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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때그대 Nov 04. 2020

#7. 취미는 짐이다.

 제주에 가져온 내 짐은 옷 몇 벌과 노트북이 전부다. 어느새 계절이 바뀌어 가을겨울 옷이 필요했다. 남편은 매주 오지만 회사에서 제주로 직퇴하기 때문에 큰 짐을 들릴 수 없다. 남편의 백팩에는 아이들이 배달해 달라하는 장난감과 책으로 이미 꽉 차 있을 것이다. 이렇게 배려 깊은 마음으로 나는 남편에게 내 물건 심부름은 부탁하지 않는다. 그냥 산다. 그렇다. 가을 옷을 샀다는 이야기를 정성스럽게 늘어놓는 중이다.


 서울에 볼 일이 있는 날 보다 며칠 여유있게 비행기를 탔다. 아이들 겨울 옷을 챙기고 필요한 것을 사려면 작아진 옷이 무엇인지 살펴봐야 했다. 아들 녀석이 당장 입고 싶다는 후드 티셔츠가 아직 입을 만 한지 남편에게 사이즈를 설명했다가 말을 잘렸다. 알고 싶지 않은 말에는 전혀 집중이 안되는 남자. 남편이 내 이야기를 귓등으로 들을 때 두번 말 걸지 않는 것이 우리 부부가 평화로운 비결 중 하나라고 확신한다. 내가 직접 하고 말지.

 내 겨울 옷도 챙기려고 옷장을 열어 한 발 멀찍이 섰다. 허헛 민망하네. 새로 산 니트 원피스와 컬러, 스타일에 길이까지 비슷한 옷이 잘 개어져 누워 있는 거다. 나는 분명 새 옷을 살 때 먼저 옷장을 머리 속으로 그려 무엇이 있고 없고를 생각했고, 매칭할 코디까지 시뮬레이션을 했는데 말이다. 헛웃음을 뱉으며 한 칸 한 칸 뒤집어 살폈다. 가져갈 옷, 남겨둘 옷, 버릴 옷을 스캔하다가 도로 옷장 문을 닫았다. 정리보다 여행이 끝나 곧 돌아올 사람처럼 이대로 남겨두고 싶은 마음이 컸다. 아까 주방살림이 미묘하게 남편 편의로 바뀐 것도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두었던 것과 같고 또 다른 마음이다.


 제주에 가져가지 않은 제일 큰 짐은 스쿠버다이빙 장비가방이다. 이제 정말 짐스러워진 나의 취미. 슬프다. 즐거움을 얻기 위해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하는 것이 취미라는데 스쿠버다이빙을 여전히 내 취미라 해도 좋을지 모르겠다. '계속'. 이 단어에서 걸린다. 10여 년 동안 저 짐을 짊어지고 여행 다니다 꼬박 10년째 쉬고 있기 때문이다. 큰 아이 임신부터 지금까지 정말 10년이다.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 대화를 이어가야 할 때 서로의 취미 이야기로 시간을 떼우지않나. 그이의 취미가 정말 궁금해서 묻는 건 아니다. 저는 스쿠버다이빙을 해요. 하면 순간 시선이 나에게 모아졌다. 나를 의외롭게 보는 눈빛이 좋았다. 특별히 눈에 띄는 외모와 차림이 아닌 나는 주목받는 건 불편하지만 관심은 받고 싶고 그랬다.

 스쿠버다이빙은 가기 전부터 힘들다. 챙길 것이 많고 무겁다. 바다로 가는 길은 멀고 나는 멀미를 한다. 수트는 내 몸에 너무 잘 맞추어서 입기가 힘들고 벗기는 더 힘들다. 장비를 짊어지고 뒤뚱뒤뚱 바다로 걸으면서 나는 이걸 왜 하는거지 싶다. 배를 타고 먼 바다로 포인트를 찾아가면서 나는 또 멀미를 한다. 이렇게 고생스러운 취미를 왜 10년이나 했냐하면 살기위해서였다. 생각을 멈추는 법을 몰랐던 때. 힘을 빼고 긴장을 푸는 건 어떻게 하는 건지 또 생각하느라 그대로 아침을 맞이하던 이십대였다.

 스쿠버 장비를 메고 다이빙을 하는 동안 나는 다른 생각은 할 수가 없다. 그게 그렇게 좋았다. 물소리와 숨소리만 들리고 나한테 관심없는 거북이와 물고기가 자기 속도로 흘러갈 뿐이다. 바다는 내가, 내 고민이 이 우주에서 얼마나 하찮은지 고요하게 알려주는 공간이다. 버디를 놓치면 길을 잃을지 모른다. 거북이를 따라가다가도 내가 호흡을 얼마나 더 할 수 있는지 게이지를 확인해야하고 수심과 수온을 체크하면서 내 몸 컨디션을 살펴야한다. 살기 위해서. 생각해야할 것들은 오로지 이 깊은 바다에서 살아 돌아가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Stop, Think and Act. 스쿠버다이빙 중 어떤 상황에서도 일단 멈추고 그 다음 생각한 후에 행동해야 한다고 배운다. 멈추고 생각하라. 10년동안 스쿠버는 못했어도 일상에서 이것 하나 실천하려고 애썼다.


 움직이면서 생각하느라 멈추지 못했던 이십대. 멈추었으나 생각대로 움직이지 못했던 삼십대. 생각조차 멈추어 버린 건 아닌지 두려운 나는 지금 사십대. 나를 가르친 바다 옆에 이사 왔으니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면 서울에서 짐스러운 취미를 가져와 이제는 바다를 진짜 즐겨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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