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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무원 덕림씨 Jan 08. 2021

90도 허리 굽은 할머니!  왜 큰 절을 할까?

요구를 너머 욕구를 해결하라!

아침 9시 출근과 함께 하루 일을 시작할 무렵, 허리가 90도 구부러진 할머니가 머리로 출입문을 열고 들어왔다. 누군가를 찾더니 한 직원에게 90도 인사를 한다. 머리가 땅에 닿을 것 같았다. 한동안 얘기를 나누더니 다시 그렇게 또 인사를 하고 나가신다.      
할머니와 대화 내용이 궁금했다. 상담했던 직원에게 물었다. ‘할머니가 무슨 일로 오셨냐?’고.. ‘별일 아니다’ 했다. 그래도 ‘무슨 일로 아침 일찍 오셨냐?’고 되물었다. ‘손자가 시청 공익요원으로 근무하는데 잘 좀 봐주라’했단다. 별일 아니라 했지만 순간 나의 머리가 띵~ 했다.  
90도 허리 굽은 할머니가 왜 시청까지

   

내가 알고 있는 공익요원은

내가 알고 있는 공익요원은 ‘신체 어딘가를 다쳤거나, 학업을 중단한 아이로 생각했는데, 저렇게 한 가정의 소중한 아이구나!’ 맞아!. 지금은 아들 하나 딸 하나 낳기 때문에 그 가정에서 ‘하나밖에 없는 귀중한 아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순간 가슴이 쪼여옴을 느꼈다. 그리고 팀장에게 ‘시청에 근무하는 공익요원을 전수 조사해보라’ 했다. 조사를 하여 분석한 결과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 ‘300명 중 60명이 고퇴자’였다. ‘매년 60명의 고퇴자가 발생한다면 도시의 문화의 수준은 어떻게 될까? 반드시 학력이 높아야 문화 수준이 높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고등학교 졸업을 하는 것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할머니 손자도 여기에 해당되었다. 번듯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공익요원으로 3년간 근무하는 동안에 고졸검정고시반을 운영해서 고교 졸업장을 받게 해 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검정고시반 운영을...


검정고시반 운영_이렇게 험난할 줄

마침 그때, 주민자치과장으로 주민자치센터를 리모델링하는 시점이었다. 시청과 가장 가까운 동사무소를 개수하면서 30명이 공부할 수 있는 학습동아리 공간을 하나 만들었다. 그리고 이아이들을 지도할 자원봉사 선생님 6명을 추천받았다. 그런데 이아이들에게 책을 사서 가져오라 하면 잘 안될 것 같았다. 그래서 책은 시청에서 제공할 생각을 했다. 책값을 계산해보니 3,000만 원 정도 소요되었다. 바로 의회에 예산을 요청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책값을 의회에서 삭감하겠다는 것이다. 삭감 이유는 간단했다. '공익요원 검정고시반 운영은 교육 청일이지 시청일이 아니다'는 것이다. ‘의원님! 한 도시의 문화 수준을 높이기 위해 추진한 일인데 왜 교육청 일입니까? 시청일이지!’라고 따지고 싶었다. 그러면 ‘그래 너 똑똑하다. 나는 삭감할 것이다.’ 이럴 것 같았다. 속내를 숨기고 ‘의원님 말씀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이번만은...’ 계속 사정했다. 그렇게 사정했어도 1차 상임위원회에서 삭감되었다. 난제였다. 2차 예산결산위원회 회의에서 다시 사정했다. ‘예산 낭비하면 안 된다’는 조건으로 어렵게 예산이 확보되었다. 이제 공간도 마련되고, 선생님도 확보되었다. 예산도 성립되었으니 시작만 하면 되었다.


1주 만에 7명만_배가 고파 간다

60명 중에 빨리 마치게 되는 30명을 우선 선발했다. 오후 4시부터 저녁 8시까지 공부를 시켰다. 매일 끝나는 8시경에 현장을 가보았다. 처음 3일까지는 모두 잘 나왔다. 4일째부터 한두 명씩 빠지기 시작했다. 날이 갈수록 빠지는 사람이 늘었다. 일주 정도 지나니 다 도망가고 7명밖에 남지 않았다. 걱정이 되었다. 무엇보다 예산 3천만 원이 걱정되었다. ‘의원들이 하지 마라 할 때 하지 말 것을... 괜히 했다’하는 후회와 ‘예산낭비라면서~ 무슨 짓이냐!' 고 따지게 될 텐데... 감당해야 할 감사가 벌써 걱정되었다.


하루는 공부를 하지 않고 ‘모두 모이라’ 했다. 왜 중간에 도망가는지 물었다. ‘배가 고파서 간다’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맞는 말이다. 돌도 소화할 20대인데... 그것을 몰랐다. 그럼 ‘배가 고프지 않게 하면 되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궁리하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지역의 빵집 중에 오후 6시까지 판매가 안되면 빵을 복지시설 등에 제공하는 제과점 2곳을 섭외했다. 매일 6시경이면 그곳에서 빵을 공급받고, 우유를 제공했다. 그중에 힘센 청년을 한 명 반장으로 임명하고, 임무는 도망가는 사람을 관리하라 했다.


허리 굽은 할머니 소망_ 13명 합격으로 이어지다

이런 과정을 하나하나 해결하면서 계속 진행했다. 첫 시험에 7명이 합격했다. 두 번째 시험에서 6명이 합격했다. 13명이 고등학교 졸업장을 가슴에 안았다. 널리 알리고 싶었지만 그들의 자존감을 위해 조용하게 진행했다. 공익요원 들어오기 전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미래를 생각하지 않던 아이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야간대학에 원서를 내고 입학을 했다. 삶이 달라졌다.     

가치 있는 일이지만 힘들어...

허리가 구부러지고 불편한 몸이지만 왜 할머니는 이른 아침에 시청까지 왔을까? 갈 것인지? 말 것인지? 오늘? 아니면 내일?... 수백 번 생각을 거듭한 끝에 오셨을 것이다. ‘손자 좀 잘 봐주라’라는 말 한마디 하려고 오셨을까? 아니다. 그렇게 말은 했지만 마음속에 품고 말하지 못한 것은 무엇일까?  ‘남들 다 다니는 고등학교도 못 다닌 우리 손자가 다른 아이들에게 멸시나 받지 않은지? 실수나 하고 있지 않은지?’ 그것이 걱정되었던 것 아닐까?       


Need는 ‘요구’가 아니라 ‘욕구’이다

공공의 영역은 끝이 없다. 우리가 걸을 때 밟히는 것들... 도로, 공원, 도서관, 학교 등등. 우리가 바라볼 때 눈에 띄는 것들... 휴지통, 전봇대, 간판, 광고판 등등. 모두가 공공의 영역이다. 범위를 어디까지 할 것이냐? 에 따라 하는 일도 달라진다. 검정고시반 하면 교육청 일 같지만, 한 도시의 문화의 영역으로 확대하면 시청 일이다. 90도 구부러진 허리로 팔이 아닌 머리로 문을 열고 들어선 할머니! 머리가 땅에 닿도록 큰절을 올리는 할머니! 를 위해 무엇을 해결해야 할까? 요구가 아니라 욕구를 해결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감동한다.  Need는 ‘요구’가 아니라 ‘욕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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