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빛
'안녕하세요. 선생님.
내일 만다라 수업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어요.
참석 가능하시면 연락 주세요.'
너무나도 듣고 싶었던 워크숍이었다. 빠르게 마감되어 아쉬워하며 다음 해를 기약했었는데, 기적같이 누군가 1명의 취소가 생겼다. 2025년 새해부터 운이 좋다.
첫 수업은 미술학원 수업 일정으로 당장 조절이 어려워 둘째 날부터 참여하게 되었다. 포기하고 아쉬움이 너무나 컸었던 시간이었는데 드디어 나에게 기회가 왔다. 떨리지만 잘해보자.
두근두근, 참여한 선생님들과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공간은 아늑했고 그들은 나를 따듯하게 반기는 분위기이다. '치유로서의 그림' 책을 교수님께 선물을 받고 어쩌다 보니 교수님 옆자리에 앉아 수업을 시작했다. 너무나도 떨린다!
반갑습니다. 교수님, 그리고 선생님들.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나의 첫 만다라 여행이 시작되었다.
Mandala
만다라: 고대 산스크리트어, Manda(본질, 중심)+la (소유, 성취)
'마음속에 참됨을 갖추고 있음.' 청정한 마음, 심상
사전적 의미: 원(圓)/중심과 원주로 구성, 동그라미
만다라 작업은 내면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는 자신의 본성인 지혜의 끈을 잡고, 변화되어 돌아올 것을 믿는 자기와의 만남이며, 만다라 그리기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다시 출발하는 정신의 산책길, 내면 여행이다(정여주, 2016).
만다라 작업을 통해 내면을 바라보는 첫 시간, 낯선 공간과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시작된 작업은, 낯가림 탓에 주변을 의식하며 마음 깊이 몰입하기 어려웠다.
‘마음에 색깔이 있을까?
마음은 어떤 형태의 모습일까?
그 마음을 꺼내어 눈앞에 두고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오래전부터 이런 질문들과 마음에 두고 함께 살아왔다. 감정의 색을 깊이 들여다보고 싶었고, 누군가
그 색을 읽어 나에게 방향을 제시해 주길 바랐다. 호기심이 많았던 나는 나의 감정뿐만 아니라 타인의 감정, 행동, 목소리, 그리고 주변 환경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보이고 들리는 세상의 수많은 감정들이 얽히고설켜, 때로는 나를 괴롭히기도 했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의 중심에는 엄마의 명랑함과 긍정, 아빠의 부드러움과 차분함을 고루 물려받아 그 시선으로 중심을 잡고 서 있었다. 학창 시절 사랑과 안전한 부모님의 둥지에서 보호를 받으며 지내다 조금 이르게 서울로 상경하여 세상 밖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튼튼하게 뻗어 나가던 나무의 가지들은 둥지를 떠나자마자 흔들리고 길을 잃었다. 안전한 부모님의 울타리를 벗어나 마주한 서울은 모든 것이 두렵고 불안했다. 아무도 없는 낯선 도시는 차갑고 불투명한 회색빛 안개 같았고, 서늘한 파란색으로 다가왔다.
내가 지탱하고 그려온 감정의 밭은 어느새 알 수 없는 마음의 이야기들이 차오르고 고통으로 변해 깊은 곳에
오래도록 빠져 있었다.
오랜 시간 그리움과 불안 속에서 말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감정들을 표현하기에 나에게 오직 그림은 하나의 감정의 해소 통로였다. Claudia Bauer(2007)는 프리다 칼로의 예술관을 이렇게 전한다.
"나는 다른 수단으로는 도저히 표현되지 못하는 것들을 그림을 통해 표현할 수 있었다. (…)
내가 그리지 않으면 견딜 수 없기 때문에 그린다는 것과, 내게 떠오르는 생각이 있으면 이를
주저 없이 그림에 옮긴다는 것이다".
이 말은 마치 내 마음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했다. 나 또한 말로는 풀어낼 수 없는 마음의 형태와 색을 그림과 색을 통해 말하며 깊은 치유와 안식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그림으로 마음을 붙잡으며 성인기를 보내며 방황의 시간을 보내다가, 나는 결국 만다라와 마주하게 되었다.
작업은 하얀 원형 종이 위에 조심스레 분홍, 노랑, 보라의 색들이 겹겹이 얹히며 뒤섞었다.
원형 안의 주를 이루는 분홍과 노란색은 낯섦 속에서 느낀 설렘과 따뜻함이며 나의 마음에 온기를 찾고자 하는 투영이다. 마음속의 거침과 부드러움이 동시에 공존하는 감정의 결을 아크릴을 두텁게 해서 질감표현으로 나타냈고 동시에 그 위를 덮은 따뜻한 파스텔톤 색들은 부드러운 위로를 갈망하는 나의 마음이다.
그리고 겹겹이 쌓인 틈 사이로 보이는 내 속의 깊은 보라색의 충은 내 안 깊은 곳에 머물고 있는 차분함, 혹은 아직 세상 밖으로 온전하게 꺼내지 못한 어두운 감정이다.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워크숍을 통해 나를 짓누르던 가장 어두운 감정의 밑바닥이 결코 빛 한 점 없는 컴컴한 어두운 검정은 아니었다. 작업에 빛을 비추니 작업한 색들이 오묘하게 섞이며 전체가 빛을 머금고 있는 듯하다. 나의 어둠은 칠흑 같은 절망이 아니라, 또 다른 치유의 빛을 품기 위해 잠시 웅크리고 있는 깊은 심연이었던 것이다.
아직은 마음을 온전히 열지 못했지만 지금의 나에게, 더 숨겨진 마음의 색은 어떤 모습일까?
첫날, 낯섦 속에 내가 좋아하는 색과 마주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한층 가벼워졌다.
심한 불안과 혼란 속에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만다라 그림에 더 끌리며, 만다라를 그리는 과정 중에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경험한다(Henzler & Riedel, 2003; 정여주, 2016, p.35 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