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글을 만든 대학시절 나만의 도전

나로 충만한 인생 - 대학 편(2) 수강신청

by 승현

인생강의를 찾다.


친구들이 미쳤다고 했다. 법학 전공 3학년 수업을 듣겠다니. 심지어 3학점 짜리 강의였다. 제 발로 지옥에 들어가는 셈이었다. 로스쿨을 본격적으로 준비하는 학생들과 경쟁하면 학점은 불 보듯 뻔했다. 러시아어를 제1전공으로, 경제학을 제2전공으로 하는 내가 설렁설렁 들을 만한 건 분명 아니었다.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대한민국에 살면서 판결에 당황했던 적이 꽤 있었다. 유가족의 마음을 오히려 후벼파는 판결이나 전혀 정의롭지 않은 퇴행적 판결 말이다. 물론 언제까지나 나의 정의관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므로 주관적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국민정서에 어긋나는 판결은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발생할까? 오랫동안 품어왔던 의문이었다.


수강신청을 준비하면서 법학 전공 수업을 찾아봤다. 법의 해석과 적용. 눈에 띄었다. 평점도 높았다. “학점 따긴 어렵지만 배울 게 많은 수업”. 수강 후기도 마음에 들었다. 목차도 재밌었다. 중간고사에서는 법의 해석과 적용에 대한 이론을, 기말고사에서는 법학계의 난제로 불리는 사례들을 다뤘다. ”아, 이 수업을 들으면 오랜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겠구나“. 고민하지 않고 담았다.


교수님은 강의를 잘 하시기로 유명하신 분이었다. 로스쿨 면접에 참여하기도 하셨다. 눈도장 찍으면 꽤 좋은 일을 기대해봐도 될 것 같았다. 또한 이 수업은 법학 커리큘럼 전체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했다. 괜히 3학점이 아니었다. 이런 과목에서 높은 학점을 받으면 로스쿨과 분명 한 층 가까워질 것이었다. 다양한 계산에서 유리한 과목이었다. 법조인이 되기로 결심한 3학년 전공생들에게는 분명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선택이었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달랐다. 비상식적인 판결에 대한 의문이 과감한 수강신청의 주된 동기였다. 로스쿨 입학이 핵심 동기가 아니었다.


역시나 학생들의 열기는 뜨거웠다. 3시간의 법학 풀코스 수업이 끝났는데도 30분 동안 질문이 이어지는 경우는 처음 봤다. 교수님이 QnA 시간을 끊지 않으셨다면 1시간은 훌쩍 넘겼을 것이다. 교수님의 질문있냐는 말씀이 끝나기도 전에 여러 명이 번쩍 손을 드는 장면은 장관이었다. 그러나 나는 좋은 학점을 받지 못 할까봐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흥분됐다. 나에게 그들은 경쟁자보다 동료였기 때문이었다. 열정적인 분위기는 몰입을 높였다. 높은 몰입은 궁금증 해소를 도왔다.


이 수업은 인생강의가 되었다. 대학시절 최고의 수업이었다. ‘법적 안정성’이라는 퍼즐은 의문을 해결해주었다. 이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나아가 ‘법의 필연적 추상성’부터 ‘유추해석’까지 법의 작동 원리를 배웠다. 과분했다. 혹자는 이렇게 물어볼 수 있다. “그래서 그게 니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되는데?” 나도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덕을 봤다.


글쓰기에서 빛을 발한 것이다. 21대 대통령 선거를 한 달 남겨두고 발생한 이재명 당시 후보의 사법리스크를 다뤘을 때였다. 핵심 문단을 작성할 때 그때 배웠던 법적 지식이 유용했다. 전문성과 완성도를 한 번에 잡았다. 더 중요한 것은 이를 작성하는 데 30분도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 글은 주변에서 상당한 호응을 얻었다. 너무 쉽게 썼는데 말이다. 그리고 이 글은 글쓰기에서 자신감을 잃을 때마다 용기를 주는 기둥 같은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그 기반을 인생 수업이 만든 것이다.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내가 원하는 것을 따라갔을 뿐이다. 교수님께 잘 보일 이유가 없었다. 학점을 잘 딸 이유도 없었다. 그 수업을 수강할 이유도 없었다. 나다운 선택이었다. 내적 동기에 의한 선택이었다. 남들의 시선에 맞추어 선택하지 않았다. 오히려 남들이 보기에는 무모했다. 무의미한 선택에 불과했다. 하지만 나다운 결정은 기둥 같은 글을 만들어냈다.


물론 로스쿨을 찍어두고 학점에 집착하는 행위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당시의 나에게는 잘못된 선택이었을 뿐이다. 미래의 나에게는 훌륭한 선택일 수도 있다. 최대한 빨리 로스쿨에 들어가는 것이 ‘나’다운 선택인 사람에게는 최고의 판단임에 틀림없다. ‘나’다운 선택이 모여 ‘나’다운 인생을 만든다. 그렇게 ‘나’는 ‘나’의 인생에 만족하게 된다.



마냥 이상적이어서는 안돼


법학 전공 수업을 찾는 중에 이 과목을 선택한 직접적인 이유는 개인적인 궁금증이 맞다. 하지만 왜 법학 전공 수업을 찾고 있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시작은 현실적인 계산에서 비롯되었다.


나는 대학에 입학할 때 스스로와 약속한 것이 있었다. 매학기마다 작은 도전을 하자는 것이었다. 이때 작은 도전이란 전공과 무관하지만 관심이 있는 과목을 적어도 하나는 수강하는 것이었다. 1학년 2학기는 ’경제학원론(1)‘과 ’컴퓨팅사고‘였다. 외대는 1학년 2학기가 끝나갈 때 이중전공을 선택해야 한다. 나는 이중전공으로 경제학과 AI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결국 두 영역을 찍어먹어 보고 경제학을 선택했다. 2학년 1학기는 ‘민법의이해’였다. 로스쿨 진학을 고민하던 차였다. 법에 적성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다른 법의 기본 토대가 민법에 모두 녹아있다는 말을 듣고 민법을 선택했다. 2학년 2학기가 ‘법의해석과적용’이었다. ’민법의이해‘ 성적으로 A+를 받고 법에 자신감이 생겼다. 하지만 서술형이 없었던 점이 아쉬워 교양이 아닌 전공 수업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법 전공 수업을 찾아보게 된 것이다.


이 모든 선택은 최대한 다양한 분야를 찍어먹어 보자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또한 해보지 않으면 내 적성을 판단할 수조차 없다는 믿음이 깔려있었다. 즉, 진로를 최대한 빨리 찾고자 이런 도전을 시도한 것이다. 철저히 현실적인 이유였다. 이처럼 전체적인 틀은 전략적인 계산이었다. 그러나 정밀한 판단을 할 땐 마음을 따랐다. 나답게 선택했다. 그때 그때 원하는 것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원하는 자리에 도달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물론 너무 벗어나면 안 되니 큰 틀은 현실적 계산 안에 묶어두자고 생각했다. 너무 이상적이지도 않다. 적당히 현실적이다. 괜찮은 타협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