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마지막 사법리스크 ‘5.1 대법원 선고’와 조희대 대법원장 탄핵
해소된 줄 알았던 이재명 후보의 사법리스크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5월 1일 대법원이 이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상고심을 유죄 취지 파기환송 선고했다. 항소심이 무죄로 선고된 3월 26일로부터 약 한 달 만에 상고심 선고가 이루어진 것이다. 모두의 예상을 깼다. 뜬금없었다.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라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심지어 대선 후보 등록 마감을 열흘 앞둔 시점이었다. 그래서 정치적인 의도가 의심된다는 비판을 받았다. 합리적이었다. 게다가 5월 2일에는 서울 고법 형사 7부에 사건이 배당되었다. 동시에 이날 서울 고법은 공판일을 5월 15일로 잡았다. 말이 안 되는 속도였다. 동아일보도 파기환송심은 서류 접수부터 판결까지 통상 한 달 이상 걸린다고 언급했다. 보수지의 예측도 빗나갈 정도로 전례 없는 속도였다.
날(日)로 계산해야 한다는 형사소송법의 명확한 문장을 굳이 시(時)로 유추해 윤석열 전 대통령을 석방했던 지귀연 판사와 대조적이다. 심우정 검찰총장은 법에 명시된 이의제기 수단 ‘즉시항고’를 쓰지 않았다.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 당시에도 영부인 김건희 여사는 정부 보안 청사에서 검찰 조사를 받았다. 출장 조사 특혜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윤 전 대통령과 이재명 후보는 대통령이었고 대통령 후보라는 점에서 사안이 중대하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은 중대성이 특혜로 이어졌고, 이재명 후보는 불이익으로 이어졌다.
물론 앞으로 대한민국을 이끌 지도자인 만큼 사안이 중대하므로 이례적인 속도가 오히려 합리적이라고 반박할 수 있다. 대통령이 되고 나면 불소추 특권으로 인해 남은 재판이 무력화된다는 사실도 힘을 싣는다. 좋은 논리다. 대법원의 재판 속도가 정치 개입을 의심케 한다는 말도 상식적이고, 대통령 후보로서의 무게를 고려한 속도라는 말도 상식적이다. 두 입장 모두 충분히 합리적이다. 이 상황에서 어느 한 쪽이 더 강하게 반응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 사건에 대해 대법원장 탄핵으로 대응했다. 이를 두고 과하다는 지적을 할 수 있다. 아무리 그래도 재판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것은 패륜적이지 않나? 이재명 후보의 대선 승리를 위해서라면 사법 질서를 무시해도 되는 것인가? 거대 야당의 힘으로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해도 되나?
우선, 이재명 후보에 대해 지난 2년 간 이어진 사법적 시도들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딴지일보에 따르면 지금까지 727일의 조사와 376회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검찰은 36회의 압수수색이라고 주장하지만, 장소를 기준으로 산정했을 때 376이라는 횟수가 나온다. 같은 날이라도 다른 장소를 압수수색 했다면 산입한 것이다. 이는 한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양이 아니다. 대장동이든, 백현동이든, FC성남이든 무엇 하나 나온 것이 없다. 3년이 지나고서야 분명해졌다. 이재명 후보라는 무고한 개인은 사법적으로 난도질당한 것이었다.
올해 3월 말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2심 재판에서 이 후보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젠 그 누구도 이재명 후보의 탄탄대로를 의심하지 않았다. 문화일보는 이 후보의 무죄 판정이 아쉬웠는지 없는 사법 리스크를 애써 긁어모아 ‘이 후보의 3대 리스크’를 정리하기도 했다. 정성스럽게 시각화시킨 것을 보니 많이 공유되길 원했나 싶기도 하다.
5월 1일 대법원 선고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기 전까지 이 후보는 유력한 대통령 후보였다. 5.1 선고는 이 후보를 향한 지난 3년의 사법 유린을 다시 떠오르게 했다. 대선 후보 등록 마감 열흘 전까지도 부당하게 대선에 개입하려 한다는 생각에 도무지 미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사법부의 부당한 처사를 더 이상 묵인할 수 없었다. 행동하지 않으면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꺼내든 카드가 대법원장 탄핵이었던 것이다.
적어도 사법부의 수장이라면 ‘대선 개입’을 의심케 하는 일을 주도해선 안 된다. 대법원장은 사법부를 대표한다. 사소한 행동 하나가 사법부의 신뢰를 좌우한다. 그럼에도 ‘대선 개입’을 합리적으로 의심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법의 질서에 불신이 생기면 국가의 근간이 흔들린다. 이에 대해 분명히 책임을 져야 한다.
신성한 재판 결과에 입을 대는 것 자체가 여전히 불경하게 느껴진다. 심지어 수장을 끌어내는 일은 패륜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오히려 사법부의 판단을 의심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행동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니 민주당의 논리가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면 괜한 죄책감을 가질 필요 없다. 아래로 내려가서 그 이유를 살펴보자.
: 집단을 하나의 주체로 보는 오류, “감시와 패륜 사이”
‘사법부의 판결’이라는 표현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좋다. ‘사법부’라는 주체가 한 개인처럼 인식되기 때문이다. 마치 통일된 가치관을 가진 한 주체가 일관된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사법부는 여러 법관의 총합이다. 그래서 같은 사안이라도 법관이 달라지면 판결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흔히 재판 결과를 절대적인 진리이자 진실인 것처럼 생각한다. 유죄가 선고되면 유죄라고 철석같이 믿어버린다. 무죄가 선고되면 죄 없는 사람이라고 단정해버린다. 법관에 따라 달라지는 판결을 과연 진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진실이 여러 개일 수 있을까? 법관도 인간이다. 자신만의 가치관이 있다. 언론에 흔들리기도 한다. 때론 판결의 대가가 걱정되기도 한다. 또한 법관도 시대의 맥락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같은 법관도 같은 사안을 과거에 마주할 때와 현재에 마주할 때 다른 판단을 할 수 있다. 그래도 법에 따라 선고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법은 불완전하다. 세상의 모든 사례를 포섭할 수 없다. 해서도 안 된다. 법이 일상의 사소한 영역까지 침투하는 것은 법의 경직도만 높일 뿐이다. 법과 현실의 빈칸은 판사의 유추 해석으로 메울 수밖에 없다. 이때 주관이 개입된다. 따라서 판결을 진실이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 판결은 해당 사건을 담당한 판사의 판단에 불과하다. 물론 법리의 틀 안에서 말이다. 적어도 온전하고 객관적인 진실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사법 불신 조장인가? 수능을 잘 친 사람은 수능 문제를 잘 푼 것이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이 사람을 똑똑하다고 할 순 없다. 성급한 일반화이다. 똑똑함의 범주는 넓고 다양하기 때문이다. 수능에 한해 똑똑한 것뿐이다. 수능을 못 쳐도 똑똑한 사람 많다. 수능을 잘 쳐도 멍청한 사람 많다. 헛똑똑이라는 표현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단어와 현실 사이의 거품을 걷어내자는 것이다. 판결은 진실이 아니다.
따라서 민주시민은 사법부의 판단을 감시해야 한다. 무조건적으로 수용해선 안 된다. 법관의 판단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문리적 해석에 매몰된 판결을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과하게 유추된 해석도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법관의 해석 방향이 나의 가치관에 부합하는지 주시해야 한다. 서로 다른 신념을 가진 개인이 각자만의 시각으로 사법부를 감시한다면 보다 공정하고 자유민주적인 사법 생태계를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당은 거대 야당이다. 국회 의석수를 과반 이상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강력한 권력이 사법부의 판단에 반기를 드는 것이 불쾌했을 것이다. ‘폭거’라는 표현이 어울려 보인다. 하지만 민주당의 논리는 충분히 공감할 만했다. 또한 국민이 직접 선출한 결과가 대형 민주당이다. 그렇다면 폭거보다 ‘정상화’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지 않는가? 폭거 같아 보이는 정상화 과정은 민주주의의 합리적인 진행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큰 권력이 어떤 대상을 비판하는 행위가 무조건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니다. 결과적으로 편향되었다고 해서 무작정 비판하는 것이 옳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이 글을 통해 비정상적으로만 보였던 대법원장 탄핵 요구가 조금이나마 이해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