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세상이 규정되는 원리(3) 실사례로 보는 ‘여론 주도’ 특성
본격적으로 실사례를 다루기 전에 ‘여론 주도’에 대한 개념을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다. 사례를 살펴볼 때 관전 포인트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이해가 쉽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다시 이전 게시물로 돌아갈 필요는 없다. 수고를 덜기 위해 아래에 다섯 문장으로 간단히 정리해 보았다.
가장 중요한 언론의 특성은 ‘여론 주도‘이다. 이는 ‘여론을 특정 방향으로 흐르도록 만들 수 있는 힘’을 이른다. 이 권력은 정보 생산자가 주장 또는 주관을 보도하면, 정보 수용자가 이를 사실로서 받아들이는 현상에서 기인한다. 그리고 이 현상은 언론이 긴 시간 쌓아온 유산(legacy), 즉 언론에 대한 대중의 신뢰에 기반한다. 다만, 이 특성은 정보 생산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보도와 동시에 자연적으로 발생한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따라서 곧 등장할 세 가지 사례는 하나만 주목해서 살펴보면 충분하다. 바로 ‘주장 또는 주관이 사실처럼 보도되었다는 구조’이다. 먼저 YTN의 기사를 살펴보자.
기사 제목
이재명 정부 첫 여당 원내대표에 김병기 의원
기사 전문
이재명 정부 출범 후 집권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의 첫 원내사령탑에 3선 김병기 의원이 선출됐습니다. 김병기 의원은 오늘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경선에 나선 서영교 의원을 꺾고 집권여당의 새 원내대표 자리에 올랐습니다. 김 원내대표는 수락연설에서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하라는 의원과 당원들의 뜻을 받들어, 내란 극복과 민생 회복 등 개혁과제를 완수하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김병기 신임 원내대표는 앞으로 새 정부 초기 개혁을 뒷받침하기 위한 대정부 협력과 함께 야당과의 협치를 이끌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습니다. 26년간 국가정보원에 근무하면서 '정보통'으로 불리는 김 원내대표는 지난 2016년 20대 총선 당시 서울 동작갑에서 당선돼, 같은 지역구에서 내리 3선을 했습니다.
“엥? 이게 뭐가 문제지? 그저 그런 기사 아닌가?” 그렇다. 아주 흔한 기사이다. 심지어 짧다. 그래서 이 기사를 선택했다. 아주 흔하고 짧은 기사에서조차 ‘여론 주도’ 특성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특성을 찾는 사람에게 위의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문장은 단 하나이다. “김병기 신임 원내대표는 앞으로 새 정부 초기 개혁을 뒷받침하기 위한 대정부 협력과 함께 야당과의 협치를 이끌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습니다.” 이 문장에 기자의 주관이 강하게 포함되었기 때문이다.1)
이 기사로 원내대표 당선 사안을 접한 독자는 ‘중요한 시기에 당선된 민주당 원내대표가 김병기 의원이라는 사실’과 ‘앞으로 김 원내대표의 행보는 야당과의 협치 수준을 기준으로 평가하면 된다는 기자의 주관’을 동시에 수용하게 된다. 사실과 주장을 구분하지 않은 상태로 말이다. 더 정확히는 주장을 사실처럼 인지하면서 말이다. 이는 독자의 문해력이 나빠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다. 물론 문해력도 관련은 있겠지만, 기사를 통째로 사실이라고 믿는 데는 기성 언론에 대한 대중적 신뢰가 한몫한다. “그래도 YTN인데 어느 정도 검증된 사실이겠지” 같은 믿음 말이다. 더 근본적으로 기사는 당연히 사실만을 보도한다는 막연한 통념이 기저에서 작동했을 것이다. 반면 “난 그 주관 안 받아들였는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조차 ‘협치’는 적어도 중요한 가치라는 데 자연스럽게 동의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게 그렇게 중요하다는 여론 주도인 거야?” “만약 동의했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될 건 뭐야?” 기사의 한 문장이 아무리 주장이라고 하더라도 ‘협치’는 좋은 말이자 맞는 말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생각보다 큰 문제를 안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계엄령을 민주주의 훼손으로 바라본다면 위의 ‘협치’라는 표현은 정치사적으로 반동적인 ‘프레이밍(framing)’이기 때문이다. 즉, ‘협치’라는 표현이 민주주의 회복을 가로막는 방향으로 여론을 주도한다는 것이다. 프레이밍이란 표현 방식이 인간의 인식 체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현상 또는 효과를 이른다.2)
이들은 계엄 주동자에게 민주주의를 뒤흔든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우는 일이 최우선 과제라고 생각했다. 계엄 세력 청산을 민주주의 복원의 시작으로 본 것이다. 그리고 김병기 의원은 이러한 요구를 신속히 처리할 적임자이기에 선출되었다. 수락 연설에서도, 후보 시절 공약과 메시지에서도 개혁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던 것을 보면 말이다. 경쟁 후보였던 서영교 의원 또한 온 힘을 내란 극복에 집중하겠다고 강조했기에, 민주당 권리당원이 투표할 때 둘 사이에서 꽤나 애를 먹었다는 후일담도 들렸다. 이러한 시점에서 ‘개혁’이나 ‘청산’이 아닌 ‘협치’라는 표현은 분명 청산 동력을 떨어뜨린다.
따라서 이 기사는 민주주의 역사 측면에서 반동적이다. 그리고 ‘협치’라는 표현은 독자가 민주주의 복원까지 거시적으로 생각할 수 없도록 시각을 좁게 가두고, 오히려 청산에 부정적이도록 만든다. 청산의 과정은 단기적으로, 또 표면적으로 보면 협치보단 갈등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독자는 자연스레 ‘협치’라는 가치를 수용하게 되고, 이 기사는 민주주의 정상화의 반대 방향으로 여론을 주도했다고 볼 수 있다.
다음 편에서 ‘머니투데이 기사’로 계속됩니다.
1) 김 원내대표가 수락 연설에서 ‘협치’라는 표현을 한 번도 쓰지 않았고 오히려 이 방향과 반대되는 ‘내란 극복’, ‘개혁’, ‘헌정 질서 회복‘ 같은 표현을 자주 사용했지만, 기자가 논점을 직접 ‘협치’로 옮겨버렸으므로 ‘강하게’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2) 기획재정부 시사경제용어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