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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때그대 Feb 18. 2021

#16. 잘 놀아야 잘 큰다.

 달리기를 잘 합니다.


 2학년을 마치는 날 담임 선생님께서 연후의 학교생활에 대해 적어주신 말씀 중에 가장 인상적인 문장이다. 제주 시골학교로 아이를 전학시키고 한 학기를 보냈다. 올 해 열 살이 되도록 몰랐던 아이의 모습을 반 년만에 새롭게 알게 되어 몇 번을 다시 읽었다.

 달리기를 잘하는 아이라니. 피식 웃음이 났다. 처음은 말도 안돼, 였고, 다음은 달리는 모습이 떠오른거다. 몸쓰기를 싫어하는 아이였다. 서로 부딪히고 엉키는 것이 불편해서 멀찍이 맴돌던 아이가 어째서 달리기가 좋아졌을까. 등 떠밀수도 없고 안타까워 물어보았을 때 경쟁이 싫어서 달리기를 안좋아한다고 이야기한 날이 기억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지는 것이 싫다고 말이다.


 몇 달 사이에 아이는 정말 달라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목소리가 커졌고 말을 할 때 흐리지 않고 끝까지 힘을 준다. 망설이는 눈빛이나 불안에 흔들리는 눈치도 없다. 아이의 목소리와 눈빛에 자신감이 차면서 몸은 도리어 가벼워지는 건가 싶다. 쉬는 시간마다 신나게 뜀박질을 하고 겨울에도 땀을 송골송골 달고 집에 돌아오는 날이 많다.


 나는 제주의 자연이 좋아.

 마음이 편해지고 스트레스가 풀려.

 창 밖을 보기만 해도 배시시 웃음이 나.

 으아아앗. 너무 행복해서 몸을 가만히 못 두겠어!

 

 몸을 배배꼬고 내 다리에 매달려 온 몸으로 행복을 표현해 주니 듣기가 좋아 자꾸 물어본다.


 서울이 좋아, 제주가 좋아?

 제주가 왜 좋아?

 제주 학교는 뭐가 그렇게 재밌는거야?

 언제 서울에 돌아갈까?


 이렇게 저렇게 바꿔 물어봐도 같은 결의 답이 나온다. 어제는 자기전에 우리 제주오길 참 잘한 것 같지, 했더니 자기는 계속 제주가 더 좋고 아예 살고 싶다고 하는데 왜 자꾸 물어보는 거냔다.


 나는 칭찬받고 싶은 거다. 행동은 빨랐어도 결정은 어려웠기에 옳은 방향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진다.

 추우나 더우나 열심히 뛰어노는 아이의 모습이 참 예쁘다. 학원갈 시간이니까 이제 그만 가자고 재촉할 일이 없는 게 아이만 좋은 것은 아니더라. 아이 스케쥴에 맞춘 알람 소리 대신 깔깔 웃는 소리가 더 좋다. 시계 안보고 아이 표정만 보니 좋다 나도.



 내가 연후만한 꼬마 아가씨일 때 살던 집 앞 골목은 늘 아이들로 시끌시끌 했다. 누구네 엄마가 밥 먹으러 들어오라고 해야 끝나는 하루였다. 축구장이 되었다가 사방치기도 했다가 땅따먹기도 했던 골목. 어른이 되어 다시 가보고 내 기억보다 좁아서 놀랐던 그 골목은 아스팔트로 반듯하게 포장이 되어 있었다. 나는 오빠들 놀이에 끼고 싶어 따라 뛰어다니다가 울퉁불퉁한 보도블럭에 발이 걸려 잘 넘어졌었는데. 이제는 주워 놀 돌맹이도 없네. 부서진 보도블럭, 버려진 병뚜껑만으로도 골목이 어두워지도록 놀 수 있었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랑 다방구 하던 전봇대가 반가워 괜히 쓰다듬어 보았더랬다.

 그렇게 종일을 놀았어도 나는 지금 괜찮은 어른이 되었지않나. 아무리 그때와 지금은 시절이 다르데도 열 살 여섯 살 아이들이 해야할 일은 잘 노는 것. 이것은 틀림이 없을테다.


 초보 제주맘은 제주 집 앞에 놀이터가 없으니 뭐하고 놀아야 하나 싶었다. 놀이카페나 놀거리가 많은 핫플레이스를 찾아다닌 게 한 달. 먹고 쓰는 비용도 만만치 않고 기분따라 달리다 멈추기가 자연스러워지니 아무것도 필요가 없더라.

 아들은 모래로 도시를 만들고 딸은 들풀로 밥을 짓는다. 곧 둘이 힘을 합쳐 더 큰 도시가 되고 수로가 생기고 돌맹이 시민들에 역할이 주어져 스토리가 보태어지면 이 때부터 두 시간이다. 아이들은 배고파도 배고프지 않고 추워도 춥지않은 상상과 현실 사이 마법같은 시간에 빠져든다. 나 혼자 현실에 착 붙어 배고프고 춥고 외로운 시간. 그렇지만 그게 또 엄마를 찾지않는 시간이라 얼마나 꿀인지.


 책 한 권씩, 물 한 통, 캡슐커피 내려 담은 텀블러, 달달한 간식 담은 에코백 하나 들고 아이들이 가자는대로 따라 나선다. 바닷가에 돗자리도 없이 평평한 돌에 걸터앉아 연후가 먼저 책을 펼친다. 훈이는 모래도시를 어디서 부터 시작할지 구상하고 길 부터 만든다. 나는 두 아이가 다 한 눈에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커피를 홀짝 마신다. 아껴 마시야 한다. 아이들의 놀이는 오늘도 길어질 것을 알기 때문이다. 훈이가 무대를 얼추 짜면 연후가 이건 어때 하고 의견을 더해 책을 덮고 해가 질 때까지 낄낄 거린다.

 놀이를 만들어 내는 창의랄까 아이들의 반짝이는 힘이 신기하다. 매일매일 다른 것은 더 신기하다. 나도 그랬었나 새삼스럽다. 자기가 주도하는 세상을 꾸미고 확장하고 문제를 해결한다. 남매가 의견을 나누고 보완해서 스토리가 더욱 풍성해진다. 결국 나도 책을 덮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 모습이 예뻐서 사진도 찍고 우리는 그렇게 논다.



 달리기를 좋아하지만 지는 것이 싫었던 거다. 서로 어울리고 부딪히는 것이 불편했던 것이고.

 몸을 움직이는 것보다 생각이 앞서는 아이라 자신의 움직에 확신이 없었달까. 부딪힐 것 같고 질 것 같은 기분을 먼저 생각하다보니 몸은 움츠러드는 것이다. 뛰기로 마음 먹으면 시원하게 이겨야하는데 그게 안 될 것 같으니 주저앉는 마음. 내가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억지로 끌어내지 못하고 마음으로 응원했었다. 자기 마음의 벽을 깨고 그냥 한번 뛰어보라고.

 내쳐 뛰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얼마나 빨리 얼마나 멀리 뛸 수 있는지 숨이 차도록 뛰어봤어야 이길 수 있는지 감이 올 것 아닌가.

 제주의 자연이 아이를 편안하게 해주어 발이 가벼워졌다. 뛰다 넘어지고 툭 털고 일어나고 다시 뛰면서 자기 몸을 움직이는 것에 자신감이 생겼다. 내 몸 다루는 것에 자신이 생기니 마음은 더 커지고 생각도 자랐다. 넘어져도 부딪혀도 지는 것도 괜찮은 대범한 아이로 자라고 있나보다.


 이러니 2년 살기 계획이 더 길어져도 괜찮지 않겠나. 제주학교에서 졸업시켜 달라는 아이의 말을 흘려듣기 어려운 이유다. 도시로 돌아갈 걱정에 너무 오래 있지 말아야지 생각했었다. 전교생이 100명도 안되는 학교에서 자유롭게 놀다가 한 학년에 9반이나 있는 학교로 돌아가면 주눅들고 치일까봐. 이기고 싶어서 학원도 여러개 다닐테고 친구들이랑 해 지도록 놀 시간은 없을 것이 분명하다.

 제주학교 선생님이 써주신 달리기를 잘 합니다. 한 문장으로 결심이 섰다. 서울집을 비우고 남은 짐을 모두 내려야겠다. 아이들이나 나나 적응이 어려우면 당장 올라갈 생각으로 서울집을 그대로 두었다. 이제는 여기가 우리집이다.  아이들은 자기의 즐거움이 무엇인지 잘 알고 마음이 단단해 질 때까지. 나는 이런 저런 교육정보에 흔들리지 않고 아이의 기쁨을 기준으로 볼 때까지. 조금 더 뭉쳐있으면 채워질 것 같다. 그 다음에 서울로 돌아가도 괜찮겠지 싶다. 서울살이 복잡한 사정에 부딪히고 넘어지고 지더라도 털고 일어나 각자 행복한 방향으로 뛸 것을 믿는다. 전력으로 뛸 것이다. 그러다 지치면 잠시 멈추어 서로 기대어 쉬고 응원하고 일으켜주겠지.


 나는 물려줄 재산이 없고 집도 남겨줄 생각이 없으니 유산이라고는 이것 뿐이다. 스스로 행복한 방법을 찾고 함께 즐기는 길을 알려주는 것. 나는 사십년이 다 되어 알게 된 깨달음을 우리 아이들은 나보다 빨리 깨우쳐 더욱 오래오래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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