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그 지독히 정치적인 행위에 대하여
2018년 겨울을 기점으로 문 밖에서 만나는 모든 이는 뚜렷하게 두 종류로 구분되었다. 남성과 여성. 그전까지 색이 섞여 불투명한 슬라임처럼 뭉뚱그려 남으로 인식되던 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현상이었다. 머리가 따로 생각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남성들 앞에서는 뒷목이 딱딱하게 굳었다. 몸매가 드러나기 힘든 롱 패딩을 입어 비슷비슷해 보이는 외형에도 순식간에 상대방의 성별이 파악되었다. 그중에서도 남색 패딩을 입은 남성이 보이면, 그럴 리가 없지만, 눈이 커지면서 동공이 고양이처럼 세로로 길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수많은 검고 흰 패딩의 무리를 보며 세로로 가늘어진 동공은 남색 패딩에 고정되었고 그럴 때마다 나는 주머니에서 잘 벼려진 스위스 나이프를 꺼내 남색 패딩을 입은 남성의 성기를 칼로 자르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남색 패딩을 마주칠 때면 하루에도 몇 번이나 왼손으로 성기를 늘려 오른손으로 날카롭고 신속하게 그것을 잘라내는 동작을 머릿속으로 반복해서 생각했다. 상대방이 내 동생을 성폭행한 가해자일 가능성은 0에 가까웠으나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내 주머니에 스위스 나이프 대신 동생과 맞잡은 손이 들어있다는 것이었다. 어딜 가든 나의 오른손은 동생의 왼손을 꼭 잡고 있었다. 주변에 남성이 있으면 슬그머니 내 뒤로 숨는 동생의 손을 더욱 꽉 쥐었다. 혹여나 핸드폰을 써야 할 때면 동생의 왼손을 내 오른팔 겨드랑이 밑에 끼워 넣거나 나의 왼손으로 고쳐 잡았다. 집 밖에서는 한 순간도 동생의 손을 놓은 적이 없다. 조금이라도 웃으면 반달 모양으로 휘는 나의 작은 눈은 그 해 겨울 아주 또렷한 보름달 모양을 유지했다. 세상의 절반을 차지하는 인구로부터 스스로를, 혹은 누군가를 지키는 일은 아주 피곤한 일이었다.
동시에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필사적으로 연애 상대를 찾고 있었다. 누군가와 감정적 교감을 원하거나 속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을 찾거나 내 편이 되어 줄 반쪽 따위를 찾는 일이 아니었다. 내게 부재한 남성성을 후천적으로 습득하려는 일에 가까웠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남자들이 다른 남자 옆에 있는 여자를 건드리지 않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연인이 될 남성에게 삶을 의탁하려는 의도는 없었다. 남자 친구를 사귀고 결혼을 하게 되더라도 그 안에서 데이트 폭력의 피해자나 성폭력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내게는 세상의 모든 남성으로부터 나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보다 내 옆의 한 남성에게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이 훨씬 통제 가능한 불안으로 느껴졌다. 위장장애와 불면과 생리불순과 과잉 감정과 업무능력 저하를 촉발하는, 한 마디로 내 삶을 순식간에 엉망진창으로 만든 이 불안의 크기가 작아졌으면 했다. 내가 사는 세상을 안전한 곳으로 바꾸는 길은 아주 멀어서, 차선책으로 가시적인 안정이나마 원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주 많은 권력을 가졌거나 아주 많은 돈을 가진 남자를 원했다. 내가 가진 권력과 돈은 가해자의 삶을 망가뜨리는데 아무 쓸모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면 몸이 아주 좋고 인상이 험악해서 창문을 열고 운전하는 동안에는 클락션 소리 한 번 듣지 못한 남자를 원했다. 그 누구도 내게 쉽게 다가오지 못하도록 옆에서 떡 버티고 서있을 보디가드 같은 존재 말이다. 내게는 성공한 사업도 명망 있는 가문도 없으므로 스스로를 지키면서 가해자를 구차하고 비참하게, 인생을 영영 못쓰게 만드는 방법으로는 힘 있는 사람과의 결혼이 가장 빠르고 확실한 길 같았다. 사법절차는 너무 오래 걸리는 일이었으며, 그들은 너무 공정한 판결을 내릴 것이다. 그전까지 생각해본 적 없는 기준으로 스스로를 판단하기 시작했다. 결혼시장에 놓인 상품으로써의 가치 말이다. 20대 후반에 외모는 대중적인 미의 기준에 부합하지는 않지만 내게는 시간을 두고 보면 찾을 수 있는 나름의 매력이 있었다. 부모님은 두 분 모두 노후가 보장되는 점잖은 직업을 가지고 있었으며 인터넷 뱅킹 어플은 나의 소득 수준이 동년배 중 상위 15프로에 든다고 했다. 무엇보다 아들을 둔 부모님의 친구들 몇몇은 시간이 흐를수록 농담처럼 결혼 이야기를 입에 올렸다. ‘ㅇㅇ이는 요즘 만나는 사람 있니?’, ’ 우리 ㅁㅁ이가 얼른 마음을 잡아야 ㅇㅇ이한테 장가를 갈 텐데.’ 가족끼리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그들의 자식과 대화하는 나의 모습을 멀리서 흐뭇하게 바라보는 모습으로 미루어보아 나는 아마 나쁘지 않은 신붓감이었다. 이제 나에게 맞는 남자를 찾을 차례였다.
틴더에서 만난 남자는 잠자리를 원했다. 처음 한국에 상륙했을 때만 해도 외국인 친구를 사귀는 용도로 알음알음 쓰이던 이 어플은 이제 대놓고 하룻밤을 보낼 상대를 구하는 이들로 포화상태가 된 것 같았다. 영어에 깊은 조예가 없는 이들도 ONS only(One Night Stand Only, 원나잇 상대만), FWB(Friends With Benefit, 연애는 하지 않을 섹스 파트너 구함)라는 표현에는 빠삭했다. 사진과 그 아래 달린 몇 줄의 자기소개로는 상대방에 대해 알기 어려웠지만 대신 여러 명의 사람을 훑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전기장판을 틀어놓은 따땃한 침대에 누워 괜찮다 싶은 남자의 사진은 오른쪽으로 넘겨 Like를 표시하고 별로인 사람의 사진은 왼쪽으로 넘겨 Pass 하다가 손에 힘이 빠져 핸드폰을 얼굴에 떨어뜨릴 정도가 되면 더 이상 내게 취향이라는 게 있는지 헷갈렸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유독 이 남자도 저 남자도 썩 괜찮아 보이는 날이 있으면 헬스장을 배경으로 선명한 복근 사진을 보고도 별 흥미가 생기지 않는 날도 있었다. 내가 뭐라고 남을 얼굴로 평가하나 싶어 자괴감이 들다가도, 나의 진면목을 알 새도 없이 사진만 보고 나를 like하지 않았을 수많은 상대들도 비슷한 짓을 하고 있으려니 싶어 사진을 오른쪽, 왼쪽으로 밀었다.
서울 소재 명문대를 졸업하고 분당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는 30대 초반의 틴더남은, 이 정보 중 어느 것도 믿을 수 없으나, 자기는 사랑 없는 섹스에는 관심이 없지만 속궁합이 너무 잘 맞았던 지난 연애 이후에는 섹스를 해보지 않고서는 연애를 시작하지 않기로 했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잠자코 듣고 있었던 이유는 내 취향은 아니었을지언정 상대방이 적당한 키에 넓은 어깨를 가졌으며 썩 잘생겼기 때문이었다. 흔히 보기 어려운 매끄러운 피부에 큰 눈과 날카로운 콧대를 가진 그 남자 얼굴은 날티가 풀풀 날렸지만 잘생긴 얼굴을 보고 있으면 슬몃 웃음이 나기도 해서 원래의 목적은 깜빡하고 눈 딱 감고 나도 잘 생긴 남자랑 잠이나 한 번 자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밖에 서있으면 이가 딱딱 부딪히는 추운 겨울이었고 자차로 내가 사는 서울 동남권에 온 그 남자는 한강공원에 차를 파킹해 두고는 아주 익숙한 듯이 너무 춥다, 우리 손 잡을까? 한 번 안아보자, 하고 말했다. 가로등 빛이 환하고 이 추위에도 사이클과 러닝을 하는 사람들이 종종 지나가는 한강공원에서 차를 빼면서 이런데 말고 좀 어두운 쪽으로 가면 아무도 몰라,라고 말하는 그 남자는 하룻밤을 위해 모텔까지 갈 생각도 없어 보였다. 과연 전 여자 친구와 시시티브이가 없는 공공장소에서 스릴 넘치는 섹스를 즐겼다는 분다웠다. 안타깝게도 내가 연애에서 원하는 것은 환상적인 속궁합 따위가 아니었다.
블라인드에서 만난 남자는 내가 마음이 따뜻한 여자이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블라인드는 사내 이메일 주소로 인증을 해야만 가입할 수 있는 익명의 직장인 커뮤니티 애플리케이션인데, 이곳에서는 공공연한 업계의 비밀이나 루머가 도는 한편 업계와 상관없이 주제별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카테고리도 있다. 그 카테고리 중 하나가 셀소(셀프소개팅)인데 자기소개를 적어 올리면 한 달에 열개까지 무료인 쪽지 기능을 사용해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 셀소를 할 때 이 어플의 최대 장점은 최초 가입 시 사내 메일 주소로 인증을 거쳐야 하고 인증한 회사명이 닉네임 옆에 뜨기 때문에 상대방의 회사를(적어도 한때 몸 담았던 직장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문체가 단정해서 내가 먼저 쪽지를 보낸 남자들 중 대부분은 사진 교환 후 나에게 자신이 아닌 다른 좋은 인연을 빌어주었으므로 나는 직접 스스로를 소개하는 글을 올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십 대 후반의 외국계 기업에 재직 중인 여성이며 춤추는 것을 좋아하는 활동적인 성격에 시사 교양할 것 없이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다고 글을 올린 것은 어느 무료한 토요일 오후였다. 글을 올리고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쪽지함이 터졌다. 대답하는 속도가 새로 쪽지가 오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어 급히 글을 내렸다. 처음에는 일일이 안부를 물었으나 쪽지의 개수가 50개가 넘어가자 누가 누군지 분간이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러서 ‘쪽지가 너무 많이 와서 대답하는데 시간이 좀 걸릴 수 있으나 찬찬히 살펴보고 꼭 대답드리겠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남겨주시면 감사하겠다.’는 말을 복사 붙여 넣기 했다.
숱한 쪽지의 홍수 속에서도 마이바흐 남과 만나게 된 이유는 그가 대한항공에서 승무원으로 근무하는 여성의 사촌오빠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나의 글에 화답한 유일한 여성이었고, 남자가 날 괜찮게 봐주는 것보다 같은 여자가 날 괜찮게 봐주는 게 훨씬 훨씬 훨씬 기분이 좋았기 때문에 나는 단숨에 그녀의 사촌오빠를 만나겠노라 대답했다. 대한항공 언니는 사촌오빠가 나이는 좀 많지만 정말 괜찮은 사람이고 미국에서 공부를 해서 박학다식해서 나랑 잘 맞을 거라고 했다. 능력이 좋아 앞으로 미래 걱정할 필요가 없을 거라는 점을 특히 강조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녀가 날 마음에 들어 한 이유는 내가 여타 다른 여성들의 셀소 글과는 다르게 키와 나이에 대한 조건을 달지 않았기 때문이다(남자들의 셀소를 읽을게 아니라 다른 여자들의 셀소 문법을 공부하고 글을 올렸어야 했다). 키와 나이는 정말 아무래도 좋았고 능력 좋다는 말에도 저랑 비슷하게만 벌면 돼요,라고 대답하는 나의 ‘외적인 요소를 보지 않는’ 모습이 그녀의 마음을 열어 ‘마음 여리고 능력 좋지만 당최 괜찮은 여자를 못 만나는’ 사촌오빠를 열성적으로 어필하게 한 것 같다.
마이바흐 남은 마이바흐를 타고 왔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몇 번 출구 앞에 차를 가지고 오겠다는 말에 차 번호와 색상을 물었더니 마이바흐입니다,라고 대답한 그는 운전기사를 일찍 퇴근시키고 직접 차를 몰고 등장했다. 어린 시절부터 미국에서 자란 그는 미국 변호사로 갱단을 변호하며 큰돈을 벌었다고 했다. 지금은 동대문에서 의류 사업을 하고 있고 장차 커피 체인점을 준비하고 있다는 그가 데려간 타이 레스토랑에선 사장님이 ‘아이고, 변호사님 오셨어요’하고 인사를 하더니 내가 그의 아내라도 되는 듯 ‘조오은 시간 보내러 오셨나 봅니다’하고 웃었다. 나랑 11살인지 13살인지 차이가 나서 40대 초반인 그는 연애를 쉰 지 오래되었다고 했다. 마지막 연애는 8년 전으로 당시 한 달에 두 번씩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만나던 여자 친구가 자신의 친한 후배와 모텔에서 나오는 것을 다른 후배가 보고 알려줘서 헤어졌다고 했다. 자신은 진심으로 그 여자를 사랑했기 때문에 전 여자 친구가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를 빌었다면 그 여자를 다시 받아줬을 거라고 했지만 그 여자는 마이바흐 남에게 돌아올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마이바흐 남의 전 여자 친구가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짧은 대화를 바탕으로 추론해보았다.
마이바흐 남(이하 마): 얼른 아이를 낳고 싶습니다. 아이는 둘 정도. 딸이 태어나면 너무 예쁠 것 같아요. 딸바보라고 하나요? 저는 완전 딸바보가 될 것 같아요. 같이 피아노도 치고, 요리도 하고….
나: 아들이 태어나면요?
마: 아들은 뭐. 사업시키려면 이것저것 가르쳐야겠지요.
마: 저는 여자 친구가 예쁘게 입었으면 좋겠다 생각해서 옷을 선물해주는 게 큰 기쁨입니다. 백화점 들어가자마자 이것저것 입어보고 마네킹이 입고 있는 대로 주세요, 해가지고 그대로 입고 있는 걸 보면 참 예뻐요.
나: 그러시군요.
마: 저는 밀당 이런 거 싫어합니다. 한 번 만나면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이다, 딱 감이 오니까요. 그다음부터 저는 직진입니다.
나: 저도 밀당은 피곤한 것 같아요. 서로 좋은 감정이 있는데 굳이 시간을 끌 필요가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혹시 24일에는 뭐하시나요?
마: 그날은 바쁘죠. 대목인데요.
나: 그러시군요.
마: 이럴 땐 ㅇㅇ씨가 그래도 만나자고 매달리면 좋죠.
재력과 사회적 영향력으로만 따지면 마이바흐 남이 내가 목표로 한 연애의 대상에 가장 가까웠을 것이다. 비록 2020년대에 40살이 아니라 1980년대에 40살인듯한 성인지 감수성을 탑재한 사람이었지만, 집안 어른들 말고는 교류할 수 있는 한인이 없는 보수적인 교포 집안에서 자란 그의 성장배경을 고려하면 아주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이 사람과 연애하는 것이 직업이라고 생각한다면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해보았지만 나는 연애를 하고 싶었지 커리어를 바꿀 생각은 없었다.
마지막으로 소개팅을 통해 만난 남자는 진정한 사랑을 찾고 있었다. 사랑이 이 지옥 같은 상황으로부터 나를 구해줄 거라는 믿음은 없었지만 나 역시 사랑에 대한 기대를 아주 놓은 것은 아니었다. 불특정 다수의 남성으로부터 나를 지켜줄 연애 상대와 사랑까지 나눌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연애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모두에게 친절하고 쉽게 사과하며 길거리에서 나를 치고 간 사람에게까지 과하게 예의 바른 사람은 내가 원하는 종류의 안전을 줄 수 없었다. 내가 원하는 건 성폭행을 당하고 왔을 때 함께 울어주고 분개하고 트라우마로부터 회복할 수 있도록 보살펴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건 이미 혼자서도 하고 있었으니까. 내게 필요한 것은 길거리에서 나의 가슴을 만지고 유유히 지나가는 행인이 없도록, 지하철 역사에서 치마 아래에 들이밀어지는 카메라가 없도록, 어두운 밤 골목에서 혼자일 때보다 모르는 사람이 있을 때 더 무서워하지 않도록, 반경 1미터를 비워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사랑이라고 사회가 약속할 수 없는 그 안전거리를 약속 할리 없었다.
흔히 말하는 조건만 보기 시작하니까 선정 제외기준이 아주 명확해졌다. 그동안 중요하게 여겼던 성품, 가치관, 자존감 같은 것들은 수치로 판단하거나 우열을 매길 수 없는 것이었다. 대신 학벌, 직업, 자산 같은 단어들이 두 사람 사이에 놓였을 때 일견 소통의 오류를 최소화시키는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 연애가 더 쉽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상대방이 내게 쏟아붓는 사랑의 크기를 가늠하거나 내가 느끼는 감정의 종류를 파악할 필요가 없이 이해득실을 따져보기만 하면 되었으므로 업무 체크리스트처럼 하나씩 해치우는 맛이 있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인류애가 너무 커서 연애가 어려운 타입이었다. 나의 마음이 너의 마음과 다르지 않을 것을 의심치 않고 주변에 있는 모두를 사랑했던 나는 개인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기류 같은 것을 알아차리는데 젬병이어서 그동안엔 고백을 받는 일이 자주 뒤통수를 맞는 것 같았다. 분명 어제까지 좋은 친구였잖아, 하고 난처한 얼굴로 이제부터 관계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는 식이었다. 대신 건조한 시선으로 식사와 찻집과 산책을 차근차근 거쳐 예정된 고백을 받는 절차는 에너지 소모가 상대적으로 덜했다. 능해본 적 없던 연애에서 사랑을 빼니 관계가 오히려 간단명료 해졌다.
그렇다고 목적을 띈 만남에 감정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손을 잡고 걸을 때, 꽃다발을 선물 받을 때, 다음 콘서트는 자기랑 같이 가자는 애교 섞인 투정 같은 것을 들을 때면 약간의 설레고 들떴다. 때때로 성욕에 사로 잡히기도 했다. 상대방에게 성적 매력을 느꼈기 때문은 아니었다. 에너지 소모가 덜해졌다고는 하나 두 사람이 관계를 맺는 연애는 여전히 버겁고 섹스는 너무 쉬워 보였기 때문이다. 이 정도의 크기의 고난 앞에서 아이스크림 통을 들고 우는 드라마 주인공들은 없었다. 화면 속의 여자들은 처음 만난 사람과도 화끈한 밤을 보내고 샤워도 하지 않은 채 다음 날 속옷 가지를 챙겨 남의 집에서 가뿐하게 걸어 나갔다. 그들처럼 술과 담배, 섹스가 있다면 다종 다양한 문제를 일시적으로나마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해결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 지금을 망각할 수만 있다면야 상대를 불문하고 아주 난잡하게 뒹굴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그 감정은 곧바로 죄책감과 자기혐오로 얼룩졌다. 동생은 죽네, 사네 하는 와중에 연애라니. 남자와 손을 잡고 입을 맞추다니. 감정이라는 걸 느끼다니.
불완전하고 불건강한 방법으로나마 내 삶을 지탱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숱한 시간 동안 사실은 늘 사랑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랑과 믿음, 안전. 내 세계에선 이제 자취를 감춰버린 그것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