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와 같이 한가했던 오후 다섯 시가 지난 무렵. 이제 아무도 안 오겠지 싶어서, 느긋하게 할 일을 하고 있는데 한 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하시고는 책방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사진에 눈에 담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내 애정이 담긴 이 공간 곳곳을 눈에 담아준다는 게 너무나도 감사하고 값진 일이다. 사실 찾아와 주시는 손님들께 궁금한 점도 많고, 친해지고 싶어서 말을 걸고 싶다는 마음은 굴뚝같지만 막상 해보려니 입이 떨어지지 않을 때가 참 많다.
그날은 무슨 용기가 났는지, "멀리서 오셨어요?"라고 먼저 여쭤봤다. 그러자 근처 타 지역에서 왔다며, 여기가 꼭 오고 싶어서 전부터 찾아봤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이미 마음이 꽉 차게 행복해졌다. 이 작고 조용한 공간이 누군가에게 이렇게 궁금하고, 가보고 싶은 공간이 될 수 있다니.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손님이 "어? 목요일의 선물! 여기도 있네요."라며 내가 공동저자로 함께한 책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목요일의 선물 읽어봤는데, 저는 첫 번째가 제일 좋더라고요."라고 이어서 말하는데 호들갑을 떨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거 제 글이에요!!!" 냉큼 말했다. 말하고 보니 혹시 좋았던 글이 내 글이 아니면 어쩌나 싶어 "첫 글 맞아요? 두 번째 글은 아닐까요?"라고 물었다. 손님은 책을 펼쳐보더니 "맞아요! 첫 번째!"라며 확신을 주었다.
세상에 세상에 이런 운명 같은 순간이 있나. 우연히 마주치는 순간이 마음에 와닿길 바란다고 말하고 또 말했지만, 이렇게 운명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되어버릴 줄이야. 손님과 한참 얘기를 나누다가, 손님이 이 순간 여기서 보내는 시간과 책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말을 아꼈다. 어쩌면 그날의 그 순간은 손님보다도 나에게 훨씬 더 오래 기억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