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작가님의 ‘여행의 이유’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살아오면서 참으로 많이 들은 질문이었지만, 언제나 깊이 생각하게 되고, 그러다 결국은 미적지근한 대답을 내놓게 되는 질문이 바로 이것,
’ 여행을 좋아하세요?‘ 였다.
꽃일을 하다 보면 가끔 듣는 질문이 ‘꽃을 좋아하시나 봐요. 그래서 플로리스트 하시는 거죠? ’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 역시 김영하 작가님처럼 미적지근한 대답을 내놓곤 한다.
그런데 한 번은 단체 클래스 중에 수강생분의 작품을 도와드리다 질문을 받았는데, 나도 모르게
“아니요, 안 좋아해요.”라고 대답이 나왔다.
순간, 수강생분이 당황한 듯 “네에??” 라며 날 쳐다봤다.
아차…
바로 이어서, 농담조로 웃으며 ”꽃일을 하다 보면 너무 힘들 때가 많잖아요, 꽃을 좋아해서 한다기보다 잘해서 하는 거예요. “라고 말씀드렸다.
플로리스트 경력이 좀 된 분들이라면
내 이야기에 공감이 갈거라 생각한다.
고객에게 최상의 꽃을 전하기 위해,
아침 일찍 꽃시장에 가서 꽃을 사입해 오고, 잎과 가시를 깨끗이 다듬어서, 물통에 분류하여 꽂고, 청소와 정리를 한다. 꽃상품 하나 만들 때마다 테이블과 바닥에 떨어지는 잎, 줄기 부스러기들은 계속 치워야 한다. 이틀마다 물통 세척해서 새로 물을 갈아주고 꽃정리를 다시 해야 하고, 새로 들어온 꽃도 정리한다. 출강이 있으면 사입양도 많은 데다 소분을 해야 하고, 강의 당일까지 꽃상태 유지에 신경이 곤두서고, 무거운 꽃짐을 자주 날라야 하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난 그나마 생화만 다루지만, 식물까지 하는 경우 일은 더 많고, 허리 나가기 일쑤. 부자재정리와 기타 매장정리, 디스플레이… 기타 등등.
여기까지는 꽃과 나만의 문제라 괜찮다.
플로리스트는 꽃예술을 빙자한 서비스직이다.
상담시마다 고객의 입장을 고려해야 하고, 고객이 요구하는 걸 최대한 맞춰드려야 한다. 고객의 예산, 원하는 스타일, 색감을 고려해야 한다. 꽃지정을 하는 고객님이 계시면 그 꽃을 사려고 자정에 꽃시장을 가는 일도 생기고 아침 일찍 배송을 원하면 새벽에 일어나 출근한다. 까다로운 고객님과 상담톡하느라 기운이 다 빠지기도 하고, 싱싱한 꽃을 넣었음에도 꽃 형태가 원래 그런 것을 시들었다고 트집을 잡고 환불을 요구하는 고객도 있다. 도소매분리가 없는 생화업계 생태도 꽃집영업을 힘들게 하는 일등공신이다.
요즘 인스타나 유튜브에 마케팅, 브랜딩에 관한 영상을 보면, ‘고객에게 끌려다니지 말고, 주도하라.’는 내용이 보인다.
이제 초보 꽃집사장님들이 소위 진상 고객을 어찌 현명히 상대하겠는가 말이다. 비싸게 사입해 온 꽃이 상하기 전에 빨리 팔고 싶고, 하나라도 정성껏 해드려서 단골고객 만들고 싶은 맘은 내가 고객을 주도하는 플로리스트의 길과는 반대로 가게 만든다.
“꽃을 좋아하시나 봐요.”라는 말을 들을때 ‘네, 그럼요!‘라고 튀어나오지 않는 이유는 십수 년의 세월 동안 겪은 이 모든 일들의 감정이 순간 머릿속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꽃은 힘들어.”
대한민국 1인 자영업 플로리스트 대부분이 이런 결론으로 끝난다.
2년 전까지만 해도 나도 같은 결론이었다.
어떻게 하면 꽃을 그만둘까,,,
그러나 어떤 일이든 쉽게 되는 건 없고 안 힘든 일이 없다.
이 나이 먹고 제대로 잘할 수 있는 건 꽃 밖에 없었다.
결국 다시 되돌아오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꽃을 떠날 수 없다면 제대로 좋아해 보자.’
그렇게 다시 시작했다. 영상을 만들어보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하나씩 만들어가다 보니 더 잘하고 싶었고, 특별해지고 싶었다.
그런 소망은 어느덧 실제가 되어 있었다.
생각해 보니 내가 꽃을 포기하려던 게 아니라, 꽃이 나를 포기하려고 했던 거다.
꽃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꽃으로 먹고살겠다고….?
넌 그럴 자격이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