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무원 덕림씨 Jan 10. 2021

민방위 교육!
연극으로 망치려 하나?.

자유게시판에_민방위교육 통지서가 기다려 진다.

#1. 내일은 민방위 교육을 받는 날이다. 교육장에서 자도 되니까 그동안 밀린 일을 밤새워했다. 아침신문을 두세 개 챙겼다. 첫 시간은 신문을 정독하고, 두 번째 시간부터는 얼굴에 신문을 덮고 잤다. 3시간을 자고 나니 교육이 끝났다. <1990년대 나의 민방위 교육 모습>     


#2 주민자치과장으로 일할 때 민방위 교육을 책임져야 했다. 대상자를 파악했더니 20대에서 30대까지 12,000명이었다. ‘1년에 4시간씩 이들을 모셔다 잠을 자게 한다’ 상상이 안 되었다. 2,30대는 한 도시의 문화 중심층이기 때문이다. 왜 가장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불러 잠을 자게 할까? 궁금했다. 바꾸고 싶었다. <2000년대 과장이 되고 나서 드는 생각>     

민방위교육장 실태

  

대한민국 남자는 군 복무가 끝나면 40세까지 전시 또는 지역의 인명과 재산 보호를 위해 민방위대원이 된다. 매년 교육을 받아야 하고, 1차 참석을 못하면 보충교육을 한다. 전시나 재난에 대처해야 하기에 매우 중요한 법정 교육이다. 이렇게 중요한 일을 왜 나부터 잠을 자도 된다는 생각을 할까? 궁금했다.     


2001년 주민자치과장이 되면서 민방위 교육 업무를 총괄했다. 평소 내가 상상했던 일을 되새겨 봤더니 잠이 오지 않았다. 교육 현장은 여전히 잠을 자는 사람, 신문을 보는 사람, 잡담을 하는 사람 등등 나와 비슷한 사람이 많았다. 아이를 안고 서있는 사람과 여성도 있었다.(민방위는 남자만 대상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교육대상을 바꿀 수 없고, 교육방식을 바꾸는 것밖에 없다. 한 도시의 중심층이라 할 수 있는 2,30대를 어떻게 대우해야 할까? '당연히 예산을 투자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바꿔보자!’ 결심했다.    

 


내가 가장 잠이 왔던 시간을 되짚어보니 ‘안보’였다. 이 과목을 연극으로 바꿀 계획을 세웠다. 이유는 4가지다. 첫째, 재미없는 과목을 가장 재미있게. 둘째, 강의 장소를 문화예술회관으로 이동. 셋째, 청년들에게 연극을 경험. 넷째, 시립극단 활용과 수당 현실화. 첫째 ‘재미없는 교육을 가장 재미있게’ 항목만 공개하는 전략이고, 나머지 3개 항은 비공개 전략이다. 비공개 전략은 내 마음속에 숨겨놓고 드러내지 않은 것이다.


둘째항, 교육 장소를 문화예술회관으로 이동하기 위해 예술회관 관장에게 요청하면 100% 승낙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연극을 하게 되면 예술회관 무대 밖에 할 수 없기에 가능한 일이다. 명분이 된다. 셋째항 청년들에게 연극을 보여주고 싶은 이유다. 실제, 교육하면서 물어봤더니 '연극을 처음 본다'는 사람이 많았다. 넷째항 시립극단의 활용과 수당? 현실화 문제이다. 시립극단 활동하시는 분들 대부분은 그 분야에서 일생을 바친 분 들이다. 매일 연습은 하지만 경연할 곳이 없었다. 수당도 현실화 되어있지 않았다. 법정 교육에 연극을 활용한다면 교육받는 사람도 좋고, 연극인들도 좋을 것 같았다. 문화팀장을 하면서 전국 연극제를 진행한 경험이 도움되었다.

우리나라 최초로 안보 연극 장면

일은 벌였지만 연극 대본 문제, 시립극단 참여, 공연장 사용 등 많은 문제와 부서의 협력이 필요했다. 우선 전문가에게 안보를 주제로 하는 연극 대본을 받고, 시립극단은 연습을 했다. 공연장 준비도 모두 마쳤다. 드디어 우리나라 최초로 민방위 교육을 연극으로 하는 D-day날이다.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휴식시간에는 30대 주부들의 스포츠 댄스가 이어졌다. 동(洞)마다 돌아가면서 스포츠 댄스 경연을 했다. 자치센터마다 좁은 공간에서 연습은 하지만 경연할 곳이 없었다. 이곳을 활용한 것이다. 교육을 마치면 시청 홈페이지에 칭찬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민방위 교육 짱짱짱~, 민방위 교육 통지서가 기다려진다.’ 등등. 중앙지 신문에 ‘민방위 교육 재미있게~’라는 타이틀로 크게 보도되기도 했다.

스포츠댄스 동아리 시연장면

     

언론보도를 보고, 행정자치부 담당 사무관이 전화를 했다. ‘29년 전통 있는 민방위 교육을 당신이 망치고 있다. 가만두지 않겠다.~’ 고성으로 나무랐다.  ‘민방위대원들이 너무 좋아한다. 정부가 요구한 사항에 맞추어서 한다. 방법만 다를 뿐이다.’라고 현장 상황을 설명했다. '그렇다면 한번 가보겠다’하고 퉁명스럽게 전화를 끊었다. 그 후 행자부 사무관이 현장을 방문하고 만족해했다. 바로 ‘민방위 담당자들은 순천시 민방위 교육을 벤치마킹하라’고 전국 지자체에 지시를 했다. 한때는 민방위대원과 전국 지자체 공무원이 뒤섞여 교육을 받기도 했다.

중앙지 사회면 신문보도 내용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칼의 노래’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순천'이란 지명이 수십 번 나왔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들의 활동이 매우 컸던 곳이기8년 동안 한 번도 침략당하지 않는 곳이다. 민방위대원의 역할이야말로 ‘선조들의 지역방위 정신을 배우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년 똑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것보다 현장교육도 의미 있겠다생각으로 ‘임진왜란 현장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관광버스로 전적지로 이동하면서 안보와 응급구조 슬라이드를 시청하고, 유적 현장에서는 학예연구사로부터 임진왜란 당시 의병들의 역할과 활동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귀가할 때 역동적인 산업현장을 보여주면서 사업구상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젊은 청년들에게 의미가 있도록 준비했다.  

    

아이를 업고 나오거나 여성이 대리 참석하는 것을 보면서, '낮에는 이렇게 바쁘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야간교육을 검토해보자 제안했다. 담당자는 다른 지역에서 이미 실패한 것이라며 거부했다. 그동안 힘든 것을 알기에 더 이상 요구하지 않았다. 소주 한잔 나누는 기회에 살며시 ‘한번 해보면 안 될까?’라고 재차 설득했다. '그렇게 소원이라면 한번 해보자'면서 야간교육 통지를 했다. 200명을 예상하고 장소를 준비했는데 700명이 몰렸다. 순간 아수라장이 되면서 접수를 받을 수도 없었다. 다른 지역의 실패사례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경험을 톡톡히 했다.  

시 홈페이지 자유게시판 게시글

 

최근 민방위 교육 실태를 검색해 봤다. 45년이 지나면서 많이 변하고 있었다. 생활연극을 하는 곳도 있고, 유명한 코미디언이나 아나운서를 활용하여 사이버 교육도 했다. 우리나라 최초로 민방위 교육을 연극으로 했던 것이 시발점이 되어 이렇게 변화고 있다는 생각과 함께 기분 좋았다. 혁신은 ‘새로우면서 엄청나게 가치 있는 것’이다. 시작이 두려울 수 있다. 용기로 바꾸면 성공한다. 흥미만 있고 효과가 없어도 안된다. 본질적인 효과가 먼저이고, 흥미는 그다음이다. 유명인사를 초청하는 것은 흥미에 치우칠 수 있고, 적정한 예산지출인가도 고려해야 한다.

      


지역의 특성에 맞춘 효과적인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활용 가능한 시스템을 최대한 활용하고, 여러 부서가 협력하는 가운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좋다. 재정이 취약한 군 단위는 연극이 어렵기에 시. 도에서 만들어 순회하면 좋을 것이다. 현장교육은 지역마다 의(義)로운 일이 있었던 역사현장이 좋다. 그리고 휴식시간 활용이다. 지역마다 주민센터에서 많은 취미교실이 운영된다. 여기에서 습득한 프로그램을 경연할 수 있도록 20~30분의 시간을 활용하면 좋을 것이다. 행사성으로 시민을 별도로 동원하는 일보다 효율적일 것이다. 지역민들의 문화여가활동을 서로 공유하는 소중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할 것인지? 계속 고민하고 실행하다 보면 할 일은 넘칠 것이다.

이전 05화 동사무소를 모텔 만드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