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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의언니 Jul 07. 2022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상)

내가 겪은 성추행은 누구의 잘못일까

성폭행 피해자들은 ‘내가 ㅇㅇ했더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라고 스스로를 자주 탓한다고 했다. 말도 안 되는 말이다. 성폭행은 언제나 어디서나 이유를 불문하고 일어나며 잘못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것이다. 그러니  동생 또한 잘못한 것이 없었다. 여전히 댓글창에는 ‘ㅇㅇ하니까 저런 꼴을 당하지’, ‘그러니까 여자가 ㅇㅇ하면 안 된다’는 사이버 폐기물들이 달렸으나 우리는 그렇게 말해서는 안된다고 배운  있었다. 동생이 가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멈출  없다고 꺽꺽 울면서 겨우 말을 뱉어낼 때면 나는 턱에 힘을  주고 울음을 참으면서 그런 생각은 하는 게 아니라고 힘을 실어 이야기했다. 동생도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다만 현실이라고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끔찍한 일이 일어나서  순간의 전후를 곱씹을 수밖에 없어서 하는 이야기였다. 나는  번이고 동생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잘못이 아니야.


하지만 나 자신은 그 질문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단기 어학연수나 다녀올까?라는 질문에 그러라고 대답하지 않았더라면’, ‘용돈을 쥐어주며 잘 다녀오라 하지 않았더라면’, ‘12월 31일 저녁에 전화를 했더라면’, ‘그때 차라리 다른 곳으로 함께 여행을 가자고 했더라면’. 그랬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까? 동생이 그 프로그램에 아주 많이 참여하고 싶어 했던 것도 아니었는데, 그냥 가볍게 참여해볼까 생각했던 마음에 조금이라도 무게를 더한 것은 아닌지, 나의 한 마디와 알량한 금액의 용돈으로 동생을 부추긴 것은 아닌지, 그리하여 이 끝도 없이 어둡고 발을 뺄 수 없는 진창에 동생을 가둬버린 것이 내가 아닌지, 나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물었다. 모든 게 나의 탓인 것만 같았다. 괴로움이 짙어져 사실은 나도 같은 생각을 한다고 털어놓았을 때 동생은 자기 이야기를 할 때보다 더 서럽게 울면서 당연히 언니 탓이 아니야,라고 말했지만 동생은 모른다. 동생이 성폭행을 당하기 전에 내가 겪은 두 번의 성추행 사건에 대해서. 나는 내가 경험한 성추행 사건에 대해 내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다고 굳게 믿었다. 동생이 성폭행당할만한 사회를 만드는데 나의 침묵이 일조했다고. 그러니 동생을 위험으로 몰아넣은 것은 나 자신이라고.



***

Episode 1.


대학교 2학년, 한 영어 방송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미국 국적의 백인 중년 남성 D와 오랫동안 해외 생활을 한 젊은 한국인 여성, S언니와 함께 셋이서 일주일에 30분씩 편성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때는 2000년대 초반으로 인디뮤직이 한참 유행할 때라서 점심 식사 후 듣기 좋을 법한 발랄한 인디밴드들의 노래를 두, 세곡 정도 소개하는 레퍼토리였다. 녹음한 내 목소리를 듣는 것은 고역이었지만 즐거운 일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오래된 라디오 방송국에 가려고 산 중턱을 오르고, 이런저런 인디밴드의 노래를 들어보며 대본 초안을 작성하고, PD님과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첨삭을 받아 동그란 마이크 앞에서 입을 움직이는 일. 지금 생각해보면 사회 물정 모르는 어린애라 다들 예쁘게 봐줬던 것 같다. 예전에 새벽 방송을 했다는 PD님은 무섭지만 목소리가 옥구슬처럼 맑았고, D는 발음만 좋았지 영문법에는 까막눈이던 나를 대신해서 전치사 따위를 여러 번 고쳐주었다.


어느 여름날이었고 녹음을 끝마친 나는 먼저 방송실을 나왔다. 계단을 걸어내려가고 있는데 뒤에서 D가 불러서 층계참에서 기다렸다. 같이 내려가려고 백팩을 양손으로 잡아매고 기다리고 있는 내게로 D는 천천히 다가오더니, 나를 코너로 몰아넣고, 내 가슴 위에 손을 얹었다. D가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만 해도 뭔가 이상하다고만 생각했지 그의 손이 내 몸에 닿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나는 D를 바라보고 가만히 있었다. 뒤늦게 학교에서 배운 내용이 생각나서 나는 말했다.


“This is sexual harassment(이건 성추행이야).”


학교에서는 상대방이 내게 하고 있는 행위를 주지 시키라고 가르쳤다. D는 미동도 없이 빙글빙글 웃더니 내 가슴을 움켜쥐었다. 나는 한 번 더 말했다. 이건 성추행이야. 혀가 꼬였다. 그래도 D는 손을 떼지 않더니, 손을 내리고 먼저 계단을 내려갔다. 나는 방금 있었던 일을 소화시키기 위해 인상을 쓰고 그 자리에 조금 더 오래 서있었다. ‘안 내려올 거야?’ 나는 고개를 들어 D를 쳐다봤고 내 몸은 순순히 계단을 내려갔다. 판결문에서 그리도 자주 언급되는 성적 수치심을 나는 느꼈던가. 수치심을 느꼈다면 그건 셔츠 위에 손이 닿았을 때가 아니라, 내 가슴을 만지고도 아무 일 없는 듯 나와 나란히 발걸음을 옮기는 그의 한 발짝 뒤에서 걸었던 그때 느꼈다. 늦은 오후의 공기는 여느 때와 같이 후덥지근했고, 종아리에 비추는 볕도 방송국에 올라갈 때와 다를 바 없이 따뜻했다.   


그 이후로 나는 D와 단 둘이 있을 기회를 피했다. 녹음실에 들어갈 땐 S 언니가 먼저 들어가길 기다려 가능하면 D 옆에 앉는 것을 피했다. 녹음이 끝나면 잽싸게 S 언니에게 팔짱을 끼는 식으로 D와의 거리를 벌렸다. 녹음 전에 일찌감치 도착하는 일은 없었고, 대본의 감수도 가능하면 PD님께 부탁했다. 방송국에서 나올 때 더 이상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았다. 인사를 하곤 쌩하니 계단을 달려 내려와 도심까지 달음박질했다. 산 중턱에 하얗게 서있는 건물을 가끔 뒤를 돌아보면서. 남은 여름 동안 내 옷은 점점 더 길어졌다. 내가 입은 청바지가 너무 짧았을까? 흰 티에 속옷이 비쳤을까? 화요일의 옷차림은 어두운 색의 펑퍼짐한 셔츠와 무릎까지 오는 반바지로 바뀌었다. 나는 변했지만 D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소와 같이 인사말을 건넸다. 그러면 나도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그에게 안부를 물을 수밖에 없었다. 대신 더 이상 대화가 이어지는 일은 없었다. 인사치레를 하는 동안에는 매번 어떤 모멸감이 들었다. 그의 잘못과 상관없이 둘의 관계에서 여전히 그가 권력을 쥐고 있다는 것을 감각했기 때문이리라.


그 방송국에서 1년 반 동안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동안 가요계에서 인디밴드의 인기는 천천히 사그라들었으며 방송국은 인디음악 대신 세계로 뻗어나가기 시작한 K-POP에 대한 프로그램을 편성했다. D는 그 사이에 일을 그만뒀다. 한국인 아내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했던가. 새로운 젊은 백인 남성 J가 그의 자리를 채웠고 그로브터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계약도 종료되었다. J가 특유의 친화력을 발휘해 방송국 사람들 사이에 녹아들고 새 프로그램도 자리를 잡아갈 무렵 피디님과 다른 여자 스태프가 이야기 나누는 것을 들었다.


“J가 오고 나서 분위기 좀 좋아지지 않았어?”

“맞아요. D가 있을 때보다 훨씬 편해졌어요.”


D   여성에게도 손을 댔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D 성추행 혹은 성희롱 비슷한 내용만 입에 올려도  여자 어른은 그동안의 사회생활에서 쌓아온 스킬로 노련하게 대처했을 것이다. 나는 어리고 세상 물정 모르는 대학생이었으며 그는  점을 정확하게 파악했다. 나는 학교에서 배운 대로 나의 몸을 만지지 말라고, 당신은 잘못된 방식으로 나의 성적 결정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분명히 말했다. 그러나 학교는 그다음에 대해 가르쳐주지 않았다. 상대방이 손을 떼는 대신 나에게  발짝  가까이 다가와 코너에 몰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소리를 질러야 하는지, 그렇다면 ‘도와주세요라고 해야 하는지 아니면 ‘불이야라고 말해야  효과적인지, 사람들이 몰려오면 그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몰라서 그의 손길을 뿌리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사회에서  정도의 성추행은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되고 그렇기 때문에 이를 공론화하는 것이 내게 어떠한 득도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이상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것이다. 그도 내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의 나라면  “ 하는 짓이야  새끼가라면서 옆에 있는 의자라도 들어서 상대방의 뚝배기를 깨버릴지도 모르지만 그때의 나는 세상에 대한 화가 아직  쌓인 사람이었다. 그때 이미 노련한 스킬을 지니고 D 손길을 피해 갔을 방송국의 다른 여성들을 생각하면 조금 슬퍼진다. 그들도 나와 같은 방식으로 세상에 대한 화와 스킬을 얻었을까 봐. 나는 아직 화가 충분히 쌓이지 않은  세상의 어린이들이, 청소년들이, 어린 어른들과 나이 많은 어른들이 같은 경험을 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 이 글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하)>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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