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와 적성(1) 내가 생각하는 ‘올바른 진로관’
: 당장 끌리는 것부터
엄마가 물었다. 방송 PD가 꿈이면서 왜 책 쓰기나 신춘문예 같은 다른 일에 집중하냐고. 방송 PD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경험을 쌓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아들이 덜 힘들었으면 하는 엄마의 걱정이 느껴졌다. 합리적인 걱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책 쓰기와 방송 PD가 서로 깊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을 글로 표현하면 책이다. 내 생각을 영상으로 표현하면 피디의 일인 것이다.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창작물의 전반을 기획하며 내용을 구성하는 일은 글과 영상의 공통적인 핵심이다. 사실 창작의 핵심이다. 그러므로 자기소개서를 쓴다고 해도 두 영역의 성과는 연결하기 쉽다. 자기소개서 이전에 이미 나의 이야기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처음부터 이 모든 것을 알고서 글과 영상을 선택한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같은 본질을 공유하는 두 분야를 의식하지 않고도 추구한 비결은 내가 끌려서 선택했다는 공통점에서 기인했다. 아무리 단순해 보여도 무언가 끌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나’이기 때문에 끌리는 것이다. 따라서 필연적인 일관성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하필 글과 영상에 끌린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자연스레 이해된다.
그러므로 이 일관성은 내 안에서 완성된다. 중요한 지점이다. 이는 취업 시장에서 큰 비용 들이지 않고도 나를 선두로 옮겨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취업 전문가는 자소서든 면접이든 자신의 강점과 창의성을 녹여내라고 조언한다. 누가 그걸 모르냐고. 뜬 구름 잡는 소리 같아 화만 잔뜩 날 수 있다. 하지만 당장 끌리는 것부터 실천하면 뜬 구름을 지상으로 끌어내릴 수 있다. 일단 강점을 담아야 하는 이유는 너무나도 당연하다. 나를 뽐내야 한다면 약점을 뽐낼 순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요점은 창의성이다. 다른 지원자들과는 차별화된 이야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수많은 경쟁자들 사이에서 하필 나를 뽑을 이유가 생긴다. 그런데 아직 대학생이거나 갓 졸업한 이들이 서포터즈나 인턴십으로 큰 격차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쉽지 않다. 아무도 하지 않는 독어, 불어, 서어, 노어 같은 제2외국어 자격증을 따려고 하는 사람들이 예전엔 미련해 보였지만 이제는 이해가 되려고 한다. 그러나 다수가 선택하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제2외국어 자격증은 일반적인 직무 또는 산업과 직결되지 않는다. 따봤자 못 써먹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심지어 어렵기는 무지 어렵다. 강의료도 비싼데 자격증 수험료만 1회에 20만 원을 훌쩍 넘긴다. 이런 고생 없이도 다른 지원자들과 큰 격차를 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것이 바로 ‘내 안에서 완성된 일관성’이다.
단순히 끌린다는 이유만으로 선택해 온 파편들은 내 안에서 완성되기 때문에 고유하다. 가장 개인적인 것은 가장 창의적인 것이므로 가장 독창적이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내 안에서 완성되기 때문에 내가 제일 잘 안다. 나에게 왔을 때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는 이야기인 것이다. 나만의 이야기. 취업에서는 정말 꿈같은 표현이다. 우리가 도달할 수 없을 것만 같던 말. 그러나 그것은 먼 얘기가 아니었다. 그저 내가 당장 끌리는 것에 충실하면 되는 것이었다. 끌리는 것만 하면 취업에도 유리하다니. 인생을 너무 만만하게 보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끌리는 것에 한번 충실해보면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인생의 쓴 맛을 볼 수 있다.
이 이야기는 전형적인 진로 고민과 결부된다.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할까? 아니면 잘하는 것을 해야 할까? 당신은 내가 뭐라고 대답할지 이미 안다. “당장 끌리는 것을 해야 한다.”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구분하는 일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이 둘은 대개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좋아하면 잘하고, 잘하면 좋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두 영역을 지지하는 각각의 논리는 매력적이다. 물질과는 별개로 온전히 행복하기 위해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아야 한다. 반면 돈을 버는 일은 결국 시장의 원리에 기반하기 때문에 잘하는 일을 업으로 선택해야 한다. 전자는 이상적이고, 후자는 현실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이상을 현실의 논리에 편입시켰다. “당장 끌리는 것을 하자.” 이는 수준의 문제에서도 우리를 구해준다. 어느 정도로 좋아해야 직업을 삼을 수 있는가? 어느 정도로 잘해야 직업으로 삼을 수 있는가? 이 기준은 정의하기도 어렵고 현실적이지도 않다. 그저 막연하고 공상적일 뿐이다. 심지어 이 고민은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딨어“ 또는 ”현직의 많은 직업인들은 사실 뛰어나지 않아“라는 문장 앞에서 쉽게 무너지고 만다. 그러나 당장 끌리는 것은 별 생각 없이 따르면 된다.
이 모든 내용은 유서 깊은 논쟁에 대한 나의 생각일 뿐이다. 당연히 정답은 없다. 현실의 가치가 더 중요한 사람은 철저한 계산에 따라 직업을 가지면 행복할 것이다. 이 분들에게는 현실적인 계산이 정답이다. 반면 이상의 가치가 더 중요한 사람은 위의 내용에 따라 판단하면 만족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결국은 내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에 집중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똑같을 수 없으니 말이다. 오히려 다양한 우리에게 하나의 잣대만 들이대는 것이 더욱 비상식적이고 폭력적이다. 나의 이야기는 수많은 사람들 중 나와 비슷한 일부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물론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도 일종의 영감으로서 또는 방향성을 정립하는 데 유용할 수 있다. 당연히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 따라서 나의 이야기를 무작정 진리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 물론 진리처럼 안 보이긴 하지만 말이다. 또한 생각을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해서 불쾌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주장하는 글은 강요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최대한 부드럽게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받아들일 때에는 ’나‘라는 거름망을 이용해야 한다. 우리 독자분들은 이미 잘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조바심에 언급해봤다.
이번 장에서는 진로에 대한 나의 가치관을 소개해봤다. 다음 장에서는 적성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구체적인 실천방안으로서 큰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