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하면 우리 머릿속에 생각나는 것은 엄청난 석유로 “돈을 벌었다” 와 천문학적인 돈을 가진 “부자들이 많다” 로 기억한다. UAE (아랍에미레이트)도 그런 나라 중에 하나였다.
더운 중동지역에서 자동차 에어컨등을 시험하기 위해 두바이 현지의 현대 A/S센터를 베이스캠프로 삼고 성능 및 내구시험등 혹서지 현지시험을 진행하고 있던 때였다.
처음 주행시험을 두바이에서 시작할 때 “실제로는 크게 문제 될 것 같지는 않았지만... “ 하면서 현지 주재원이 출장온 우리들에게 경고를 한 적이 있었다.
높은 왕족 순으로 차량 번호판의 숫자가 낮게 발급되므로, 가능한 100자리 이하 두 자릿수의 짧은 번호판을 보면 추월하지 말고 속도를 낮추면서 조용히 지나가라는 것이었다.
두바이 현지에서 자동차시험을 위해 고용된 운전자들은 대부분 팔레스타인등 외국에서 UAE로 일하러 온 사람들이었다. 조그만 지갑 안에 기족 및 고향사진 몇 장, 이전 출장자들에게 받은 명함 등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고 보여주곤 한다.
가지고 있는 추억은 그게 전부였다.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일하는 것이 다소 안타깝게도 보였다.
그 당시 아랍에미레이트 인구의 약 70%는 아랍에미레이트에 일하러 온 사람들로 국가별로 인구분포를 보면 인도인이 거의 50%, 나머지는 이집트,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필리핀, 네팔, 팔레스타인등이었기 때문에 드라이버가 다른 나라 사람이라는 것이 이상한 상황은 아니었다. 이런 인구 구조는 이웃인 쿠웨이트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 팔레스타인 드라이버가 우리 개발시험차를 가지고 내구시험을 진행하다가 번호가 40번대 귀족차량을 추월하는 바람에 구속이 되어 경찰서에 갇히고 시험차량은 압수되었다. 이 드라이버를 고용했던 A/S센터 사장이 경찰서를 찾아갔지만 해결하지 못하였다.
시험을 위한 출장일정이 정해져 있고 시험차는 압수된 상태였기 때문에 본사에 연락하여 도움을 청하였고, A/S센터가 아닌 회사 아중동 사업본부에서 직접 발 벗고 나서게 되었다.
현대차 딜러 중 추월한 차량보다 더 높은 귀족 즉 더 낮은 20번대 번호판을 가진 귀족을 동원하여 운전자가 석방되었고, 차량도 겨우 되찾을 수 있었다.
실제 20번대 번호판 왕족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주재원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전용기를 가지고 가까운 스페인에 저녁식사를 하고 오는 것을 여러 번 보았을 정도로 부자이고 영향력이 매우 크다고 하였다.
이게 가능한 일 인가? 하지만 이러한 번호판 제도는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아랍에미레이트의 차번호판이 1번은 '왕', 한자리 숫자는 후계자등 '로열패밀리', 두 자리 수자는 '왕족', 세 자릿수는 '왕족의 친척'. 네 자릿수는 '현지인', 다섯 자릿수는 '외국인'으로 구분되고 있다. 택시는 네 자릿수와 다섯 자릿수 혼용이다.
그래서 두바이의 승용차는 대부분 다섯 자릿수이다.
(두바이 왕궁앞 경찰자 차량번호 7 - 에코저널 인용)
(아랍에미레이트 번호판 - 두바이 쑥 인용)
최근에는 이번호판들을 사고팔 수 있게 되었는데, 23년에 아랍에미레이트 두바이 P7 번호판을 197억 원에서 경매에서 거래되었다는 기사를 보면서 충분히 이해가 갔었다.
(두바이 번호판 경매싸이트 - 두바이 쑥 인)
비슷한 일이 다른 곳에서도 발생하였었다.
자동차 주행시험을 마치고 저녁에 호텔 근처 쇼핑몰을 물건을 사가지고 나오다가 터번을 두른 UAE 현지인과 좁은 통로에서 맞 부딪쳤다. 서로 길을 가다가 좁은 길에서 맞 부딪치면 둘 중 하나 손에 물건이 없거나 공간이 넓은 쪽에 있는 사람이 비켜주면 되는데, 빈손임에도 불구하고 길 정중앙에 서서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절대 비켜주지 않을 자세로 서 있었다.
아마도 70%에 해당하는 외국인들이 UAE에 일하러 온 사람들 중 하나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잠시의 대치가 이어지다가 결국은 내가 짐을 든 채로 구석으로 자리를 비켜서야 해결이 되었다.
아마도 그 나라의 관습에 따라 권위를 지키려고 했을 것 같지만 그 나라를 방문한 이방인들에게는 "돈이 만든 권위로 밖에 보이지 않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우리나라에 일하러 온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우리는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생각해 보게 되었다.
현지시험이든 아니면 여행이든 다른 나라를 방문할 때는 알아야 할 것들이 많이 있는 것 같다.
차량을 개발할 때 번호판 시험이 있다. 나라별로 번호판의 사이즈와 무게가 다 다르기 때문에 정착 차량을 판매하였을 때 번호판 장착되지 않으면 큰일이 난다. 디자인 단계부터 반드시 여러 나라 번호판 샘플을 가지고 확인해야 할 항목이다.
미국이 가장 작고, 유럽이 우리나라보다 가로로 더 길다. 무게도 다르기 때문에 내구시험을 실시할 때 번호판 무게를 감안하여 장착하고 실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