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전 한국경제 주필의 정치관
매불쇼에 정규재 펜앤마이크 대표가 출연했다. 매불쇼는 진보주의 저널리즘을 표방한다. 정규재 대표는 보수의 아버지로 통한다. 서로 다른 두 세계의 만남은 많은 통찰을 만들었다.
나는 평소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을 즐긴다. 나로서는 생각해 볼 수 없었던 시각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보수주의적 관점을 가진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생각이 확장된다. 하지만 내 주변은 보수주의가 옳기 때문에 보수주의자가 된 경우가 없었다. 민주당이 싫어서. 이재명이 싫어서. 언론을 답습해서. 정치를 잘 몰라서. 그렇게 보수주의자가 되었던 친구들뿐이었다. 그래서 정규재 대표의 시각은 더욱 새로웠다. 그는 보수주의가 바람직해서 보수주의를 추구하는 분이었다. 보수에 자부심이 있는 분의 이야기는 처음이었다. 그 소감을 진보와 보수의 이야기로 풀어내보았다.
: 정규재 대표의 정치관으로 만나는 세계
보수 원로는 진보주의와 보수주의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우선 정규재 대표의 발언을 살펴보자. “보수야 말로 절차나 수단을 중요시하죠. 오히려 진보나 좌파들은 목적이 중요합니다. …(중략)… 보수는 사실 지켜야 할 덕목이 굉장히 많습니다. 보수는 사회의 기초입니다.“ 그는 ‘기초’, ‘절차’, ‘약속’, ‘질서’와 같은 단어를 나열하며 보수주의를 특징했다. 그렇다면 ‘무근본‘, ’목적‘, ’파괴‘, ’혼란‘과 같은 단어가 진보주의에 어울릴 것이다. 때론 한 문장의 정의보다 여러 특징이 대상을 잘 설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단어의 나열은 파편적이다. 이 파편을 한 데 모을 필요가 있다. 정규재 대표의 시각을 감히 나의 언어로 풀어보고자 한다.
기초
’기초‘라는 표현은 진보와 보수의 구조적 측면을 잘 설명한다. 보수가 이미 존재하고 진보가 앞으로 당기는 구조 말이다. 서로 밀고 당기면서 세상은 조금씩 나아간다. 하지만 기존하는 세상이 없다면 어느 것 하나 당길 수 없다. 아예 당긴다는 표현이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보수가 없으면 진보도 없다. 보수는 진보 이전에 존재한다. 보수는 세상의 기초인 것이다.
절차와 약속, 그리고 질서
한 사회가 기존하기 위해서는 절차와 약속이 필요하다. 이들이 모여 질서를 이룬다. 이것이 바로 기존 질서이다. 물론 이 질서가 완벽할 순 없다. 애초에 완벽이란 세상에 존재하는지조차 잘 모르겠다. 그래서 누군가는 기존의 질서에 문제 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 다만, 결함을 개선하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변화는 필연적으로 반대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병원체와 백혈구가 싸우면서 발열, 오한, 두통 등의 증상이 동반되는 것처럼 말이다. 안정된 질서는 혼란을 맞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심지어 목적을 무리하게 달성하기 위해 절차를 무시할 수도 있다. ’보수는 절차, 진보는 목적‘이라는 표현은 이런 본질을 함의하고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양면적이다. 좋은 면도 있고 나쁜 면도 있다. 다만 좋은 면이 더 많으면 좋다고 하는 것이다. 나는 진보주의자다. 진보의 나쁜 점보다는 좋은 점을 더 크게 보기 때문이다. 보수의 좋은 점보다는 나쁜 점을 강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나에게 보수주의란 ’현실주의‘, ’이기주의‘, ’계산‘, ’시장주의‘, ‘물질주의’, ’성장‘, ’본능‘, ’근시안적‘, ’즉각적‘, ‘기회주의적’, ‘결과론적’, ’단기적‘, ’피상적‘이다. 진보주의란 ’이상주의‘, ’이타주의’, ‘윤리’, ‘인본주의‘, ‘가치’, ‘분배’, ‘이성’, ‘거시적’, ‘신중한’, ‘과정’, ‘장기적’, ‘본질적’이다. 정규재 대표와는 정반대인 것이다.
그는 보수의 좋은 점으로 보수주의를 구성했다. 진보의 나쁜 점으로 진보주의를 규정했다. 하지만 나는 정규재 대표의 시각에 아주 동의한다. 내가 그의 가치관을 수용한다고 해서 내 가치관은 양립할 수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의 시각과 나의 시각은 공존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의 시각이 진보주의와 보수주의의 양면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싶었다. 보수의 늠름하고 갖추어진 인상. 진보에 앞서는 보수. 정규재 대표의 세계를 알기 전엔 할 수 없었던 생각이었다.
이 책은 보수주의에 대해 부정적인 뉘앙스로 가득하다. 나의 시각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잘못된 것도 아니다. 내 책이니까 괜찮다.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들도 본인의 책을 쓰면 된다. 그렇게 다양한 시각의 정치 책이 모여 자유민주주의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보수에 친화적인 이야기도 담고 싶었다. 내 가치관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양 진영이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세상을 꿈꾸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에 정규재 대표의 관점을 담고 싶었다. 그는 이 책을 더 풍성하게 했다. 정말 감사하다.
: 경청하는 보수, 현실적인 진보
똑똑하다는 것은 메타인지를 잘한다는 것이다. 스스로 무엇을 못하는지 알아야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본인이 무엇을 잘하는지 알아야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당의 성장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정당이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못하는지 알아야 발전할 수 있다. 그래서 상대 진영의 비판은 소중하다. 물론 정치적 의도가 담긴 비난은 거를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건설적인 비판은 집착해도 모자라다.
정규재 대표는 보수가 민주당을 ‘불만 세력’으로 규정한다고 주장했다. 국가를 어떻게 운영하는지도 잘 모르면서 무작정 비판만 한다는 것이다. 국가를 경영하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상황’도 많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요구’를 처리하는 것은 고달픈 일이다. 이런 고려 없이 트집만 잡는 진보가 아쉬운 것이다. 막상 진보 정부가 들어서면 세상이 마냥 밝아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취지만 좋을 뿐 현실성 없는 정책으로 혼란만 가중하기도 한다. 진보에게 소중한 비판이다. 새겨들어야 한다.
하지만 정규재 대표가 절대적으로 옳은 것도 아니다. ’불만‘은 진보주의의 주요한 역할이다. ‘불만’은 보수주의자의 시각이 듬뿍 담긴 표현일 뿐이다. ‘문제 제기’나 ‘지적’ 같이 좋은 단어로도 대체할 수 있다. 잘못을 지적하고 수정을 요구하는 일은 소중하다. 꼭 확실한 해결책이 있어야만 비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무책임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는 다양한 공론장과 적극적 참여를 기반으로 발전한다. 해결책 마련을 진보의 몫으로 미루어선 안 된다. 오히려 어떤 결함에 대해 손 놓고 반대만 하는 편이 더 무책임할 수 있다. 지적하는 진보를 그저 불만 세력으로 치부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진보는 현실을 이해해야 한다. 현실에 발을 붙이고 이상을 추구해야 한다. 진보의 본질이 불만으로 보일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알고 조심해야 한다. 보수를 무작정 비판해서도 안 된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면 존중할 줄도 알아야 한다. 잘한 일은 응원할 줄 알아야 한다. 수레는 바퀴 하나만으로 움직일 순 없기 때문이다. 보수도 진보의 비판을 경시해선 안 된다. 경청해야 한다. 모든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지적이 합리적이라면 일방적으로 해결책을 요구해서도 안 된다. 진보와 머리를 맞대고 함께 궁리해야 한다. 공론화를 통해 국민 참여를 적극적으로 이끌어내야 한다. 진보와 보수는 대화해야 한다. 열심히 교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