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세상이 규정되는 원리(6) 저널리즘과 시장논리
정리해보자. 중앙일보는 시진핑 실각론의 주요 근거로 12월자 해방군보 사설을 내보였다. 이는 시 주석이 우려한 기율 위반(부패)의 원인인 ‘사령원이나 정치위원의 독단적 판단’을 막기 위해 중앙군위 하부의 위원회에 민주집중제가 적용되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세 가지 측면에서 이를 증명했다. 하지만 시진핑 실각설은 민주집중제가 주석책임제에 반한다고 제멋대로 해석함으로써 시 주석에 장유샤 장군이 반기를 들었다는 논리를 완성했다. 너무나도 쉽게 반박 가능한 거짓 정보였던 것이다. 참고로 민주집중제란 민주적 의결 과정과 중앙집권적 집행이 조합된 제도를 말한다. 집단영도와 민주집중제는 적어도 이 사안에서는 비슷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둘 다 집단적 토의를 거쳐 중대한 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에서 궤를 함께하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이 기사에는 어설픈 논리가 많다. 먼저, 장유샤와 시진핑의 관계가 2022년 10월 제20차 당 대회에서 틀어졌다고 주장했다. 이는 한 일화에 근거한다. 중국에는 68세가 되면 정치에서 물러나는 관습이 있는데, 시 주석이 당시 72세였던 장유샤에게 왜 물러나지 않느냐고 묻자 장이 69세인 당신은 왜 안 물러나냐고 반문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 기사에 소개된 장유샤-시진핑 불화설의 거의 유일한 연결고리이다. 부실하다. 또한 중국군을 5대 전구(戰區)로 나누어 시 주석과 허웨이둥을 동부전구로, 장유샤를 북부전구, 중부전구, 남부전구로 분류했다. 장이 실질적으로 군을 장악하고 있으며, 지리적으로 시 주석을 포위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2024년 10월 시 주석의 안후이성 둥청시의 육척항 방문을 소개했다. 그리고 이 방문을 시 주석이 장에게 타협의 뜻을 비친 것이라고 해석했다. 청나라 시기에 담장을 중간에 놓고 다투던 두 집안이 서로 삼척씩을 양보하여 육척의 골목길을 만든 육척항의 유래가 근거였다. 이 기사는 논리적이라기보다 문학적이다. 나만 이렇게 느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시진핑 주석이 실각 위기에 놓여있다는 주장을 보도할 때, 핵심 논리의 근거로 거짓을 인용하고 진실의 빈틈을 문학적 요소로 마구 메워선 안 된다. 조 교수도 우려했듯, 이는 중국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방해하여 반중 정서를 심화시키고 한중 교류 의지를 꺾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25년 9월 현시점에서 중국을 바라보면, 시진핑 실각설이 얼마나 터무니없었는지 알 수 있다. 그의 힘이 당시에도 강력했고, 지금도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결과만 보면 모든 일은 쉽다. 그렇기에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기자라면 진실에 다가서기 위해 언제나 적극적으로 검증해야 한다.
그런데 중앙일보는 시 주석의 반부패 전쟁에 대한 양측의 입장을 모두 고려한 것 같다. 아래는 이 사실을 유추할 수 있는 이 기사의 한 대목이다.
…(생략)… 수많은 장군들이 낙엽처럼 스러졌다. 문제는 이게 시진핑 주석의 주도하에 이뤄지는 거냐, 아니면 반(反)시진핑 바람의 결과이냐 하는 것이다. 주목할 건 미국과 중화권의 해석이 완전히 엇갈린다는 점이다. 서방 언론은 대개 중국군 내부에는 엄중한 부패가 존재하며 시진핑은 이런 장군들 숙청을 통해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부패 세력을 제거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대만을 포함해 중화권의 여러 중국 전문가 시각은 다르다. 이들은 시진핑 주석과 장유샤 장군 간 치열한 권력 다툼이 벌어지고 있으며 지금은 장유샤 세력이 우위를 점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고 본다.
그렇다면 중앙일보는 언론으로서의 역량이 부족하거나 진실이 아닌 다른 목적에서 이를 작성했다고 볼 수 있다. 전자라면, 양측을 고려할 때 각 입장의 가장 유리한 위치에서 논리를 검토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검토했음에도 중화권의 해석이 더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면 사안을 처리하는 능력이 부족한 것이다. 사안을 올바르게 파악했는데도 시진핑 실각설을 선택했다면, 진실을 추구하기보다는 다른 데 목적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나는 그것이 높은 확률로 돈이라고 생각한다. 중앙일보 구독자가 크게 반응할 만한 내용을 작성해 조회수와 광고 수익을 높이기 위해서 작성했다는 것이다. 이는 가장 기본적이고 합리적인 추론이다. 돈이 아닌 다른 이유들도 결국 물질로 귀결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사 제목은 군 서열 3위가 50일 넘게 두문불출… 중국에 대체 무슨 일이?’이다. 이 기사에서는 세 가지 문장만 살펴봐도 충분하다. 첫 번째, “허웨이둥의 낙마가 사실이라면 시진핑 군권 약화를 보여준다는 해석이 나온다.”라는 표현은 시 주석의 실각론을 지지하는 이 기사의 전반을 설명한다. 두 번째, “중국군 서열 2위인 장유샤는 정치적 타격을 입지 않았고, 오히려 군내 실권을 장악했다고 중화권 언론들은 분석한다.”라는 문장에서 위의 중앙일보 기사와 출처가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세 번째 문장은 유심히 봐야 할 필요가 있다. “인공지능(AI) 인재들을 만난 자리에서 “중화민족의 위대한 꿈 실현은 젊은 세대에게 달려 있다”면서 “역사의 바통을 잘 이어받아야 한다”고 했다.” 시 주석의 해당 발언은 이 기사에서 권력 이양을 암시하는 표현으로서 인용되었다. 그러나 상하이 시찰 중 인공지능 인재들에게 한 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권력 이양을 암시하는 발언이라고 상상하기는 어렵다. 진실을 찾기보다는 진실을 만들려고 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비합리적이고 노골적이다.
흔히 말하는 최고 규모 3대 언론사 ‘조중동’에서 ‘조’는 조선일보를, ‘중’은 중앙일보를 가리킨다. 그런데 시진핑 실각설에서 그들의 저널리즘이 과연 살아있었는가? 오히려 시장 논리에 충실하진 않았는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신문사들인 만큼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동아일보는 어땠을까? 동아일보는 저널리즘이 작동했다. 사설 ‘임용한의 전쟁사’에서 ‘또 불거지는 대만 침공설’이라는 제목으로 침공설 지지 입장에 대해 설명할 때, 경제 상황이 어렵고 숙청으로 인해 권력 기반이 흔들리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중국이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하는 과정에서 시진핑 실각설에 부합하는 뉘앙스가 딱 한 번 표현되었다. 부패 척결 과정 자체가 안정보다는 불안정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실각설을 지지한다고까지는 볼 수 없다. 다행히도 동아일보는 이에 대한 언급이 사실상 없었던 것이다. 물론 조중동에서 한 언론사만 정상적으로 기능했다는 사실이 정말로 다행인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