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기분이 나쁘다고 몇 번을 말하며 간 할아버지가 다시 왔다. 이번에도 손엔 서류를 든 채였다. 들어오자마자 책장으로 직행해서는 책장에 서류를 끼운다. 내가 놀란 눈으로 할아버지를 쳐다보자, "이따가 올 거예요."라고 말한다.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네?"라고 되묻자 또 한 번 "이따 누가 올 거예요."라고 말한다. '아~ 이따 다른 손님이 오면 주문을 한다는 말인가?' 생각하는데 "여기 두고 가면 누가 가지러 올 거라고."라고 다시 말한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이야. 전해줄 서류를 북카페 책장에 그냥 넣고 간다고? 진짜 너무 황당했다.
"거기에 두고 가시면 안돼요. 책 보는 분들도 계셔서요." 이 말을 듣고는 "잠깐 여기 두면 바로 가지러 갈 건데."라고 말한다. 하는 수 없이 그냥 내가 보관하고 있겠다고 나에게 달라고 했다. 서류를 받아 카운터 위에 올려두니 "이거는 거기에 두면 안돼요."라고 열을 내시는데, 아니 그러면 애초에 책장에도 두면 안되는 거 아닌가? 참내. 그래서 카운터 뒤에 가져다두니 이따 잘 좀 전해주라고 하며 나갔다.
잠시 후, 다시 돌아온 할아버지는 다른 할아버지와 함께였다. 들어오자마자 자리에 앉더니 나를 불러서 "아까 그거 좀 갖고와봐요."라고 말한다. 가져다 드린 후에도 고맙단 말 한 마디도 듣지 못했다. 오늘도 주문은 안하고 한참을 이야기한다. 그 서류는 보험서류였고, 같이 온 할아버지가 결정을 망설이자 그제서야 "따뜻한 거 한 잔 하면서, 얘기해봅시다."라며 음료를 주문한다. 아무래도 원래는 보험 계약을 마치고 서류만 전해주려다가, 계약을 망설이는 모습에 다시 만난 듯 했다.
음료를 늦게 주문하는 건 할아버지 만의 영업방식이었다. 계약을 성사하면 그 기념으로 한 잔 사겠다고 하는 것이었고, 계약이 원활히 진행되지 않으면 분위기를 느슨하게 만들기 위해 한 잔 사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한참 어린 나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 무례해서 올 때 마다 참 반갑지 않지만, 매번 영업을 위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멀끔하게 단장하고 다니는 것과 자기만의 영업전략으로 상대를 다루는 데에 최선을 다하는 건 어찌보면 배울 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에게든 무례한 건 정말 참을 수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