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동네 이웃들
고마운 동네 이웃들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는 90년 말에 처음 완공되었을 때부터 입주하여 지금까지 거의 25년 이상 살고 있다.
우리 아이들은 다 커서 직장 다니고 시집을 갔다. 동네 이웃의 아이들도 성장하여, 지금은 대부분 성인이 되어 대학생이거나 직장을 다니고 있다. 물론 중간에 이사를 가고 오고 하지만 대체로 신혼부부가 들어와서 살거나 젊은 부부가 사는 아파트는 아니다.
처음 내 딸의 딸이 우리 집에 왔을 때 공원에 데리고 나가면 약간 갸우뚱하면서 의심의 눈초리!,
"나이 들어서 늦둥이 낳았나? " 로 보는 사람도 있었고, 병원에 갔을 때 내 딸의 딸의 이름을 부르며 '아버님 이쪽으로 오세요 '하여 놀라기도 하였다. 병원에 갔을 때 옷에서 나는 분유냄새와 옷에 분유 흘린 자국들이 이상도 하였을 것이다.
아내는 동네에 아는 사람이 많아서 아이를 안고 나가면 할머니라는 것을 금방 알아채 나와는 처음부터 달랐다. 한 달, 두 달.. 벌써 내 딸의 딸이 우리 집에 눌러앉은 지가 6개월이 되어가니 이제는 동네 사람들도 내 딸의 딸의 얼굴을 안다.
동네에 아기가 거의 없다 보니 내 딸의 딸이 반가운 것 같다.
동네 아줌마들이 근처에 있는 교통회관에 아침마다 커피모임을 자주 가지는데 아내가 내 딸의 딸을 데리고 종종 나간다. 아줌마들이 안아주면 울지도 않고, '빠이빠이', '도리도리', '곤지곤지'도 곧 잘해준다.
사위가 오랜만에 와서 안아주려면 내 딸의 딸이 강하게 울면서 거부하여 괜히 옆에 있으면 무안하였는데, 교통회관에 오는 동네 이웃 아저씨가 안아주면 얌전히 있다가 심지어는 잠들기까지 하여 아내가 그 사진을 찍었지만 사위에게 보여주지를 못하였다.
동네에 초등학교 다니는 이웃 언니가 다정스럽게 말을 걸어니 '응응' 반응을 보이며 대답을 하는 것을 보니 신기하였다.
동네 이웃의 딸이 대학생인데 지나가다가 내 딸의 딸을 몇 번 보더니 팬이 되었다. 교통회관에서 커피 마시다 엄마가 내 딸이 딸이 나타나면 대학생 딸에게 전화를 한다. 대학생 딸이 갑자기 화장을 하고 나온단다. 지난번 화장한 상태로 봐서 혹시 내 딸의 딸이 얼굴 잊어버릴까 봐 화장을 한단다.
내 딸이 오랜만에 집에 와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데 아파트 같은 동 이웃 아줌마가 묻는다. 아기는? 아! 집에 있어요! '아기가 같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실망이에요' 하였단다. 꽤 독자수가 많은 유튜브 인플러언서인 내 딸도 우리 동네에선 뒷전이다.
무엇보다도 고마운 것은 아기를 돌본다고 이웃에서 밑반찬, 붕어빵, 고구마, 국 등을 보내주며 아내를 많이 도와준다. 아기를 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초인종을 누르면 내 딸의 딸이 깰까 봐 아파트 문고리에 걸어놓고 아내에게 카톡으로 알려 가져가라고 한다. 덕분에 출장 갔다 집에 오면 작은 용기들이 많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내 딸과 사위에게 동네 이웃들이 고맙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사위가 하는 말이 "예뻐서 그렇다" 나중에 아이돌을 시켜야겠다고 한다. 아휴! 저 이야기 벌써 몇 번째야.....!
A형 독감에 걸려 병원에 입원하는 등 보름이상 외출을 못하다가 며칠 전에야 아내가 내 딸의 딸을 데리고 오랜만에 교통회관을 찾았다. 이런... 그 사이에 동네 이웃들이 낯설어서 울기시작하였다. 그동안 병원을 몇 군데 다니면서 무서웠던 기억들 때문에 낯을 가리지 않나 싶다. 어제 다시 다녀왔는데 조금 나아져서 안기지는 않지만 웃어주고 '빠이빠이'까지는 해줬단다.
아기는 사랑을 먹고 자라는 거 같다.
문득 지난해 베트남 사파 트레킹을 갔을 때 본 아이들이 생각난다
어른들 동행 없이 언니 둘이서 여동생을 데리고 걸어가는 것을 20~30분 동안 보았는데 조그만 체구에도 동생을 한 번도 땅에 내려놓지 않고 자세를 바꿔가며 안고, 업고 간다. 약간 가슴이 뭉클하여 한참을 더 쳐다보았다. 이 아이는 언니의 사랑을 먹고자라고, 내 딸의 딸은 따뜻한 동네 이웃의 사랑을 먹고 자라고 있다.
내 딸의 딸이 나중에 동네의 고마운 이웃들을 모두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