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의 수난
아들아! 아기 보기 힘들지!
'내 딸의 딸'을 돌보는 공식멤버는 4명이다.
내 딸 + 사위
나 (외할아버지) + 아내 (외할머니)
'내 딸의 딸'이 우리 집에 눌러앉은 후로는 4명이 스케줄이 겹치지 않도록 매월 초에 각자의 일정을 논의하고 그달 약속일정을 정한다
물론 대부분은 할머니인 아내가 돌보고, 나는 집에 있는 날 아내를 보조하는 역할이다.
'내 딸의 딸'과 사위의 역할은 20% 미만이다. 아니다! 집에 올 때마다 어지르고 가는 것을 고려하면 15% 미만도 안된다.
하지만 모두가 일정을 상의하여 조정한다고 해도 모두의 일정이 겹치는 날이 발생할 수 있다.
지난달 드디어 나와 아내가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 자리가 생겼고, 내 딸과 사위도 사업상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 날이
생긴 것이다.
채 돌이 되지 않은 11개월 되는 유아를 갑자기 고용한 아줌마에게 맡길 수도 없고, 가끔 보는 동네아줌마들에게 부탁하기는 혹시나 무슨 일 생겼을 때를 생각하면 부담을 주는 것 같아 차마 못하겠다는 것이 아내의 입장이었다.
할 수 없다. 그나마 가족 중에 누군가는 해야 한다.
조커가 있었다. 우리 집에 같이 살고 있는 바로 내 아들이다.
20대 후반으로 직장 다니면서 그동안 뺀질거리며 '내 딸의 딸'을 아이를 돌봐주는 일이 없이 집에 오면 자기 방에 들어가 나오지 않고 내 딸의 딸이 우리 집에 온 이후에도 유일하게 자기의 일상을 그대로 유지하며, 가끔씩 누나에게 투덜거리기만 했었다.
온 식구가 비장한 표정으로 아들을 불러 그동안의 '내 딸의 딸'을 돌보지도 않았지만 이번에는 반드시 가족으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다그쳤다.
처음에는 "나는 못한다'라고 저항했지만 저도 양심이 있으니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D-day 그날은 비록 오후 3시부터 9시까지 6시간이지만 내 아들 혼자서 '내 딸의 딸'을 돌봐야 한다.
일주일 전부터 안는 연습 몇 번시키고, 우유 타는 법도 가르치고 얼굴을 익히도록 '내 딸의 딸' 옆에서 계속 얼쩡거리며 친해지도록 했다.
다행히 '내 딸의 딸'이 울지 않고 같이 잘 있어 주었지만 그래도 안으면 울기는 하여서 다소 걱정이 되었다.
내 아들의 평소 하는 행동이 믿음이 가지 않던 내 딸이 거실에 카메라를 설치하여 핸드폰으로 볼 수 있게 하는 등 법석을 떨었고, 역시 못 미더운 아내는 앞집 아줌마에게 내 아들이 내 딸의 딸을 돌보는 동안 집에 좀 같이 있어 달라는 별도로 부탁을 하는 등 준비 끝에 드디어 그날이 왔다.
3시간 정도 앞집 아줌마와 같이 있었을 때 제법 '내 딸의 딸'이 아무 일 없이 잘 지냈나 보다. 미안했던 내 아들이 혼자 보겠다고 해서 아줌마는 집으로 복귀하시고 혼자서 '내 딸의 딸'을 돌보기 시작하였다.
난 이미 경험을 했듯이 혼자서 처음 '내 딸의 딸'을 보았을 때 그 어려움을 안다.
이때부터 '내 딸의 딸'이 울기 시작하면서 거의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3시간을 보냈나 보다.
쉼 없이 오는 아들의 SOS 문자와 전화가 있었지만.. 어떡하라고!!!!
오후 9시 넘어서 집에 가니 " I did my best" 하며 아들이 거의 탈진 상태가 되어 자기 방으로 들어가 뻗었다.
"그게 쉬운 줄 아냐!" 그래 수고했다. 아들아!
그래도 "나중에 너도 장가가서 자식 나면 우리가 돌봐줄게" 소리는 절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소득은 있었다. 내 딸의 딸이 이제는 내 아들에게 울지 않고 잘 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