갓 넘긴 하늘이(가명)가 나를 처음 만나서 캔버스 위에 그려낸 그림은, 가지가 앙상한 채 불에 타버린 한 그루의 나무였다. 그리고 표정이 없는 사람. 눈,코,입을 하나도 그리지 않은 얼굴 없는 사람의 형태들이었다.
가족이 누구인지 물어본 질문에는 쉽사리 답을 하지 못하고 한참을 망설이다 겨우 입을 땐 하늘이는
'가족? 이요..? 음.. 서류상으로는 지금 같이 사는 아빠겠죠.
그러나 제가 의지하고 진짜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아요.'
초등학교도 입학하기 전, 어린 하늘이는 너무나 일찍 가족의 울타리를 잃고 세상에 홀로 던져졌다. 부모의 이혼, 그리고 할머니 손에 이유를 모른 채 맡겨져 자라나야 했던 어린 시절. 아빠의 가정 폭력으로 두 딸을 두고 어쩔 수 없이 이혼을 선택하고 돈을 벌러 나가야 했던 엄마. 자주 오지 않는 엄마와 연락이 끊긴 아빠 사이에서 하늘이는 가슴 한 구석에 자신을 버렸다는 증오와 분노로 가득했고, 한편으로 늘 엄마를 향한 지독한 그리움의 양가감정으로 뒤섞여 있었다.
결국 해결되지 않은 감정들은 깊은 우울감으로 번져 수없는 자살 충동으로 이어졌고, 스스로 정신과 폐쇄병동으로 찾아가 입원을 해야만 했다. 규칙적으로 통제된 곳에서 치료를 받으며 다시 삶의 빛을 찾고자 하는 의지가 생겨난 즈음, 의사 선생님의 권유로 나에게 까지 오게 되었다. 하늘이는 퇴원 후 주기적인 정신과상담, 약물치료, 미술치료를 병행하며 빛을 잃은 무채색의 마음을 밝히려는 의지를 보였다.
매일 15알이 넘는 독한 약을 먹고 힘든 신체적 고통을 이겨내며면서도, 한 번도 지각없이 미리 와서 90도 인사를 하며 방긋 웃어주는 하늘이를 볼 때면 그녀가 가진 무거운 진단명조차 잊게 될 정도였다.
<잔소리와 엇갈린 사랑 사이 어딘가>
하늘이는 일주일의 대부분을 집에만 머물렀다. 아빠와는 퇴근 후 잠깐 저녁 먹을 때, 병원에서 마주하는 의료진, 그리고 미술치료 하는 날을 제외하곤 만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친구들은 아주 가끔 한 달에 한번 정도 만나는 게 타인과의 접촉이 전부였다. 그래도 다행인 건 퇴원 후 엄마를 주기적으로 만나서 밥을 먹는다고 것이다. 엄마를 만나러 간다고 하는 날이면, 하늘이의 얼굴에는 설렘과 기다림이 여실히 드러났다. 엄마를 만나면 미술치료 때 그렸던 그림도 보여주고 에피소드도 전할 거라며 종알종알 떠드는 모습은 영락없는 어린아이 같았다.
오랜만에 엄마를 만나는 날이면 하늘이는
' 우리 예쁜 딸, 요즘 좀 어때? '라고 그저 일상의 다정한 안부를 물어주길 바랐다. 하지만 딸을 자주 보지 못하는 미안함과 애틋함은 늘 엄마의 입을 통해
' 옷을 따뜻하게 입어라 ', '방 청소를 잘해라' 저녁에 늦게 먹지 마라. ' 등 걱정의 말들이 먼저 튀어나오게 되었다. 엄마의 맘을 알 리 없는 하늘이에게 그 말들은 그저 차가운 지적과 잔소리로 느껴졌다.
엄마를 향한 기대했던 따뜻한 마음이 다시 실망으로 이어져 분노가 폭발해 밥을 먹다가 뛰쳐나와서 집으로 가는 경우들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런 일을 겪고 연구소에서 하늘이를 만나는 날에는 오자마자 엄마에 대한 원망을 마구마구 쏟아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하늘이 엄마의 가슴속에 딸을 향한 사랑이 얼마나 깊게 자리하고 있는지를. 그저 감정의 표현이 서툴어 하늘이에게 다정하게 말을 꺼내기가 어려운 것이지 절대 하늘이에 대한 사랑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엄마도 노력을 해 보겠다고 늘 말씀을 하시지만 쉽지도 않은 것도 충분히 이해한다.
나는 미술치료를 통해 하늘이가 엄마의 서투른 언어 속에 담긴 진짜 사랑을 번역할 수 있도록 돕고 싶은 마음이 점차 커졌다.
<숲 속의 하늘이의 나무>
우리는 8개월이 넘는 긴 시간 동안 다양한 매체를 통해 수없이 많은 마음의 잿더미를 걷어냈다. 버림받았다는 상실감과 분노를 다독이고, 엄마의 아픈 선택을 한 명의 '여자'이자 '어른'의 입장으로 이해하기까지 하늘이는 수없이 울고 또 아파했다.
다행히 시간이 쌓여가며, 하늘이는 자신을 위해 기꺼이 치료비를 내어주고 눈물로 걱정하는 엄마의 진심을 조금씩 읽어내기 시작했다. 또한, 곁을 지키는 아빠의 투박한 사랑도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다. 조금은 무뚝뚝하게 먹을 것을 사다 주고, 대화가 많지 않은 식탁이지만 늘 저녁 약속을 잡지 않고 딸과 마주 앉아 밥을 먹어주는 아빠. 조용히 병원 진료에 동행하며
"그동안 혼자 병원 다니느라 애썼다"
라고 툭 던지듯 건네는 아빠의 위로에 하늘이의 얼어붙었던 마음도 조금씩 녹아내렸다.
그렇게 하늘이는 엄마의 잔소리도 사랑의 소리로 이해하려 하고, 아빠의 무뚝뚝함 속에 숨은 온기를 느끼며 부모님과의 엇갈린 주파수를 맞추려 노력하는 법을 조금씩 배워갔다. 그러던 어느 회기 날. 준비된 매체 중 수채화 물감을 선택을 하며 종이에 가운데에 물감을 겹겹이 덧칠한 아주 굵고 단단한 나무 한 그루를 그렸다.
"선생님, 이 나무는 뿌리가 어마어마하게 깊은 나무예요.
웬만한 태풍이 와도 절대 꺾이지 않고 넘어지지 않아요."
그리고 그 튼튼한 나무를 '인적 없는 깊은 숲 속'에 홀로 두고 싶다고 말했다. 누군가 건드려서 망가지거나 가지를 꺾어가지 않도록,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 알아서 생존해야 한다고. 집 안으로 들여와 사람에게 의존하며 영양제를 맞고 자라는 건 생존이 아니라고 말하는 하늘이의 목소리 저편에는 일찍부터 안전한 울타리 없이 홀로 세상의 매서운 비바람을 견뎌내야 했던 아이의 묵직한 고단함이 묻어났다.
"하늘아, 이 나무를 바라보니 누가 떠오르니? "
나의 질문에 잠시 말문이 막힌 듯 그림을 빤히 들여다보던 하늘이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눈시울이 붉어지고 있었다.
"다시 보니까... 이거 하늘이 나무네요. 아니요, 하늘이에요. 근데 이 나무한테 너무 호된 것 같아요. 나무는 속으로 이 나무도 누군가 적당한 때에 물도 주고, 영양제도 놔주고, 보살펴주길 바랐을 텐데. 날 혼자 두고 가지 말라고 외치고 있었을지도 몰라요."
어린 시절부터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기댈 곳도 없이 버텨온 시간들. 강한 척, 괜찮은 척, 누구도 보호해 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해서 스스로 강하게 자신을 만들어야만 살 수 있었던, 하늘이 안의 어린 하늘이를 마주하며 소리 내어 울기 시작한 직면의 시간이었다. 비로소 자신의 진짜 외로움을 껴안아 주던 기억에 남은 순간이었다.
<초인적인 힘을 가진 그림>
하늘이는 일상 곳곳에서 완벽주의와 '통제'라는 방어기제로 나타나곤 했다. 쓰던 물건은 어긋남 없이 그 자리에 반듯이 있어야 했고 일렬로 똑바르게 두어야만 직성이 풀렸다. 물감을 짤 때도 반듯하게 가로로 짜놓은 뒤 가로선만 사용하여 캔버스를 채웠 나갔다. 불안하고 낯선 세상에서 하늘이가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내 눈앞의 작은 세상이라도 내 마음대로 완벽하게 통제하고 줄을 세우는 것이었을 생각되었다. 틀에서 어긋나면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하지만 함께 작업하는 시간들이 누적이 되면서 조금씩 변화가 찾아왔다. 도착하면 먼저
'오늘의 마음의 색 알려 드릴게요'라고 말하며, 하늘색, 분홍, 노란색 아크릴 물감을 골라 눈앞에 두었다. 붓도 자신이 주체적으로 큰 붓으로 골라 자신 있게 캔버스 위에서 붓질을 슥슥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았던 물감의 번짐을 보이자
"선생님! 물감이 마음대로 섞였는데 마치 해가 뜨는 수평선 같아요. 위에는 사랑거리는 바람이 부는 하늘이고, 아래는 제가 딛고 설 수 있는 단단한 땅이에요! 색이 섞여서 나오는 우연의 색들이 너므 맘에 들어요."
조금만 선 밖으로 다른 색이 침범해도 다시 그리고 지우며 반복했던 하늘이가, 처음으로 통제를 벗어난 '우연의 아름다움'을 마주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순간이었다. 작업을 이어가며 하늘이가 말했다.
"진짜 신기한 게 뭔 줄 아세요?
그림에는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초인적인 힘'이 있는 게 분명해요.
저도 사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림을 그리고 나면 정말 마음이 편해지거든요."
나를 향해 반짝이는 눈으로 말하며,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무기력하게 누워있는 대신 스스로 '지금 이 순간의 오늘의 마음 색깔'을 찾는다고 말했다. 물론 피나는 연습을 통한 결과이긴 하다. 연구소를 오지 않는 날에는 일어나서 마음의 색을 찾아 문자로 오늘의 감정의 색을 골라 한 문장으로 보내는 연습을 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아침에 눈을 뜨면 제 마음이 꼭 똥색이나 칙칙한 회색 같았어요. 그런데 요즘엔 매일매일이 노란색, 분홍색 같아요. 몽글몽글한 솜사탕 같달까요? 푸딩? 딸기 요거트 같은 거요. 제가 먹는거 좋아하니 주로 먹는 것에 비유가 되긴 하네요( 웃음) 그럼 어때요? 제가 좋아하는 거잖아요.
그리고 땅만 보고 다녔는데 연구소 오는 길에 고개를 들면 파란 하늘도 예쁘게 보여요."
회색빛 우울에 갇혀 암막 커튼으로 빛을 막은 채 침대 밖을 나오지 못하던 아이가 스스로 분홍빛 솜사탕을 떠올리며 환한 미소 짓는 순간, 제 가슴속에서도 뜨거운 뭉클함이 번져갔다.
최근에는 하늘이가 그 '초인적인 힘'을 일상으로 가져간 일도 있었다. 연구소를 오는 길에 피곤하고 스트레스가 많았던 날, 예전 같았으면 우울의 바다로 깊숙이 가라앉았을 텐데 스스로 약국을 향했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주황색 비타 음료'를 꺼내 마셨다고 한다. 그 순간 자신에게 필요한 에너지, 희망을 상징하는 주황색을 스스로에게 처방한 뒤 나에게도 건네며
"선생님도 얼른 에너지 채우세요. "
라며 이제는 나까지 챙기는 마음의 여유까지 생겨났다. 사람의 눈코입조차도 그리기 어려웠던 하늘이가 이제는 무기력한 시간들을 지나 이젠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는 법을 터득하며 한 발짝 세상으로 나오고 있었다.
하루 10분도 걷기 힘들어 침대에만 누워있던 하늘이는이제 매일 1시간씩 땀을 흘리며 동네를 산책도 한다. 흠뻑 땀을 흘리고 나면 오히려 몸에서 살아갈 힘이 솟아난다고 웃기도 한다. 이 놀라운 변화 앞에서 하늘이의 어머님을 뵙는 날이면 제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연거푸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고개를 떨구셨다.
'선생님 감사해요. 선생님이 우리 하늘이를 살렸어요.
우리 하늘이가 요즘 너무 밝아졌어요. 전화도 자주 오고 문자도 자주 보내고
감사하고 또 감사해요.'
<언제든지 괜찮아, 여긴 너의 숲이니까>
하늘이와 나는 천천히 종결을 향해 걷고 있다. 도화지 위에서 실수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아"라는 관대함을 알고 , 하늘이를 멀리서 지켜주는 엄마와 아빠의 존재도 인정하게 되었다. 가끔 마음이 흔들려도 '그러려니' 하고 넘길 줄 아는 단단한 여유를 갖게 된 하늘이. 이제 곧 따뜻하고 안전한 연구소 문을 열고, 자신의 두 발로 당당히 사회라는 더 큰 숲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언젠가 독한 15알의 약을 툭 끊어내고, 학교도 무사히 졸업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 듣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하늘아, 세상에 나가서 지치고 힘들면 언제든 달려와도 되고 기대어도 돼.'
지독한 아픔을 이겨낸 하늘이에게 결코 무너지지 않는 안전한 숲 하나쯤은 꼭 만들어 주고 싶다.
긴 시간의 미술작업을 통해 형태도 알아보기 힘든 불타는 나무속에서, 스스로 푸른 숲을 일궈낸 하늘이에게 결코 무너지지 않는 안전한 숲 하나쯤은 꼭 만들어 주고 싶다.
그리고 오늘도 나의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하늘이가 결국 마주하게 된 분홍빛, 노랑빛 그림의 기적을 빌려 다정한 위로를 건넨다. 언젠가 당신의 마음속에도 분명, 칙칙한 잿빛을 밀어내고 파란 하늘을 칠해줄 '초인적인 힘'이 부디 닿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