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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딸의 딸 (20)

동네에 갈만 한 곳

by 좀 달려본 남자

보이지 않았던 곳


현재 사는 수원 화서동으로 이사 와서 오랫동안 살았고, 자식들 2명 모두 초등학교, 중학교, 대학교를 거쳐 모두 직장에서 일을 하는 지금까지도 우리 동네에 아기들을 위한 장소가 있는지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었다.


얼떨결에 맡게 된 '내 딸의 딸'을 돌보다 보니 계속 집에만 있을 수 없어 자연스럽게 주변에 데리고 다닐 곳을 찾아보게 되었다. 차로 이동하지 않고 집에서 걸어서 금방 갔다가 올 수 있는 곳이 과연 주변에 있을까?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주변에 많은 유아를 위한 시설과 프로그램들이 있었다.


첫 번째는 딸이 신청하여 매주 월요일 다니게 되었던 서수원 이마트에서 진행하는 '애기똥풀' 프로그램이다. 그냥 시장 보는 마트인 줄만 알았는데 이제 막 돌이 된 유아들을 데리고 유아와 엄마가 함께 1주일에 한 시간 동안 다양한 놀이를 진행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유모차 끌고 천천히 10분 정도 걸어가서 할머니가 데리고 들어가고 나는 밖에서 커피를 마시며 기다린다.

선생님이 유아 수준에 맞는 촉감놀이등 다양한 놀이를 진행하고 있었다.

물론 엄마들의 자기 아이 사진 찍기 또한 엄청난 것 같다.

주변에 같은 또래가 없었는데 친구들을 만나는 좋은 기회가 되는 것 같았다.


잘하고 있나? 모두들 엄마하고 왔는데 '내 딸의 딸'은 할머니와 같이 와서 괜찮을까? 그러면 어때! 재미만 있으면 됐지!! 하며 힐끗 안을 들여다보았다.

아니네!, '내 딸의 딸'이 낯설었는지 참여하지 않고 머뭇머뭇 구경만 하다가 운다.. 헐! 아기들은 다 그렇지 뭐!

잘 놀았으면 바랬지만 반은 울고 반은 구경하면서 어찌어찌 한 시간을 마치고 나온다.

그래도 나올 때 '내 딸의 딸' 표정이 밝다.

이마트 문화교실 옆에 재미있는 유료 키즈카페도 보인다. 그런데 월요일 평일이라서 그럴까? 아이들이 있는 것을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두 번째는 좋은 곳은 서수원도서관이다. 일월저수지 옆에 있는 도서관인데 이전에 책을 보느라 몇 번 간 적이 있었지만 유아도서관이 있는 줄 몰랐다. 유아용 동화책도 비치되어 있었지만 일반도서관과 분리되어 별도의 방에 부드러운 쿠션바닥으로 이루어져 아기들이 굴러도 되게 잘 만들어 놓았다. 갈 때마다 아무도 없어 '내 딸의 딸'이 혼자서 신나게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소리 지르며 잘 논다. 시에서 무료로 운용하기에 소리 나는 책을 읽어 주기도 좋은 곳이다.


셋째는 일월수목원이다. 지난해 일 년 회원권을 만들었는데 얼굴만 들이대면 안면인식으로 쉽게 출입할 수 있다. 덕분에 답답해할 때면 '내 딸의 딸'을 데리고 천천히 이곳으로 향한다. 제일 좋아하는 곳은 입구 카페 앞에 있는 '나비정원'이다. 여러 개 나비가 날아다니면 '어!'하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좋아한다. 안으로 들어가 조그만 시냇물로 가면 물이 흐르는 것을 '내 딸의 딸'도 좋아하며 신기해한다.


넷째는 아파트 앞에 있는 엘지 황새마을 공원이다. 공원이 크지 않아 채 30m도 되지 않는 숲길이 나있지만 유모차를 끌고 이곳을 지나면 까치가 있고, 다양한 꽃들이 보이고 5월인 지금은 약간 덥기도 한데 그늘에 살랑살랑 바람도 분다. '내 딸의 딸'이 까치보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산책 나온 할머니가 데리고 온 멍멍이를 보고 '어!' 하고 소리친다. 여기에 '내 딸의 딸'이 제일 좋아하는 유아용 그네가 있다.

앞, 뒤로 움직일 때마다 야! 야! 신나는 소리를 낸다.

천천히 유모차를 끌고 그늘 사이로 공원 한 바퀴 정도 돌면 봄바람에 '내 딸의 딸'이 잠이 든다.


'내 딸의 딸' 덕분에 집 근처에 안 가봤던 여러 좋은 곳도 알게 되는 것 같다.

다만 어딜 가도 아가들이 많이 없는 것 같다. 놀이터에 아가들이 꽉 차서 '내 딸의 딸'과 함께 뛰어노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는데...

(유아용 그네 타는 '내 딸의 딸', 수원 황새말 공원)


* '내 딸의 딸'은 약 5개월 될 때 내 딸이 사위와 함께 해외출장을 가게 되어 잠시 맡아 주기로 하고 우리 집에 오게 되었는데 15개월째 되는 지금까지 눌러앉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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