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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기후환경과 자동차(5)

자동차 겨울시험 왕국 카나다

by 좀 달려본 남자

자동차 겨울시험 왕국 카나다 '오파사티카'


1990년대 중반 엑셀과 엘란트라가 북미에 본격적으로 수출되면서 추운지역에서의 차량개발 시험이 필요하게 되었고, 찾은 곳이 카나다 수도인 토론토에서 약 9시간 운전을 하고 가야하는 프랑스어권인 '캡슈케이싱'으로 겨울에 -40℃까지 온도가 내려가는 인구 2만명 정도 사는 도시인근 이었다. 우리나라 신문용지에 사용되는 펄프의 40% 정도가 이곳에서 벌목된 나무로 만들어 진다.


이 도시에서 다시 차로 약 30분 정도가면 '오파사티카'라는 인구 500명 정도 사는 조그만 마을이 윈터 시험 베이스캠프가 있는 곳 이었다.


자동차 회사에서 겨울철 동계시험장소를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이마을 이장님께서 카나다 달러로 1$에 흔쾌히 넓은 자기 땅을 시험장소로 거의 무상으로 제공하여 주었는데, 시험장소에 있는 정비워크샵은 빌렸지만 이 마을에는 변변한 숙소가 없어서 이곳에 기차 한 칸 길이 정도의 트레일러 하우스 (한국의 콘테이너 하우스 보다 두배정도 이상 길다)를 3개를 렌트하여 나란히 세워놓고 생활을 하였다.


첫번째 트레일러에는 방이 4개가 있고 공동화장실, 샤워실, 세탁실 그리고 전화, TV가 있는 작은 거실로 구성되어 있으며 가운데 있는 두번째 트레일러는 식당 조리담당이 자는방과 식당으로 이용되었고, 세번째 트레일러는 또 다른 방과 자동차 시험관련 부품창고로 이용되었다.

이곳에서 겨울철 주행시험하는 시험차량들은 일단 한국에서 미국 연구소로 보내면 다시 미국연구소에서 차량트레일러를 이용하여 이곳으로 보내는데 개발시험차와 비교시험할 경쟁차를 포함하면 약 15대 정도가 되었다.

1990년 중반에는 미국연구소 역할이 주로 인증부분에만 집중이 되어있어, 대부분 한국에서 차량시험 엔지니어들이 이곳에 출장와서 현지 확인시험을 진행하면서 12월중순부터 2월초까지 이곳에서 최소한 3개월정도 머물러야했다. 근처에 한국음식점이 없었기 때문에 토론토에서 쌀, 라면, 김치 등 이곳에서 구하기 힘든 주식과 부식을 3개월 먹을 만큼 대량구매하여 차에 싣고 이동하였고, 토론토에 사는 한국인 교민중 1명을 겨울동안 식사 조리담당으로 고용하여 같이 이동하였다. 기타 채소 및 고기류등은 인근 도시인 '캡슈케이싱' 마트에서 구입 하면 되었다.


겨울철 이곳에 윈터시험을 하기 위하여 이곳에 도착하면 마을 입구에 반짝이는 전구로 'Welcome! Hyundai'이라는 표시로 환영을 해 주었다.


시험차량이 도착하고, 트레일러하우스 입주가 완료되면 이때부터 '오파사티카' 조그만 마을이 1년중 가장 바쁜시간이 시작 된 것이다.

이곳에 한 개 밖에 없는 주유소에서 시험없는 1년동안 파는기름보다 많은 양을 시험차들이 1주일 동안에 사용하며 사간다. 그것도 3달 동안 이나..

짧은 윈터기간동안 많은 주행거리가 필요한 내구시험을 진행하다 보니 시험차를 24시간 운전할 운전자도 필요하였다. 아침에는 아내가 운전하고, 오후에는 남편과 교대하여 운전하는 가족들이 많았다.

물도 필요하다. 장기체류하는 약 5명 내외의 연구원들과 10일이내 단기체류하는 한국에서 오는 3명의 인원이 먹을 물의 양도 제법 만만치 않고, 이를 매일 배달해주는 사람도 필요하였다.

연구원들이 묶었던 트레일러 하우스를 청소할 사람도 필요하였다.

마을에는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조그마한 Pub이 하나가 있었는데 맥주를 마시면서 동전을 넣으면 음악이 나오는 뮤직박스가 놓여있는 아주 고전적인 시골술집이었다. 평소에는 시골의 나이든 분들이 맥주한잔 시켜놓고 1시간 이상을 버티면서 시간을 때우는 아주 따분한 곳이었다. 윈터시험때가 되면 주인은 함박웃음이 된다.

한국에서 온 연구원들이 주행시험을 마치고 Pub으로 가는날이면 평소에 한국에서 먹던 것처럼 맥주를 박스채로 가져다 놓고 1시간도 안되는 시간내에 주거니 받거니 다 마셔버린다. 보통 카나다 사람들이 안주를 먹지 않는데 반해 우리는 뭐라도 안주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이것저것 안주를 주문한다. 짧은 시간에 술매상이 급격하게 오르니 미소가 끊이지 않았던 이유다.

이런상황이 3개월도 지속되었다......!


인구 500명의 작은마을의 아이들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인원들이 자동차 겨울시험 관련된 일에 직간접으로 투입되어 일을 하였다. 워낙 추운지역이고 취업할만 기업이 주변에 없는 시골지역이라 별다른 수입원이 없는 곳이었는데 겨울철 윈터시험에서 창출되는 3개월간의 수입으로 이 마을에서 1년동안 생활 할 수 있기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매우 좋아했었다.


딱히 갈곳이 없었던 지역이라 토,일요일이면 주변에 낚시면허 (낚시를 하려면 돈주고 면허를 산 사람만 할 수 있었다)를 사서 얼음낚시나, 주변에 스키장이 있었는대 리프트는 없고 방앗간 처럼 회전하는 밧줄로 끌어 올리는데, 스키를 신은채로 밧줄을 잡고 있으면 높은 곳으로 올려져서, 내려오는 아주 원시적인 스키장등을 다니곤 하였다. 이때 초등학생 정도되는 어린아이들이 담배를 피고 있는 것을 보고 아무도 뭐라는 사람이 없길래 안되겠다 싶어 아이들에게 잔소리했다가 '왜 참견하냐고' 하면서 이상한 눈으로 나를 쳐다 보았던 기억이 나는데, 지금 우리나라도 똑같이 된 것 같다. 즉 '꼰대' 가 되었던 것이다.


인근 30분거리 캡슈케이싱에는 성인비디오 가게가 있었다. 토론토에서 '모래시계'등 드라마시리즈 비디오를 잔뜩 빌려오긴 했지만 한국에서는 불법인 성인비디오를 여기서는 합법적으로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젊은 엔지니어들이 거의 매일 방문하는 곳이기도 했고, 3개월이 지나는 시점이면 더 이상 안 본 비디오가 없는 상황이 되었었다. 주인은 젊은 단골들이 가면 미소가 가득였다

3개월이 겨울철 시험을 마치고 2월초 정도에 귀국을 앞둔 시간이 되면 한국으로 가져갈 기념품과 선물들을 사다보면 캡슈케이싱의 그리많지 않은 기념품 가게의 카나다에서 전통제품인 단풍잎으로 만든 꿀과 비타민 제등 제품들을 다량구매하여 동이 나는 경우가 생기곤 하였다. 주인은 언제 돌아가냐고 일정 파악하기 바빴다.

윈터사진.jpg (인터네셔날 폴스에서의 윈터시험)


우리가 겨울철 시험을 마치고 돌아온 약 5년 정도지난 후 키크고 뚱뚱하고 푸근한 인상 이셨던 이장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고, 이후 미국연구소가 연구소 인원을 보완하여 자체적으로 미국내 'International Falls'와 '알래스카'에서 겨울철 시험을 수행하면서 카나다지역의 겨울자동차 시험은 추억으로만 남고 사라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당시 오파사티카 이장의 1$가 시골마을 경제를 몇년간 활성화 시켰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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