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세상이 규정되는 원리(1) 도입과 저널리즘
알다시피 책 ‘정치 사용설명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세상이 작동하는 원리’와 2장 ‘세상이 규정되는 원리’로 말이다. 그리고 이 책은 ‘정치 사용설명서’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독자가 정치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사실 1장의 주제였던 진보와 보수의 개념만 이해해도 뉴스를 보는 데 큰 무리는 없다. 이 책의 초반에서 말했듯, 정치는 우리 인간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필요하고, 이 가치관을 ‘진보와 보수’라는 틀로 쉽게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진보와 보수를 이해하면 정치의 존재론적 기반인 ‘생각의 차이’를 유용하게 정리할 수 있으므로 정치를 이해할 수 있는 근본적 힘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이다. 1장만으로 목적은 달성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2장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1장이 진보와 보수였다면, 2장에서는 저널리즘에 대해서 다룰 것이다. 저널리즘이라니. 언론사를 지망하는 학생이 아니라면, 정치를 이해하는 데 더욱 필요 없어 보인다. 하지만 나는 어쩌면 2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널리즘을 이해하지 않으면 사안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선, 1장을 읽어 정치를 이해할 준비가 되었다고 해도 새로운 소식이 없으면 배운 것을 써먹을 수 없고, 이 새로운 소식은 주로 뉴스를 통해서 받게 되며, 그 보도의 내용은 각 언론사의 ‘저널리즘’에 의해 여과되어 사실처럼 전달된다. 이처럼 2장은 오히려 1장에 우선한다. 즉, 2장은 재료에 대해 다루는 것이다.
또한 ‘저널리즘’이라는 손질법은 사안을 온전히 이해하는 데 큰 혼란을 줄 수 있는 만큼 중요하다. 이미 손질되었는데 마치 손질 안 된 재료인 것처럼 둔갑하기 때문이다. 이미 기자와 데스크를 거치면서 특정 시각이 반영되었는데 마치 온전한 사실인 것처럼 수용자가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이 사안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저널리즘의 이러한 특성이 곧 2장을 만든 이유이다. 2장은 독자가 언론 위에서 사안을 보다 다각적으로 조망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저널리즘이 도대체 무엇일까? 그렇게 중요하다면서 세 문단이 이어지는 동안 한 번도 정의하지 않은 글쓴이가 원망스러울지 모른다. 죄송하다. 다만,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위에 등장한 몇 가지 단서로 어렴풋이 이해했을 수 있다. 특히 저널리즘을 ‘여과 장치’와 ‘손질법’에 빗대었던 대목에서 말이다. 하루 동안 수많은 일이 일어난다. 내가 선생님이나 상사에게 꾸중을 들은 일부터 대통령이 G7회의에 참석하는 일까지 다양하다. 억울하게 혼난 일은 적어도 나에게 중요하다. 이로 인해 내 인간관계 울타리에서 누군가가 탈락했기 때문이다. 이 지각 변동은 앞으로 내 인생에 더 많은 영향을 줄 것이다. 이 사건이 아니었다면 조금 다른 인생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중은 이 사건에 대해 알 필요가 없다. 내 주변 사람들에게는 필요할지 모르지만 말이다. 반면 대통령이 G7회의에 참석한 일은 우리나라 국민에게 알릴 가치가 있다.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표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국민은 알 필요가 있다. 이처럼 하루 동안 수많은 일이 발생하고, 그중에서 보도할 가치가 있는 사건을 선택하는 과정이 저널리즘이다.
가치 있는 사실이란 무엇일까? 똑같은 사실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가치를 서로 다르게 평가한다. 똑같은 사실에 대해서도 언론사마다 서로 다른 수준의 가치를 매긴다. 즉, 가치는 주관적이다. 그러니 가치관이라는 표현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가치 있다고 판단한 사실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주관은 필연적으로 개입된다.
저널리즘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사안이 보도 가능한 상태에 도달할 때까지 가공하는 과정도 저널리즘이다. 똑같은 사안이더라도 기자에 따라 주목한 부분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를 대하는 관점도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첨예한 사안의 경우, 똑같은 사건임에도 진보지와 보수지의 의견이 거의 정반대로 나타나는 현상은 이러한 이유에서 기인한다. 가치 있는 사실을 선택하는 단계뿐만 아니라 가공의 과정에서도 다시 주관이 개입되는 것이다. 심지어 데스크를 거치면서 내용은 또 편집된다. 데스크는 기사가 지면에 실리기 전에 해당 언론사가 표방하는 가치에 부합하는지 검토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한 언론사에 소속된 기자들이라고 해도 각자 고유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를 일관된 가치 아래에 묶어 정리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저널리즘은 가치 있는 사실의 선택부터 가공의 단계까지 전 과정을 이른다. 가장 큰 특징은 모든 단계에서 주관이 개입된다는 것이다. 저널리즘은 사실을 보도하는 과정이 아니다. 사실을 선택 및 편집하는 과정이다. 나아가 이들이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렇기에 대중은 기본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이들이 제공하는 정보를 수용한다. 뉴스에 떴으니까 사실이라고 믿는 것이다. 뉴스에 보도되기 전까지는 공론화되지 않다가, 막상 보도가 되고 나면 다들 믿는 현상이 기성 언론의 권위를 반증한다. 그리고 뉴스를 많이 본 사람이라면, “취재가 시작되자...”라는 문장이 얼마나 만능적인지 공감할 것이다.
게다가 나는 이 권위가 기반하는 권력이 어쩌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막강하다고 생각한다. 최고 권력인 대통령도 벌벌 떨게 할 정도면, 적어도 보통 권력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만을 삼(三)권으로서 교육받는다. 심지어 현실에서는 하찮은 존재처럼 묘사된다. 일단 ‘기레기’라는 멸칭 자체가 기자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단면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출입처 기자는 검찰의 표적 수사에 이용되는 수단처럼 보이기도 한다. 기자는 그저 수단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나아가 뉴미디어 기술이 발전하면서 정보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모호해진 상황도 언론인의 위상을 떨어뜨렸다. 이처럼 현실의 여러 요소들은 언론의 힘을 가렸다. 그 권력은 여전한데 말이다. 영화 ‘미나리’에서 배우 윤여정은 손자 데이비드에게 이렇게 말한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위험해.” 이토록 위험한 언론의 권력을 언론의 특성 두 가지와 엮어 더 자세하게 살펴보자.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