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차 미술학원 원장이 미술치료 공부를 한 이유

타인의 삶을 위로하다 진짜 나를 만난 시간

by 유리

"원장님, 저 오늘은 그림 그리지 말고 원장님이랑 이야기만 하다 가면 안 될까요?"


20대 중반, 대학을 갓 졸업하고 홍대 앞에 화실을 열었던 앳된 원장 시절. 나보다 훌쩍 인생 선배였던 30대, 40대의 언니 오빠 수강생들은 종종 오자마자 이젤에 앉지 않고 내 앞의 의자를 바짝 끌어당겨 앉곤 했다.

남편 이야기, 시어머니와의 갈등, 차마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가족의 비밀과 팍팍한 직장 생활의 고단함. 그들은 마치 아주 오랫동안 참아왔던 숨을 토해내듯 내게 속마음을 쏟아냈다. 생각해 보면 어릴 적부터 그랬다. 사람들은 묘하게 내 곁에 와서 자신의 가장 깊고 아픈 이야기들을 털어놓았다. 누군가 마음을 털고 일어나면, 또 다른 사람이 기다렸다는 듯이 내 앞에 앉아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어른들의 세상을 전해주기도 했다.


'나는 전문 상담가도 아닌데 왜 다들 나를 찾을까?'


어렸던 내가 인생의 정답을 알 리 없었지만, 나는 온 마음을 다해 그들의 흔들리는 눈빛에 귀를 기울였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때로는 같이 눈시울을 붉히며 들어주었을 뿐인데 사람들은 내 앞에서 무거운 마음의 짐을 훌훌 벗어던졌다. 그들의 입을 통해, 나는 아직 가보지 못한 수많은 세상의 기쁨과 슬픔을 온몸으로 통과하며 어른이 되어갔다.

그렇게 '좋은 자리'라는 취미미술 공간을 지킨 지 어느덧 22년. 나의 20대, 30대, 40대라는 찬란한 청춘은 5번의 화실 이사를 거치며 수많은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는 동안, 1만 명이 훌쩍 넘는 어른들을 마주하는 시간으로 빽빽하게 채워졌다. 내 삶의 모든 희로애락이 오롯이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그 공간에 있었다.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 앞을 스쳐 간 수십 명의 성인들은, 각자의 세상이 담긴 스토리를 내게 건네며 그 응어리들을 스케치북과 캔버스 위에 담아냈다. 서류 뭉치에 치이고 사람에게 상처받아 잔뜩 웅크린 채 찾아온 이들, 혹은 숨 막히는 일상에서 벗어나 온전히 쉴 곳이 필요했던 이들. 각기 다른 아픔과 이유로 나를 찾아왔지만, 결국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 하나로 모인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들이 붓끝을 따라 묵묵히 색을 칠하며, 서서히 굳은 표정을 풀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마법 같은 순간들을 수십 년간 매일같이 목격했다.


"원장님, 그림이 저를 살렸어요."

"복잡했던 생각들이 하얗게 비워져요. 이 좋은 걸 왜 이제야 시작했을까요?"

"한 주라도 빠지면 못 살 것 같아요. 고마워요 원장님, 오래도록 곁에 있어 주세요."


그들은 캔버스 앞에서 그저 붓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잃어버린 자신을 찾고, 삶의 에너지를 회복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안의 텅 빈 방에 타인의 슬픔과 위로의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아두는 동안, 정작 내 마음을 칠할 팔레트의 물감은 바짝 말라가고 있었다.

타인의 감정과 눈빛, 미세한 행동의 변화를 살피는 데에는 누구보다 예민한 촉수를 세우게 되었지만 정작 '나'를 바라보는 법은 철저히 잊어버린 탓이다. 분명 화가 나야 하는 상황인데 화를 내는 법을 잊어버렸다. 사람들과 어울릴 때 내 의견을 낼 수 있음에도 그들의 이야기에만 귀를 기울였고, 정작 내 아픔을 꺼내야 하는 타이밍에는 습관처럼 "난 괜찮아"라며 웃어넘겼다. 전혀 괜찮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나는 지금 마음이 아픈가? 기분이 좋은가? 슬픈가?'


너무 오랜 시간 타인의 세상에만 머물다 보니, 내 감정이 어디로 향하는지조차 모르는 바보가 되어 있었다.

자기 돌봄 없이 오직 타인을 향한 렌즈로만 세상을 보았던 22년. 어느 날 문득, 수강생들이 남겨두고 간 그림들과 물감이 얼룩진 앞치마들을 우두커니 바라보다 나는 덜컥 겁이 났다.


'타인의 삶에 색을 입혀주느라, 정작 나라는 사람은 투명하게 지워져 버렸구나.'


그 지독한 상실감과 공허함 한가운데서 주저앉아 있던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역설적이게도 내 화실에서 기적처럼 회복되어 가던 '그들의 그림'이었다.


'도대체 왜? 캔버스 위에 그려진 그림들은 그들의 마음에 어떤 작용을 하길래 위로를 받았다고 할까?'


수많은 그들의 흔적


미술치료학에서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억눌린 감정을 안전하게 밖으로 표출하도록 돕고, 무너진 자아 효능감을 회복하는 강력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그런 전문적인 이론을 알지 못했다. 그저 내가 묵묵히 들어주고 그들이 색을 칠하는 것만으로 삶이 구원받는 기적을 직관으로 느끼고 있었을 뿐이다.

나는 그 치유의 본질, 저들이 칠하는 이 '색채'에 숨어있는 근원적인 힘이 미치도록 알고 싶어졌다. 그것은 타인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곧 잃어버린 나 자신을 찾기 위한 절박한 구조 요청이기도 했다.


사실 나는 남들처럼 화려한 경력이나 수십 개의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네모난 화실에 갇혀 1만 명의 마음을 안아내느라, 정작 나를 위한 스펙 한 줄 더할 시간적 여유조차 없었다. 스크롤을 한참 내려야 할 만큼 화려한 학력과 수식어를 뽐내는 다른 강사들을 보며 '고작 미술학원 하나 운영하는 내가, 감히 누군가의 마음을 논해도 될까?' 주저하며 작아질 때도 많았다.


하지만 나에게는, 세상 어떤 종이 자격증보다 묵직하고 진짜배기인 '증명서'가 있었다. 바로 내 앞에서 눈물을 닦고 다시 웃음을 되찾은 수만 명의 어른들, 그리고 그들의 땀과 눈물이 켜켜이 스며든 셀 수 없이 많은 다양한 그림들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더 단단한 기둥이 되어주기 위해, 그리고 나를 찾기 위해 배움의 문을 두드렸다. 사실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2017년, 화실 근처의 홍익대 미술치료 대학원에 입학했지만 피치 못할 개인적인 아픔으로 학업을 중단해야만 했다. 하지만 내 안의 갈증은 쉽게 꺼지지 않았다.


돌고 돌아 2024년, 마흔다섯이라는 늦은 나이에 차의과학대학교 임상미술치료학과 석사 과정으로 다시 도전을 시작했다. 내가 그토록 찾고자 했던 방향과 해답을 그곳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낮에는 쉼 없이 화실에서 일하고, 퇴근 후에는 독서실을 끊어 밤을 새워가며 논문을 썼다. 몸은 부서질 듯 고단했지만, 마음만은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살아있었다. 그렇게 치열하게 공부해 조기졸업을 이뤄냈고, 그 해답의 끝을 온전히 마주하기 위해 마흔일곱이 된 올해, 미술치료학과 박사과정에 연이어 진학했다.


석사 시절 미술치료를 공부하며 나는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자격증 하나 딸 시간 없이 남의 이야기를 듣느라 흘려보낸 줄 알았던 그 22년의 세월이, 사실은 그 어떤 학위와도 바꿀 수 없는 나의 가장 위대한 '임상 데이터'였다는 것을. 나는 복잡한 병리적 진단명은 모를지 몰라도, 일상에 지친 평범한 어른들이 어떻게 스스로 치유의 색을 찾고 회복해 나가는지는 그 누구보다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치열한 배움의 시간은 나 자신을 향한 가장 눈부신 치유가 되었다.


평생 타인의 마음속과 그림 속을 들여다보던 내가 처음으로 내면의 밑바닥을 마주했고, 엉엉 우는 내 안의 어린아이를 마주하고 가만히 안아주었다. 나만의 감정을 명명하고, 잊고 살았던 나만의 색깔을 찾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타인의 마음을 안아주던 그 다정한 시선을 비로소 나에게로 돌리고 나서야, 나는 마흔일곱이라는 나이에 온전한 '나'를 만날 수 있었다.

내가 매일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우리 주변에는 당신과 나처럼 하루하루 묵묵히 삶의 무게를 버텨내는 평범한 어른들이 참 많다. 진단명이 없어도 치유가 필요한 수많은 감정들이 왜 특정한 색으로 위로를 받는지, 아무렇게나 칠한 붓질 한 번이 어떻게 우리 삶의 궤도를 따뜻한 방향으로 틀어주는지, 그 다정한 이유를 이 공간에 하나씩 기록하고 나누고 싶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조심스레 묻고 싶다. 오늘 하루, 당신의 마음은 어떤 색이었는가? 타인의 삶에 맞춰주느라, 정작 당신의 마음을 칠할 팔레트는 텅 비워두지 않았는가?


나는 이제 22년간 익숙해진 '미술학원 원장'이라는 명찰을 조용히 내려놓으려 한다.

대신, 팍팍한 하루 끝에 길을 잃고 웅크린 당신과 나란히 앉아 함께 색을 고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진단명도, 처방전도 필요 없다. 그저 당신이 무심코 칠한 색깔 하나에 묻은 짙은 한숨을 알아봐 주고, 얼룩진 줄만 알았던 당신의 삶이 사실은 얼마나 다채롭고 아름다운지 짚어주는 다정한 조력자.

이제 원장이라는 직함 대신 '이유리'라는 이름으로 당신 곁에 다정히 앉아, 당신이 고른 첫 번째 색깔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보려 한다. 그 길을 함께 걸어가 주길 바래본다.

늦깎이 졸업생이지만 너무나 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