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도 되고, 괜찮지 않아도 됩니다.
"안녕하세요, 원장님.
저는 요즘 그림이 잘 안 그려져요 "
"괜찮아요. 잘하고 있어요. 지금까지도 잘해왔잖아요, 우리 조금만 더 힘내보아요."
저는 하루동안 마주하는 수많은 이들에게 다정한 인사를 건네고 길을 잃은 마음에 힘을 심어 줍니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조력자로 따뜻한 마음을 다시 채워드리고 있습니다.
하루동안 모든 에너지를 온전히 쏟아내고 예쁜 노을을 바라보며 퇴근하며 돌아온 저녁. 도어록이 '띠리릭' 닫히는 순간, 나도 모르게 마음이 툭하니 내려오며 무장해제가 됩니다. 단정하게, 단단히 힘을 주었던 몸에는 힘이 스르륵 유체이탈하듯 에너지가 빠지는 것 같아 그대로 소파에 누워버리는 게 저의 일상의 대부분이었습니다.
몇 년 전, 유독 서툴고 지진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날이었습니다. 소진된 마음을 붙잡고 앉아 스스로 마음을 다독이며 끄적였던 글이 있습니다. '따뜻함과 서늘함의 사이' 매거진에 있는 '꽤 괜찮은 시간'이란 글입니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연다
하루 종일 갇혀있던 익숙한 냄새들이
고스란히 코끝으로 만져졌다
보조등이 다행히 어두움을 막아준다
손을 더듬어 스위치를 누른다
찰나의 순간 눈앞에 펼쳐진 텅 빈 공허를 마주한다.
아무도 없네
하루 종일 수많은 사람들과 말을 건네던
뒤섞인 언어의 조각들이 빠르게 스쳐간다
꾹 닫힌 입, 무표정한 얼굴
한숨을 잠시 크게 내쉰다
좋아하는 음악을 빠르게 골라서 크게 틀어 놓는다
집안 전체에 아름다운 소리들이 채워진다
입꼬리가 조금 올라간다
어느 순간 마음이 평온해진다
참 단순하고 또 단순한 나다
고프지 않은 배고픔에
주섬주섬 예쁜 그릇을 꺼낸다
곱게 나를 위한 한 상을 차려본다
고요한 식사 시간은 익숙하면서도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적당한 서글픔과
적당한 쓸쓸함이 치솟아 오를 때
혼자 중얼거리며 말한다
그런 거지 뭐
혼자도 아니고
함께도 아닌 우리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 두렵진 않다
마음의 조절기능 버튼을 작동하여
연약한 마음의 안정적인 지점을 맞춘다
태연하게 마음이 다시 한번 평온해진다
노트북을 꺼내든다
향이 좋은 커피를 내린다
다시 좋아하는 음악을 선곡한다
무겁게 내려앉아있던 공기들에
미지근한 생기가 깃든다
좋다
그럼 된 거지
지금 이 순간 꽤 괜찮은 시간이네
-2024. 01. 15
이 시절은 누적된 나의 고단했던 시간들인 상실의 고통을 꾹꾹 눌러 참으며 지낸 시간이며, 또한 남편의 어머님과 할머님의 죽음까지 더해져 형용할 수 없는 힘든 긴 터널을 건너는 시기였습니다.
그 시기에 남편은 서울을 벗어나고 싶어 했고 시골에 전원주택을 짓기로 하고 잠시 떨어져 주말부부로 1~2년 정도의 시간을 떨어져 지낸 기간이었습니다. 그 시간들은 서로에게 꽤 버거운 무게의 시간들이었이지만, 괜찮은 척, 괜찮은 어른인 척하는 모습으로 그저 하루를 묵묵히 살아냈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거지 뭐.'
저는 애써 힘든 감정을 누르며 이 정도면 꽤 훌륭하게 나를 다독였다고, 제법 어른스럽게 감정을 갈무리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저 괜찮다고, 지금 이 순간도 꽤 괜찮은 시간이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듯 '완벽한 연기자'의 모습으로 글의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그런데 제 글을 읽은 한 작가님이 남겨주신 다정한 시선 앞에서, 그만 단단하게 묶어두었던 마음의 빗장이 풀려버렸습니다. 그 작가님은 평소에도 저의 글을 읽어주시면서 위로와 응원을 해주신 고마운 분이었습니다.
“텅 빈 집에 들어와, 함께했던 존재들의 부재를 느끼며, 홀로 앉은 식탁에서 함께 밥숟가락 들던 존재의 부재를 느끼는 일이 한없이 쓸쓸하지만, 이를 적당한 서글픔과 적당한 쓸쓸함으로 받아들이며, 이 정도면 꽤 괜찮은 시간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기까지, 참 많은 외로움과 깊은 슬픔을 견디며 지내왔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힘겨운 속내를 감춘 채, 남들이 보기에 그럭저럭 밝고 강한 사람으로 살아내는 일이란, 고독하고 서글픈 일이지요.
브런치의 다른 글과 그림의 내용까지 다 기억을 해서 저에게 깊은 위로의 말을 남겨 주셨습니다. 핸드폰 화면 너머로 전해진 그 작가님의 글자들을 따라가며 읽어 내리다가 눈물이 터져버렸습니다. 그동안 나 조차도 외면했던 연약한 진짜 '나'에게 해주는 말인 것 같아서 소리 내어 목놓아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먹먹했던 감정의 순간들이 지금까지 큰 위로로 남습니다.
우리는 어쩌다 보니 ‘괜찮은 어른'이라는 이름표를 세기며 살아갑니다. 마음속에는 당장이라도 주저앉아 울고 싶은 어린아이가 살고 있는데, 세상 밖으로 나설 때는 '나는 괜찮다'는 단단한 갑옷과 또 다른 가면을 쓰며 나섭니다.
"나 사실 오늘 너무 버거웠어"
"나도 내가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어"
…
괜찮지 않은 말은 목구멍 밑으로 꿀꺽 삼켜버린 채 말이죠. 남들이 보기에 그럭저럭 밝고 강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힘겨운 속내는 깊은 곳에 감추어 둡니다. 하지만 아무리 단단해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분명 마음 한편에 감춰둔 쓸쓸 한과 공허함은 존재할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종종 그 감정을 바라보지 않고 오히려 도망치려 합니다. SNS 속에 타인의 모습을 보거나 , 유튜브의 세상 속에 들어가 스스로를 몰아넣으며 그 텅 빈 공허를 억지로 덮어두려 애를 씁니다. 하지만 때로는, 밀려오는 서글픔을 억지로 밀어내지 않고 가만히 마주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주 사소하고 단순한 것. 고프지 않은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내가 가장 아끼는 예쁜 그릇을 꺼내어 정성껏 한 상을 차리고, 좋아하는 음악으로 공간을 채우고, 향이 좋은 커피를 내리는 일. 어쩌면 이것은 단순히 한 끼를 때우는 행위가 아니라, 지치고 연약해진 나의 마음을 향해 내어 주는 가장 정성스러운 대접일 것입니다.
나의 쓸쓸함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그 곁에 가만히 앉아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네는 것. 그것이 제가 찾은, '적당한 서글픔을 대접하는 우아한 방법'입니다.
오늘 하루도 치열하게 살아내고 돌아와, 홀로 불 꺼진 방을 마주한 당신에게 묻고 싶습니다.
지금, 당신의 마음은 안녕하신가요?
문득 찾아오는 외로움에 마음이 너저분해지는 날이라면, 부디 그 감정을 다그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쁜 찻잔을 꺼내 스스로에게 따뜻한 온기를 대접해 주세요.
괜찮아도 되고, 괜찮지 않아도 됩니다. 무겁게 가라앉은 공기 속에서도, 우리가 스스로를 다정하게 안아줄 때 그곳엔 다시 미지근한 생기가 깃들 테니까요. 기어이, 우리의 마음에도 따뜻한 봄이 올 겁니다.
우리는, 우리 생각보다 꽤 잘 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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