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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때그대 Apr 15. 2021

#18. 멍청해서 멍하니 있는 게 아니고

 거실 커튼은 닫은 채로 베란다 창을 살짝 열었다. 하얀 커튼이 폴락폴락 가볍게 나부낀다. 풀벌레 소리만 담긴 유튜브 방송 채널을 틀어놓은 기분이다. 식탁에 둔 노트북을 들어 창 가까운 자리에 앉아 무릎에 올렸다. 허벅다리가 따끈따끈하고 밤 바람 냄새는 시원하다.


 콘 아이스크림을 하나 꺼냈다. 마지막이네. 아들이 서운해 하기 전에 내일 채워놓아야한다. 이건 내가 좋아해서 사두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아들 녀석이 자기 것인양 세어가며 먹는다. 나 어릴 때 부터 먹던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아이들이 똑같이 좋아한다. 신기한 노릇이다. 내가 맛있는 간식 전성시대에 살았던 것인가, 단지 레트로가 유행일 뿐인건가 아니면 주전부리 입맛도 닮는 것인가.

 용돈 아껴 아이스크림 사먹던 내가 마흔이 넘는 사이 나보다 다섯살 어린 월드콘은 더 맛있어졌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더 발전된 생을 살고 있다니 문득 부럽구나. 일단 쉽게 뜯어져서 좋다. 예전엔 윗 뚜껑을 뜯다가 아이스크림이 뭉개지고 먹다보면 종이가 같이 씹히기도 했었지. 지금은 뜯기가 편하고 어느정도 먹은 후에 한 번 더 찢을 수 있도록 바뀌었다. 콘은 어떻게 된 일인지 마지막까지 바삭하다. 어릴 때는 반도 안먹었는데 콘이 눅눅해져서 끝에는 입에 우겨넣어야 했다. 그렇게 후루룹 먹어버린 아쉬움은 초코가 달래었다. 그때는 초코가 작은 플라스틱 고깔에 담겨있었는데 녹기 전에 먹어야 깨끗하게 쏙 나온다.

 아들은 시원 달달한 아이스크림파이고 나는 바삭한 콘파. 아들이 미니 숟가락으로 아이스크림만 퍼 먹고 나를 주면 속으로 싱긋 웃음이 난다. 아, 콘 끝에 고인 초코는 베어먹고 주더라. 고깔초코 나도 참 좋아하는데.


 실은 요 몇주 동안 일이 없어서 불안에 흔들리고 있다.

 일이 통 안풀리더니만 역시 여기까지인가.

 이제 나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된 건가.

 내가 제주에 있어서 같이 일하기 어렵다고 느끼나.

 제주 시골에 있는 동안 나 감 떨어진건가.

 

 아이들이 잠든 것을 확인하고 살금 거실로 나와 '오늘도 애썼네' 스스로를 도닥이고 쇼파에 앉은 참이다. 엄마가 아니라 나로 돌아와 오늘은 어땠나 생각하니까 한숨이 새어 창문을 열었고 밤공기를 깊이 들이 마시니 답답증이 쑤욱 내려간다. 속이 허전한 게 시원 달콤 바삭한 간식이 당겨 아이스크림을 뜯었지.

 입이 까끌하고 속이 거칠어 먹고 싶은 것도 없더니 창 한번 열고 한 숨 진정이 된 거다.

 이렇게 쉽게 기분이 풀리는 사람이었나. 내가.

 익숙한 도시에 살다 훌쩍 제주로 날아온 것이 쉽다는 게 아니라 공기 냄새, 밤 풍경, 풀벌레 소리 따위에 안정을 느끼는 사람이었느냐 말이다.


 밤은 깜깜하고 고요하다. 풀벌레 소리를 가만히 들으면 종류가 한 둘이 아닌 녀석들이다. 합창은 아닌데 조화롭고 일정한 리듬이 있는 소리.

 멍하니 한참을 그냥 들었다. 숨은 어떻게 쉬는 거더라. 들숨 날숨을 신경써서 느껴보았다.

 반성이고 나발이고 그냥 평화롭고 감사한 밤.

 나 그리고 아이들, 멀리 있는 가족들 모두가 귀한 하루를 보내고 편안히 잠들어 있을 생각하면 다 괜찮은 날이라는 것.

 진짜 하루의 마무리는 이렇게 하는 것임을 제주에 와서 배웠다.


 낮잘밤반(낮에는 잘난 척 밤에는 반성)이 오랜 루틴이었다. 반성을 했으면 내일은 나아져야 맞는 것인데 낮에는 또 척만 하다 밤되면 반성하는 꼴. 반성도 척만 했나 모르겠다. 진중하게 해결 답안을 찾는 게 아니라 스스로 돌아보고 있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었지싶다.

 서울집 창 밖은 새벽내내 차들이 오가고 신호등이 반짝거려 블라인드를 반쯤 내리고 살았다. 대청소 하는 날 아니면 창도 잘 열지 않았다. 오토바이 소리가 시끄럽고 먼지도 많으니까. 창을 열지않아도 방방마다 환기해주는 공기순환기를 켜두는 게 편하고 좋았다.

 대충 거실 정리를 끝내고 블라인드 각도를 돌려 베란다 창 밖을 바라보면 반성하기 딱 좋은 풍경이 보인다.

 이 깊은 밤에도 바쁘게 다니는 사람들을 봐.

 저 수학학원 선생님은 학생들 보내고 늦게 까지 일하시는군.

 길 건너 아파트에 아직 잠들지 않는 사람들도 많네.

 저 사람도 프리랜서이려나.

 내가 오늘의 어떤 점을 반성해야하는지도 모르면서 낮에 최소한 척이라도 하며 살아야할 것 같은 거다. 서울의 밤풍경이 나를 피로하게 하는 줄 몰랐고 익숙한 편안함을 의심해본 적이 없다. 잘하고 있는 척, 노련한 척. 척이라도 할 수 있는 게 어디냐. 얼추 남들의 속도를 따라가는 것이 기쁨이고 위안이었다.


 술은 한 잔도 할 줄 모르면서 술 땡긴다 싶은 날은 벌떡 일어나 자동차 키를 챙겨 드라이브를 가곤 했다. 혼자 만의 공간에서 라디오를 켜고 서울외곽으로 달렸다. 특히 비오는 날 팔당댐 가는 게 좋았다. 폭우가 내리면 팔당댐을 방류하는데 그 모습이 장관이다. 쏴아아. 입을 벌린 댐 수문으로 황토색 물이 토하듯 쏟아지는데 보고만 있어도 내 속이 다 시원하다.

 울고 싶은데 비가 오고 팔당댐 방류하는 것까지 보게되는 날은 행운이다. 소리는 삼키고 눈물만 흘리는 게 버릇이라 차라리 울음을 참아내는 편인데 팔당댐이 악악대며 나 대신 울어주는 것 같아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다.

 이것도 아이들이 태어난 후로는 한번도 못 한 추억이 되었지만.


 아이들을 키운다는 것은 내 시간과 감정을 나누어 주는 일. 십년 쯤 되니 아이들과 시간을 공유하는 것에 제법 익숙해졌다. 다만 늦 자란 어른의 감정은 쏟아낼 구멍이 없다는 게 문제. 스쿠버다이빙, 여행, 심야 드라이브는 애둘맘 형편에 맞지않는 취미이자 스트레스 해소법이 되고 말았다.


 요가를 다닐까, 오름을 올라볼까, 해안도로따라 드라이브를 할까.

 결국 아무것도 안 할 거면서 상상만해도 좋다. 제주살이 8개월만에 생긴 오전 자유시간. 가만히 있어도 괜찮다는 건 처음부터 보기에 없었다. 아무것도 안하는 건 힐링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오전을 자유롭게 보낸지 한달 쯤 되었는데 나는 멍하니 있는걸 좋아하는 인간이더라. 움직이는 것 별로 안좋아하고, 땀을 흘리는 것은 질색이고, 스피드도 시끄러운 것도 싫어하며 무엇보다 비오는 날은 몸을 뽀송한 곳에 두고 비구경하는 게 아니라면 우산 쓰고 걷는 건 안하고 싶은 느리고 게으른 생각만렙 인간.

 생각을 멈추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생각해보고 남들은 이럴 때 어쩌려나 생각하고 이 생각이 지금 나한테 중요한가 또 생각하는 무한 생각루프. 나란 인간은 왜 이러는 지가 큰 고민이었는데 그냥 내버려두기로 한다. 생각하면 하는대로 어디까지 가나보자.

 내버려두니까 시시해졌나 눈이 돌아가고 한라산 백록담이 보인다. 오늘은 날이 맑은가보네. 아이들 돌아오면 해 지기 전에 바닷가 가자고 해야지.

 와! 생각이란 게 지금의 나로 넘어오는 게 아닌가.


 오늘 밤은 창을 열어 가만히 밤공기 냄새를 맡는 것이 참 좋다.

 하루 중 바닷가에서 아이들이 모래놀이를 하는 동안 파도소리를 들으며 노을을 멍하니 보는 시간을 제일 좋아한다. 파도소리, 아이들 웃음소리, 매일 다른 하늘을 보는  힐링이다.

 하늘이 맑은 날 숲으로 가 나무그늘 길을 따라 걸으며 우연히 만나는 노루도 기쁨이다.

 학교로 마중와 달라는 아이 부탁이 있는 날은 텀블러에 커피 한잔 내려담아 돌담길 따라 걷는 게 행복이다.


 오늘도 평화로운 제주.

 바람 냄새에서 평화로움을 느끼는 낯선 내가 조금 더 오래 제주에 머물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바다와 하늘, 숲과 바람에서 안정을 찾는 게 자연스럽고 익숙해질 때 까지.

 쉽고 빠르게 멘탈을 회복하는 법을 찾자.

 한두시간 사우나를 하면 컨디션이 돌아오는 남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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