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와 보수의 본질적 특성: 이상주의 현실주의
진보는 이상주의적이다. 기존의 질서에서 문제의식을 가지고 새로운 방법을 찾는다. 새로운 곳으로 걸어가야 한다. 현실에서 동떨어진 지향점. 나아가야 할 목적지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점에서 이상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애초에 기존의 것과는 거리가 있는 가치관이 존재해야 문제의식을 느낄 수 있다. 따라서 현실과는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기존의 질서에 문제의식을 느낌으로써 새로운 해결책을 도입하려 하는 진보는 이상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김대중 정부는 햇볕 정책으로 유명하다. 평화, 화해, 협력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대표되는 유화 정책이다. 보수 정부의 강경 노선과 대비된다. 이 정책의 이름은 지나가는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기 위해 노력한 해와 바람의 우화에서 유래했다. 바람은 나그네의 외투를 바람으로 벗기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나그네는 외투를 더 강하게 붙잡았다. 해는 나그네를 따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외투를 자연스레 벗도록 했다. 해는 아주 이상적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문민 정부뿐만 아니라 참여 정부와 문재인 정부 등 우리나라의 진보 정부는 ‘유화 노선’이라는 이상적 대북 정책을 일관적으로 고수해왔다. 이렇게 발상이 창의적이고 훌륭했던 만큼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방식이라는 비판도 강하다. 아무리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경제적 지원을 해줘도 툭하면 돌아서고 불쾌한 언행을 하는 북한을 보면 유화 노선이 이상적이라는 것을 단번에 느낄 수 있다. 반면 강경한 방식을 취하는 대북 정책은 전통적인 안보 개념에 부합한다는 점에서 높은 안정성을 가지므로 현실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진보와 보수 모두 대한민국을 안전하게 수호해야 한다는 공통의 목적을 가졌지만 가치관에 따라 수단이 상이해진다는 것이 신기하지 않은가? 이러한 일례는 진보 사상의 이상주의적 측면과 보수 사상의 현실주의적 측면을 잘 보여준다.
통일 이야기가 나온 만큼 북한 문제에 대해 더 설명하고 싶다. 6·25전쟁과 그 이후의 분단 부작용은 우리나라 정체성 형성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만큼 현대 대한민국 정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북한 문제를 꼭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왜 우리나라의 진보 진영 정치인은 주적이 누구냐는 질문에 대답을 피할까? 정말로 북한을 찬양하기 때문일까? 정말로 이들의 집에 가면 김일성과 김정일의 얼굴이 거실 중앙에 걸려있을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한반도 평화 정착에 대한 진보주의적 접근 방식은 상기했듯 유화적인 방식이다. 정치 실무 당사자인 본인이 북한에 대해 직접 주적이라고 발언하는 것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한반도 평화관’에 부합하지 않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외교는 북한 주적론만으로 재단할 수 있을 만큼 그리 간단치 않다. 사소한 표현 하나에도 관계가 틀어지고 붙는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큰 그림을 그릴 줄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손해인지 투자인지 구분하는 일은 전문가도 쉽지 않다. 특히 북한 문제는 더욱 복잡하다. 이처럼 겉과 속을 달리해야 하고, 자음과 모음 하나도 신중해야 하며, 당장의 이익에 매몰되지 않고 거시적 안목을 유지해야 하는 분야에서 한반도 평화 담론을 그저 주적론 안에 가둬버리는 행동은 국익보다 정치적 이익에서 기인한 결과라고까지도 해석할 수 있다.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기에 주적구분론은 너무나도 초보적이고 편협한 발상에 불과한 것이다.
또한 군부 독재 시기 당시 반정부 인사를 북한에 조력한 사람으로 몰아 정적을 손쉽게 처리했던 아픈 역사가 존재했다. 그래서 진보 정치인은 이러한 ‘북풍 몰이’에 더욱 분노하고 입을 닫는 다. 2차 인혁당 사건이 대표적이다. 유신 체제에 반대하던 8명의 청년이 빨갱이로 몰렸고, 선고 18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되었던 사건이다. 증거가 확실하지 않았다. 그조차도 고문을 통한 수집이었다. 하지만 사형이 선고되었다. 심지어 선고 직후 18시간 만에 형이 집행되었다는 점에서 ‘사법 살인’이라는 멸칭이 붙기도 했다. 유가족은 면회 한 번 못 해보고 자식을 보내야 했다. 죽은 자식의 시체조차 보지 못하기도 했다. 이후 대통령 직속 기구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는 이 사건을 두고 혐의가 조작되었으며 핵심 이유였던 ‘인혁당 재건위’는 실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물론 진보 운동가 중에서 북한에 가담한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북풍몰이가 사실에서 극히 일부만 거짓으로 바꿔도 진실을 분간하기 어렵다는 점을 이용한 정치 수법인 것은 분명하다. 대중을 분열시키면 통치가 매우 수월해진다는 사실을 이용한 ‘Divide and Rule’ 수법에 해당하기도 한다. 참고로 박정희 정부를 거치며 시작되었던 지역주의 통치도 이 수법에 해당한다.
이처럼 상처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결과는 처참했다. 서양 선진국에는 대부분 존재하는 ‘공산당’이 존재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공산당이 없으면 좋은 거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높은 정치적 경직도는 정치 생태계가 건강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민으로 하여금 건전한 사고와 토론을 못 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북한을 무작정 혐오하는 정서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건전한 공론장을 오염시킨다. 또한 미국을 과하게 찬양하는 태도는 건전한 외교 논의를 방해할 뿐이다. 분단으로 인해 우리나라 정치는 넓은 스펙트럼을 갖지 못하고 보수주의 안에 갇혔다. 공산주의의 ‘ㄱ’만 꺼내도 다들 이상하게 인식하는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이런 정치 환경에서 진보적 가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진보의 축소는 미래를 축소하는 일이다.
"앞으로도 상당 기간 세계의 역사는 진보와 보수의 갈등을 중심으로 전개될 것입니다. 그리고 미래의 역사는 진보주의가 제시하는 방향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진보의 미래, 노무현, 26p-
진보는 주로 ‘통합’ 또는 ‘견제’라는 가치를 위해 탕평인사를 한다. 탕평인사란 진영과 학벌 같은 이해관계나 기존의 관례에 얽메이지 않고 내각을 꾸리는 방식을 말한다. 문재인 정부 당시 외교부장관을 역임했던 강경화 전 장관이 대표적이다. 외교부장관은 외교관 출신만 임명되는 관례가 있었으나, 강경화 전 장관은 외교관 출신이 아니었다. 문 정부의 이석배 주 러시아 대사 또한 외교관 순혈주의를 타파한 사례에 해당한다. 그는 외무고시를 통과하지 않고 특채된 러시아통이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의 외교통상부 장관이었던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은 진보주의 인사보다는 보수주의 인사로 평가된다. 김대중 정부에서 경제수석비서관과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역임한 한덕수 총리도 보수주의 인사로 분류된다. 현재 대선 캠프에 보수 진영의 원로 ‘윤여준’을 영입한 이재명 대표 역시 통합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물론 진보주의 정부의 탕평인사는 전략적 선택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저 계산된 선택일 뿐이라고 폄하해선 안 된다. 세상의 모든 일은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온전히 공익을 위해 제 몸 바치는 환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공익도 추구하고 정부 이미지에도 도움이 되는 선택을 함부로 비판하긴 어렵다. 이조차 비난하는 것은 분명 야박하다. 반면 보수 정부에서는 탕평인사를 찾기 어렵다. 가치를 추구하는 척이라도 하는 쪽이 아예 척이라도 하지 않는 쪽보단 칭찬할 만하진 않을까? 대신 보수는 주로 학벌과 출신을 따지는 엘리트주의 인사를 한다. 이름만 들어도 ‘우와’라는 감탄이 나올 만한 약력의 소유자를 고집한다는 것이다. 근거로서 이들을 그저 나열하는 것은 의미 없는 빈칸 채우기에 불과하다. 당장 뉴스를 틀어서 보이는 보수 정치인을 무작위로 검색해보면 바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 이상주의-현실주의의 확장
유화 노선보다 강경 노선이 대북 정책으로서 현실적이고 당장 효과적이다. 또한 ‘통합’과 ‘균형’ 같이 당장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 가치를 추구하기보다, 정부의 정책에 힘을 강하게 실어줄 수 있는 후보를 등용하는 것이 성과를 확실하게 낼 수 있다는 가치관은 보다 현실주의적이다. 이처럼 보수주의는 현실주의와 불가분한 관계이다. 그리고 ‘진보-보수’의 ‘이상주의-현실주의’ 논리는 ‘지체성-즉각성’과 ‘거시성-근시안성’의 논리로 확장 가능하다. 왜 이런 것일까? 이상적인 정책은 정책 실현을 위해 현실과 지향점 사이에 동떨어진 거리만큼 시간과 에너지를 요구한다. 그만큼 정책 효과를 기대하는 사람은 긴 호흡이 필요하다. 이러한 이상성은 필연적으로 비즉각성 또는 지체성이라는 특성을 가진다. 또한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시각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진보주의는 거시적 시각과 장기적 안목을 요구한다. 보수주의는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만큼 효율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