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실수를 밥 먹듯이 합니다.

매일 밤, 이불킥을 하는 나에게

by 유리


"이율 고객님, 아메리카노 1잔 나왔습니다."

"네~"

"앗...! "


' ..... '


철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카페 바닥에 커다란 갈색 웅덩이가 펼쳐진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쏟아진다. 온몸이 후끈후끈 시뻘겋게 달아오르는 게 느껴진다. 방금 산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내 손을 떠나 화려하게 자유낙하(!)를 했다.


'뚜껑이 헐거웠겠지..

직원이 뚜껑을 꽉 안 닫아줬겠지?'


라고 남 탓을 해보고 싶지만, 거의 이틀에 한 번 꼴로 일어나는 일이라 그런 핑계는 통하지 않는다. 직원이 놀라서 걸레를 들고 뛰어오고, 나는 연신 고개를 숙인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치울게요!"

"아니에요, 고객님. 옷에 튀거나 다치신 곳은 없으세요?"


오히려 나를 걱정해 주는 친절한 직원의 말에, 나는 죄송하다는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며 후다닥 그 자리를 도망치듯이 빠져나왔다. 나는 왜 하루라도 조용히 넘어가는 법이 없을까. 식당에 가면 젓가락을 떨어뜨리는 건 기본이요, 멀쩡히 서 있는 물컵을 손등으로 쳐서 식탁을 물바다로 만드는 일도 부지기수다.


'하아... 이 정도면 병원에 가봐야 하는 거 아닐까? 신경계 쪽에 문제가 있나? 요즘 성인 ADHD 검사가 유행이라던데, 진지하게 상담을 예약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다. 혼자 있을 땐 그나마(?) 멀쩡한데, 이상하게도 누군가와 같이 있을 때 나는 더 실수를 연발한다. 왜 나는 타인 앞에서 유독 고장 난 로봇처럼 뚝딱거리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유가 있었다. 상대방이 앞에 있으면 나는 내 머릿속의 스위치를 온전히 '상대방' 쪽으로 풀 파워로 켜버린다. 직업적 특성인지, 아니면 타고난 기질인지 행동 관찰, 언어 관찰, 나의 모든 안테나들이 'ON'으로 켜지는 것이다.


'이 사람, 지금 기분이 어때 보이지?'

'왜 갑자기 말을 안하지?'

'오디오가 비네. 무슨 질문을 하지? 침묵은 어색해!'


우리의 뇌가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에너지의 총량은 정해져 있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그 에너지의 99%를 상대방의 미세한 표정 변화, 목소리의 높낮이, 그 속에 숨겨진 의도를 읽어내는 데 쏟아붓는다. 상담이나 수업을 하며 생긴 일종의 '직업병'이자,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고 싶다는 나의 '오지랖'이 합쳐진 결과다.

나의 에너지 분배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작 내 몸을 통제해야 할 '신체 감각 센서'로 가는 전력은 차단되어 버린다. 내 의식은 온통 상대방 쪽에 가 있다 보니, 내 손이 지금 어디쯤 있는지, 내 팔꿈치 옆에 물컵이 얼마나 위태롭게 놓여 있는지 감지할 여력이 없는 것이다.


"아, 정말요? 너무 속상했겠다!...."


상대의 말에 격하게 공감하며 위로의 제스처를 취하려던 순간, 뇌의 거리 계산 기능이 멈춘 내 손은 허공 대신 애꿎은 커피잔을 '퍽' 하고 강타하고 만다. 마음은 상대에게 가 닿고 싶었으나, 현실의 몸은 다른 곳에 닿아버린 비극. 영혼은 상대방 곁에서 울고 웃느라 바쁘고, 덩그러니 남겨진 내 몸은 주인 잃은 인형처럼 뚝딱거리다 사고를 치는 꼴이랄까.

하지만 커피 쏟는 정도는 귀여운 애교다. 내 인생에는 이 '과도한 긴장'과 ‘실수’가 만들어낸, 20년이 지난 지금도 이불을 뻥 차게 만드는 거대한 흑역사가 하나 있다.


내 인생의 암전(暗轉), 홍대 클럽 공연 사건.


20대 중반, 나는 미술 작업을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으로는 '음악인'을 꿈꾸며 직장인 밴드에 들어갔더랬다. 예체능을 두루 잘하는, 소위 '능력캐'가 되고 싶었던 나의 욕망이 투영된 선택이었다. 보컬, 기타, 베이스, 키보드, 드럼으로 구성된 'OO별'(이름도 거론하기 부끄럽지만)이라는 팀에서 나는 키보드를 맡았다. 낮에는 미술학원에서 그림을 그리고, 밤에는 홍대 연습실에서 건반을 두드리는 이중생활. 음악 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멋진 그림 그리는 키보디스트'라는 타이틀에 살짝 취해 있었다.


"야, 이번 크리스마스 공연 때 우리 팀이 찢어놓자!"


밴드에 들어간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크리스마스 정기 공연에 참여하게 되었다. 기수별로 운영되는 그 밴드는 역사도 깊고 체계도 잘 잡혀 있었다. 신생 음악인들을 실제 라이브 무대에 세워 실력을 키우는 시스템이었다.


'그래, 보여주는 거야. 우리 팀이 가장 잘할 거 같은데?'


연습도 완벽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슨 자신감으로 나는 무대에 섰던 것일까? 허허.

드디어 다가온 공연 당일. 장소는 홍대 앞 라이브 클럽.


'두근두근. 심장아 나대지 마. 터질 것 같아.'


떨리는 마음으로 리허설을 마치고 저녁 시간이 되자 관객석은 지인들과 졸업생 선배들, 다른 팀원들로 가득 찼다. 공연장은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우리 팀은 총 3곡을 준비했다. 대망의 첫 곡은 R.Kelly의 <I Believe I Can Fly>. 너무나도 유명한 명곡이다(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조용하게 시작해서 웅장하게 터트리는 전략이었다. 키보드는 초반에 잔잔한 스트링(현악기) 소리로 음을 정확히 깔아줘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았다.

'훗. 시작해 볼까?' 거만한 표정으로 악보를 보며 건반에 손을 얹었다.

밴드 사운드가 시작되는 순간, 무대 조명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화려한 핀 조명 하나가 보컬 오빠에게만 툭 떨어졌다.


'어? 뭐야?'


순식간에 내 주변은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겼다.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까 리허설 때는 이런 말 없었는데..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건반은 무대 뒤쪽 구석이라 기본 조명이 없으면 악보가 보이지 않는다는 걸, 초보인 나는 미처 몰랐던 것이다


'망했다. 악보가 안 보여!'


등줄기에 식은땀이 비 오듯 흘렀다. 나는 프로인척 하는 프로가 아니기 때문에 코드를 보고 즉흥 연주를 할 수 있는 깜냥이 안 된다. 나에게 악보는 생명줄인데, 그 줄이 툭 끊긴 것이다. 머릿속이 하얘지다 못해 투명해졌다. 내 머릿속에는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지금이라도 기절한 척 뒤로 넘어갈까?'

'감전된 연기를 해볼까?'

'아니면 소리를 최대한 줄일까? 키보드 고장남척 할까?'


손가락이 허공에서 길을 잃고 헤맸다. 당황까지 해서 잘 치던 부분도 더듬더듬 건반을 눌렀지만, 스피커를 뚫고 나온 소리는 아름다운 선율이 아니라 뚱땅거리는 불협화음의 비명이었다.

설상가상으로 가장 중요한 파트가 다가오고 있었다. 양손을 쫙 펴서, '도'에서 높은 '도'까지 정확한 음정을 순서대로 짚으며 "따따따 따~" 하고 치고 올라가야 하는 클라이맥스. 내 키보드 소리가 밴드 사운드를 뚫고 명확하게 들려야 하는 부분이었다.


'여기서 틀리면 진짜 망하는데... 안 보여!'


당황한 나는 순간적으로 '소리를 줄이자!'라고 판단했다. 안 들리면 실수한 줄 모를 테니까.

하지만 당황한 내 손은 볼륨 노브를 반대로 돌려버렸다.


"......!!!


I Believe I Can Fly~~~~~.

나는 가사처럼 날고(Fly) 있는 게 아니라, 바닥으로 처참하게 추락(Crash) 하고 있었다. 내 건반 소리는 스피커를 타고 아주 크고 웅장하게 터져 나왔다. 마치 이렇게 외치는 것 같았다.


"세상 여러분!! 저 다 틀렸어요!! 제 틀린 연주 좀 들어보세요!!"


보컬 소리보다 키보드 소리가 더 커졌다는 소문이 돌 만큼, 나의 불협화음은 홍대 클럽을 가득 채웠다. 객석에 앉은 지인들의 웅성거림이 들리는 것 같았다.


'뭐야? 실수한 거야?' '어떡해...'

'그래요! 저 실수한 거 맞아요, 실수가 아니고 이건 실력인 거예요.'


도망치고 싶었다. 건반이고 뭐고 다 내팽개치고 저 무대 뒤로, 아니 지구 멘틀 속으로 숨고 싶었다. 그 3분의 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길고 끔찍한 지옥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내려온 무대 뒤. 팀의 리더였던 매니저 오빠가 다가왔다.


"유리야... 괜찮아. 수고했어."


하지만 나는 보았다. 오빠가 내 눈을 피하고 있다는 것을. 그 '괜찮아'가 전혀 괜찮지 않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집에 돌아온 그날 밤. 나는 컴퓨터를 켜고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접속했다. 그리고 대문 글을 바꿨다.



[Don't cry... 슬픔은 흐르지 않는다...★]

나의 흑역사들을 담아 둔 추억 속으로 사라진 싸이월드


유명한 채연님의 짤. 이불킥 몇번이나 하셨어요?




BGM은 K2의 <슬프도록 아름다운>으로 깔았다. '나 지금 슬퍼요'라고 온 동네방네 광고하는 선곡이었다. 일촌들이 "공연 어땠어?"라고 물어볼까 봐 방명록도 닫아버렸다. 도토리로 산 우울한 스킨이 내 마음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더 흑역사지만, 그때는 세상 모든 조명이 꺼진 것처럼 비참했으니까.

그날 밤, 나는 이불속에서 백 번의 하이킥을 날렸다.


'아.. 쪽팔려.. 바보, 멍청이, fd;lmterdㅠㄹ.ㅡㅍㄹ,히앗후웈ㅇㅎㄴ;ㄹㄹ후2ㄷ5ㅛㅗㅜ!'


온갖 말로 나를 비난하고 후회하고 웃었다 울었다,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을 내 인생의 흑역사로 남았다.

그리고 싸이월드 다이어리에 꾹꾹 눌러썼다.


'다시는, 절대로, 준비되지 않은 일은 시작도 하지 않겠다.'


그 사건 이후 나는 철저한 '준비 강박러'가 되었다. 무대에 오르기 전 조명 위치부터 확인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개인 조명을 챙기고, 악보를 달달 외우는 습관이 생겼다. 덕분에 다음 해 공연에서 나는 더 이상 어둠 속의 겁쟁이가 아니었다. 여유롭게 관객의 호응을 유도하고, 심지어 윙크까지 날리는 '무대 체질'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그날의 대형 실수는 나를 망가뜨린 게 아니라, 오히려 나를 더 단단하게 조여준 나사가 되어 주었다. 그때 그 뼈아픈 쪽팔림이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대충 때우는 아마추어의 태도에 머물렀으리라. 이후 일상에서 나는 미리 준비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학교에서 발표가 있으면 그 장소에 미리 가서 연습해 보고,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플랜 A, 플랜 B까지 짜두거나, 워크숍 장소에 항상 1등으로 도착하여 앉아서 심호흡을 하며 그날의 일정을 다시 확인하며 준비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 덕분일까. 홍대 클럽 사건 같은 대형 참사는 내 인생에서 자취를 감췄고, 새벽 2시의 이불킥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얼마 전, 존스 홉킨스 의대 소아정신과 지나영 교수의 영상을 보았다. 그녀는 자신이 ADHD임을 밝히며 이렇게 말했다.


"저는 건망증이 심하고, 정리 정돈도 잘 못해요. 잦은 실수도 하고요. 하지만 나의 약점은 강점의 또 다른 얼굴입니다. 산만한 건 호기심이 많은 것이고, 충동적인 건 추진력이 좋은 것이니까요. 나쁜 상황 속에도 뭔가 좋은 게 있다는 걸 알면, 도전할 때 조금 더 여유로워집니다."


내가 그토록 쏟고, 흘리고, 망치며 전전긍긍했던 시간들. 타인의 눈치를 보느라 나를 놓쳤던 순간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실수는 나의 결함이 아니라, 내가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다는, 타인을 배려하려 애쓰고 있다는 사랑스러운 증거일지도 모른다고 기억을 한다.

나는 여전히 커피를 쏟는다. (아마 내일도 쏟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덜 당황한다.


'아이고, 또 쏟았네. 역시 나답다. 내일은 더 조심해야지 '


어이없게 웃으며 휴지를 찾는다. 물론 커피를 마실 때는 조금 더 커피에 집중하거나 아예 튼튼한 텀블러를 들고 다니며 뚜껑을 꽉 닫아두는 '물리적 변화'를 주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큰 변화는 마음가짐이다. 흘린 커피 자국을 보며 자책하기보다는, 그 얼룩마저 내 하루의 무늬로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커피를 쏟고 얼굴이 빨개져 있을 당신에게, 그리고 여전히 덤벙거리는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괜찮아요. 쏟아진 커피야 닦으면 그만이고, 우리는 그 얼룩만큼 더 깊어질 테니까요.


혹시 당신도 새벽 2시에

오늘 이불 찰 준비를 하고 계신가요?








유물로 남아 있는 밴드 활동 사진. 공연전이라 해맑다.



그리고 예전 노트북 어딘가에서 어렵게 찾아낸.... 그날의 대참사 현장의 사진. 사진을 보면서 20년 만에 한 번은 더 이불킥을 하고 잘 것 같은 예감은 든다.


2006. 12. 25일 그날의 현장 분위기. 어둠속으로 추락하는 나




이전 01화지금, 당신의 마음은 정말 안녕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