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 25년의 지역의 미래
지난해 모방송사에서 '지방자치 25년의 지역의 미래'라는 타이틀로 대담프로 참여를 요구했다. 우리나라 자치분권의 핵심 역할을 하는 대통령 소속 자치분권위원회 위원장과 약 1시간을 대담을 하는 것이라 했다. 처음에는 거부를 하다가 '공무원 덕림씨'의 저자로서 작가로 참여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중앙집권시대와 지방분권시대를 동시에 겪었던 사람이다. 그래서 비교하면서 설명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지방자치를 2단계로 나누어 시행했다. 1단계라 할 수 있는 1991년에는 지방의원만 선출했고, 1995년에 지방자치단체장을 선출하면서 완전한 지방자치제를 시행하게 된 것이다. 공교롭게도 나는 1단계인 1991년에는 지방의회에서 의회 업무를 총괄하는 의사팀장을 했고, 2단계인 1995년에는 민선시장을 직접 보좌한 경험이 있다. 그 후 지방의 특화사업을 몇 건 처리한 경험이 있다. 되돌아보니 지방자치 현장의 실질적인 이야기를 진솔하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주민참여가 중요한데 현실은?
김순은 위원장은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태동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학자로서 중추적인 역할을 해오신 것이 느껴졌다. 균형적인 논리와 해외사례도 풍부했다. 다만, 우리나라 현장 여건에 대한 실제 사례 경험은 부족할 수밖에 없다. 나는 바로 이 부분을 솔직하게 얘기하였다.
우리나라 지방자치 흐름은 크게 지방지치에서 지방분권으로, 다시 자치분권으로 진행하는 과정이다. 처음 시작할 때는 중앙의 권한을 많이 주라는 식이였지만, 이제는 우리 일은 우리 스스로 할 테니 예산을 달라는 시점인 것 같다. 이런 시스템이 성공하려면 '주민참여'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김순은 위원장과 지방자치 25년 지역의 미래 대담
정부의 기준과 시스템은 완벽했다
2000년 첫 과장 보직이 주민자치과장이었다. 주민자치센터를 활성화하는 일이 나의 주된 일이었다. 정부에서도 주민자치시대를 맞아 주민참여의 중요성을 알고, 이제는 읍면동사무소가 정부의 일을 집행하는 기관이 아니라 주민이 참여하는 공간으로 변화시키려는 시도를 하였다. 정부의 읍면동 기능 전환 기준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당시 정부에서 읍면동의 기능을 주민참여의 장으로 전환하기 위한 기준을 보면
1. 읍면동의 기능중 지도, 단속, 세금 업무를 본청으로 이관하고 복지, 건강, 문화, 소통 업무 위주로 개선한다.
2. 업무가 전환되니 공무원수를 20-30명에서 7-10명 내외로 조정한다.
3. 남은 공간을 주민이 제반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다용도 공간으로 개선한다.
4. 읍면동당 개선사업비로 7,000만 원 지원한다.
그러나 지역의 현장은 위아래가 벽이었다
정부기준에 따라 읍면동의 기능을 조정하면서 남은 공간을 개선하면 주민참여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그리고 주민참여 프로그램을 지원하면 된다. 이렇게 읍면동을 개선하기 위해 잘하고 있다는 곳을 선진 시찰을 했다. 경기도의 한 동사무소를 찾아 동사무장을 만났다. 소파에 앉아 차를 한잔 나누면서 하는 첫마디가 '자치센터를 했소? 안 했소?'하고 물었다. '아직 안 했다'라고 했다. 대답이 끝나자마자 '아직 안 했으면 하지 마세요.'였다. 순간, 머리가 돌 것 같았다. 나의 임무는 주민자치센터 활성화인데 '하지 마라 라니ᆢ' 내가 여기까지 왜 왔는지? 머리가 멍해지면서 더 이상 대화를 할 수 없었다. 화장실 가는 척하고, 현관으로 나와 앞에 널려진 아파트를 바라보면서 허탈하게 서 있었다. 젊은 여직원 한분이 다가왔다. '순천에서 오셨어요. 2년 전 이곳에 근무하다 본청에 가서 승진 후에 지난달에 이곳에 다시 왔습니다.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지 놀랍습니다. 2년 전에는 우리 동에 하루에 많아야 민원인이 20-30명 왔는데, 지금은 매일 200명이 넘게 찾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주민센터가 대단한 것 같습니다.' 누구 말이 옳을까? 머릿속이 점점 복잡해졌다.
모든 결정은 주민을 위해라면 단순하다.
먼 거리를 돌아오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결정했다. 젊고 생기발랄한 여직원의 말을 믿고 일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사무실에 돌아오자마자 '읍면동사무소 기능전환계획'을 세우고 시범적으로 3개 동을 선정하여 바꾸어 나갔다. 우선 동사무소의 업무 중에 주민에게 부담을 주는 세금납부, 폐기물 단속, 불법건물 단속 등의 지도, 단속업무는 본청으로 이관하고 문화, 복지, 서비스 업무만 할 수 있게 했다. 이에 따라 근무 직원도 30명에서 10명 이내로 줄였다. 그리고 직원들이 이용했던 근무공간을 리모델링했다.
2층의 동장실을 사무실로 합하고, 직원들이 근무하고 남은 공간을 이용하여 다용도 회의공간, 작은 도서관, 건강센터 등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노래교실, 장고 교실, 건강센터 운영 등의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모텔 만드냐? 는 모욕에도 성공만 생각
이렇게 바꾸어 나가는 일을 하는 과정이었는데, 하루는 간부회의를 마치고 나오던 한 국장이 나를 불러 세웠다. '야 최덕림! 동사무소를 모텔 만드냐? 쓸데없는 짓거리 하고 있어!'라고 퉁명스럽게 말을 던진 후 나의 답변도 들을 생각도 없이 지나갔다. 일순간 어리둥절했다. 내가 잘못하고 있나? 기분은 나빴지만 상관인데 어쩌랴. 어느 땐가 읽은 책에 '이 세상이 계속 변해도 변하지 않은 진실 하나 있다면 상관을 이기지 못한다.'는 구절을 생각하면서 쓰라린 마음을 다스렸다. 그러면서 각오를 했다. '보란 듯이 성공해야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을 했다.
자치분권시대의 공무원은 달라야
3개 시범동의 리모델링을 마치고 프로그램을 돌렸다. 민원이 생겼다. '아침 10시부터 북장고와 노랫소리 때문에 일을 할 수 없다. 비 오는 날 슬리퍼 끓고 다니는 사람들 때문에 골치 아프다.'면서 주민이 아닌 공무원의 민원전화가 왔다. 말은 안 했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주민이 문제가 아니라 당신이 문제다. 지방자치시대에 공무원의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주인이 자기 집에서 북장 고치고, 슬리퍼 신고 다니는데 무슨 상관이랴.'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지방자치, 자치분권_주민참여 없으면 꽝!이다
자치분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주민참여'라 한다. 말로만 중요하다고 외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주민자치의 기능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이에 맞는 실행을 해야 한다. 지방의 권한을 주고, 스스로 일할 수 있는 것은 권한과 예산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주민참여의 가장 중요한 수단은 읍면동사무소를 주민자치센터로의 전환이다. 주민 스스로 지역의 일을 토론하고 결정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공간을 모텔 이상으로 개선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랴? 이런 공간에서 처음에는 문화오락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은 그동안 동사무소를 공무원 공간으로 생각하던 것을 주민의 공간이라는 의식을 바꾸기 우해 운영하는 것이다. 이런 프로그램에 참여하다 보면 이렇게 서비스만 받아야 되느냐? 우리도 좀 더 지역에 도움될 수 있는 일을 해보자.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지역의 특화사업을, 지역 역량강화사업을, 지역공동체사업을 구상하고 제안하게 되는 것이다.
지역 특화발전이 퍼즐처럼 모여 국가발전이 되는 시대가 꿈!
32년 만에 지방자치법이 전면 개정되면서 이제는 '주민자치회'로 발전한다고 한다. 지방자치도 25년을 넘으면서 성년을 맞고 있다. 중앙의 권한과 예산에 얽매이기보다, 스스로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지역의 경쟁력을 높이는 시대가 되었다. 지역마다 특화된 발전이 국가의 경쟁력으로 연결되는 자치분권의 시대를 완성하려면 의미를 알고, 참여하는 노력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