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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또 Oct 03. 2023

노란 고무장갑을 끼고 잡니다

설거지용 No, 청소용 No, 수면용 Right

  빵쟁이가 되기 전 나의 별명 중 하나는 손가락 미녀였다. but 빵쟁이가 된 후, 나의 손은 발레리나의 발가락처럼 변해버렸다. 습진, 화상, 긁힘... 이런 나의 손을 위해 오늘 노란 고무장갑을 하나 장만했다.



그냥 잘 때 끼려고요

 퇴근길 노란 고무장갑을 하나 장만했다. 고무장갑을 산 이유는 설거지를 하기 위함이 아니다. 잠잘 때 끼기 위해 산 것이다. 빵쟁이 일주일차에 손바닥에 화상을 입었다. 그 상처를 시작으로 팔에 크고 작은 다른 화상자국들이 하나 둘 늘어갔다. 오븐을 벗어나면 괜찮겠거니 생각했지만, 반죽 일도 상처 입기에 최적화된 포지션이었다. 포대 종이에 긁히고, 믹싱볼에 부딪혀 멍들기 십상이었다. 무엇보다 몇 개월간 라텍스 장갑을 끼고 일하다보니 습진을 달고 살고 있다. 화상, 긁힘, 습진... 빵쟁이 9개월차, 예뻤던 손이 망겨져 있었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잠잘 때이다. 살아 숨 쉬는 동안(물론 잠잘 때도 숨은 쉬지만)은 의지로 가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but 의식이 잠드는 그 순간부터 나의 손은 무자비하게 긁어대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내 손으로 내 손을 긁은 흉터들이 여기저기... 속상하다.


 이런 악순환을 끊고자, 라텍스 장갑을 끼고 자보기도 하고, 쿠팡에서 주문한 긁음 방지 장갑을 사서 끼고 자보기도 했다. 그러나 나의 무의식은 강했다. 일어나 보면 모든 장갑은 벗겨져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 최후의 수단을 선택했다. 바로 '고무장갑'.


 팔꿈치까지 와서 쉽게 벗을 수 없고, 설사 긁더라도 라텍스처럼 쉽게 뚫리지도 않으며, 너무 달라붙지 않아 공기 순환도 되는 고무장갑을 선택했다. 퇴근길, 마트에 들러 색이 예쁜 고무장갑을 하나 골랐다. 웃길 수 도 있지만, 웃기지 않은 일. 나는 살기 위해 고무장갑을 끼고 잔다.




 추석 날, 내 손과 팔을 보신 어머니는 당장 (빵쟁이를) 그만두라고 다그치셨다. 나는 역으로 화를 냈지만, 나도 안다. 얼마나 속상해하실지를... '예전으로는 못 돌아가도, 상처는 다 나아서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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