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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너비미 Jul 28. 2024

아드리아의 잔상

나는 지금 아드리아해 위에 있다. 아드리아의 블루라는 색이 있었으면 좋을 만큼 파랗디 새파란 바다 위에 나는 보트를 타고 달리고 있다. 그리고 선장님은 퀸의 맘마미아 노래를 틀어주고 있다. 유람선을 타고 2-3일에 걸쳐서 여행하는 곳을 구명보트를 타고 12시간 만에 돌아보는 것도 좋았지만 구명정의 속도는 유람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공할 정도로 빨랐다. 날아오는 바람에 머리카락은 얼굴을 철썩철썩 때렸지만 속도감이 주는 해방감은 아픔도 잊게 했다.


또 여행이 언제 나를 행복했나 떠올려 보면 코타키나발루에서 반딧불을 보러 야간투어를 갔는데 거기서 하필 디즈니 배경음악을 틀어주는 가이드를 만났을 때이다. 다른 가이드들은 유람선을 타고 조용히 있으면 좋고 없으면 없는 거지 했는데, 우리 가이드는 긴 꼬리 원숭이를 찾아주기도 악어를 보여주기 위해 이곳저곳을 들추기도 하였다. 그리고 현지인 가이드인 그는 계속 웃고 있는 게 마치 기분이 좋았다. 참 운이 좋았다.


운이 좋았다는 생각을 하다 보니 다시 아드리아로 넘어간다. 뜨거운 지중해의 어떤 마을에 아이보리색 돌집들이 가득했다. 언덕길을 올라가며 구석구석 탐방을 하다 보니 아까 슈퍼에서 본 사이좋아 보이는 모자가 나를 지나쳐서 올라간다. 그리고는 앞에 오는 귀여운 차에 있는 할아버지와 담소를 나눈다. 아는 동네 할아버지인 가보다. 그러다 헤어졌길래 나도 고개를 돌려 마을을 찍고 있었는데 앞에 가시던 아주머니가 다급하게 내려와 내 옆에 있던 경차를 두드리면서 욕을 하는 것 같았다. 나도 뭔 일이지 하며 마을을 찍던 핸드폰을 내리고 아주머리를 쳐다본 순간 나의 발이 돌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차에 내 신발이 낀 것이다. 아주머니의 욕 소리에 아저씨는 차를 멈추고 거의 상단으로 돌아갈 뻔한 나의 발은 아주머니의 도움을 통해 간신히 잘 빠져나왔다. 난 당황스럽고 멋쩍어서 아주머니께 연신 땡큐를 했다.


아주머니는 그냥 가려던 할아버지를 향해 운전 똑바로 하라는 듯한 강한 어조로 말을 이리저리 하더니 나에게 인자하게 미소를 지어주고 떠났다. 선의와 호의다. 아주머니께 그 할아버지는 동네에서 오래 본 사람이고 나는 오늘 처음 본 여행객일 텐데 말이다.


나에게 여행을 떠나고 싶은 이유는 미세하게 무너지는 모래성들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많이 절여졌을 때인 것 같다. 음 그런 사람들은 한번 보고 말 사람들에만 있을까? 요즘은 더 가깝고 상대적으로 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멀어지는데 익숙하다. 돌을 다 던지면 아프기야 하다마는 멀리서 던지는 것은 날아오다 떨어지기도 하고 돌을 던지다 흥미가 없으면 떠나기도 한다. 그런데 가까이 있는 친구, 가족 및 친밀한 지인이 돌을 던지면 강도가 세다.


그러나 행복한 이기주의자를 포함하여 많은 현자들은 악행을 저지르면서 살지 않는 한 자기 자신보다 중요한 사람은 없다고 한다. 이 말에 설득력을 더하기 위해 현자들의 이름을 나열하려니 급 현타가 오기도 한다.


아드리아해를 갔다 온 이후로 가까운 사람들을 내적으로 다 잃었다. 나는 단 한 번의 판단으로 사람을 쳐내는 사람이 아니지만 결론은 아드리아의 여행사진을 본 그들이 하고자 한 진정한 말은 '너는 행복해 보이네? 너는 멋져 보이네?'가 그들의 진정한 속마음이었다. 이는 비단 아드리아해를 다녀오기 전후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왜 자신이 받은 운과 선의와 호의는 금세 잊어버릴까? 그리고 시선은 자주 타인을 향한다.


그중 한 친구랑 대화를 하다가 "있잖아. 혜진아. 어떤 나라에선 사람들이 종교단체에서 받는 비품만 받고 종교는 믿지 않는데 얼마나 힘들겠어. 아무리 잘해줘도 애들이 먹고사는 일에만 몰입한대. 한국의 삶을 버리고 가셨는데 너무 안타깝지 않니?"라는 말을 들었다. 여기서 잠깐, 나는 이 친구 인간성을 비난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아, 근데 아드리아는 어떻게 다녀올 생각을 했어?" "그래서 나도 스페인 여행 티켓을 끊었어. 갑자기 애기 가지기 전에 가야 될 것만 같아서. 애기가지면 이게 마지막 여행이 될테니까."


'그냥 갔어. 두 달 전에 맘먹고 그냥 간 거야. 네가 꼭 가고 싶다면 왜 마지막 여행일까? '


"근데 친구야. 그 아까 어떤 나라 얘기 말이야. 그 애들한텐 생존이 너무 중요한 얘기 아닐까? 그 어떤 종교보다도 말이야. 자기가 죽은 다음에 종교가 있어?"


"혜진아 너도 너만의 종교가 있잖니. 네가 나갔다고 생각해 봐."


".... 친구야. 근데 말이야. 내가 어렸을 때 겪은 일 너한테 겪으라고 하면 겪어낼 수 있을까? 그때의 나는 살아남는 게 우선이었어. 우리가 어떤 나라 아이들에 대해서 이야기할 자격이 있나? 나한텐 너무 오만처럼 느껴지는데..." 말을 마치고 난 기분이 안 좋았다. 나는 이런 얘기를 싫어한다. 굳이 내 얘기를 꺼내야 멈추는 사람들. 특히 불행에 관해 이야기를 해야 사람들은 멈춘다. 일반화를 해버릴 정도로 나에겐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대했다.


이 친구는 평상시에도 악당인가? 나를 괴롭히는가? 내가 힘들 때 도움을 주지 않았는가? 그 친구는 다 반대였다. 그러므로 옆에 둬도 되지만 나는 이제 그 친구에게 모든 진실을 말하지 않기로 했다.


아드리아에 다녀온 후 사내에서 내가 가장 많은 공을 들이고 가깝게 지낸 언니가 갑자기 자신의 가족이 불쌍해 보인다고 했다. 나는 가족들과 해외여행을 다녀왔다고 말한 지 몇 분이 채 되지 않아서다. 며칠 있다가 언니는 먼저 안부를 묻길래 내가 겪고 있는 슬픈 일을 말해줬더니 대뜸 화를 냈다. 그게 뭐가 슬프냐고. 그 순간 더 이상 언니에게 어떤 힘내라는 조언도 언니의 삶 자체도 언니만의 소중한 의미가 있을 거란 응원을 하지 않기로 했다. 언니에게 이미 너무 오랜 시간을 들였다.  에피소드를 여기까지만 말하고 싶다. 이 두 사람은 모두 내가 하루에 1분도 못 쉬고 산 날이 있는 것을 안 2인이었다.


내가 가까이 지냈다는 것은 기본 인성은 겸비했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조차 그런 부러움과 견제를 받으면 나의 기분은 어떨까?라는 점이다. 그들은 진짜 모르고 한 행동일 수 있다. 24시간을 나처럼 살라는 보장이 없으니까. 독서를 많이 해서 개안을 하라는 법이 없으니까. 내가 겪어왔던 고통을 줄테니 나의 행복을 사겠냐고 물으면 사람들은 사지 않을 것이라 말해왔다. 그러나 그 속에서 나의 눈과 경험은 할 수 있다면 값을 치르지 않고 가져가고자 한다.  그래서 나의 위로는 작가들의 일기다. 독서를 많이 한 작가들은 본인들의 생각이 점점 확장되는 것을 느끼고 성장해 나가는 것을 느낀다. 그러니 예민하다는 평을 받는데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슬퍼하지 않는 듯했다. 나도 언젠가 저런 경지에 이를까?


"이런 사랑을 해본 사람이 있을까요?"


'해본 것 같긴 한데요. 그걸 진짜 그렇게 사랑하면 많이 아파요. 그러나 자유로운 해방감이 들어오죠.'


"사람은 고쳐질 수 있다는 믿음을 보는 것 같아요."


'사람은 정말 고쳐질 수 있을까요......? 선택적 이야기가 아니길 저도 정말 바라요.'


"왜 모임을 자주 안 하세요?"


'저는 사람들과 가까워졌을 때 내 곁에 있으면 타는 것처럼 느끼는 사람들, 마치 자신의 불행을 더 크게 느끼는 사람들이 불편해요. 그래서 필요이상으로 지나치게 가까워지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은 언제나 내가 다시 돌아와 줄 줄 알았다. 항상 용서해 줄 것처럼 믿었다. 그리고 그들은 시간이 걸려서라도 사과했지만 나는 돌아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저는 꼭 주연이나 주인공이 아니라도 좋아요."


'그러게요. 이젠 내가 내 삶의 주인공인 것을 넘어서 내 다음세대에 더 훌륭하고 멋있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오히려 기쁠 것 같아요. 내가 그 앞 길을 준비한 사람이 되는 게 너무 영광스럽네요. 계속할 수 있기를 바라요.'


이 글은 사실 타인을 향하지 않았다. 향해도 자신이 보거나 느끼지 않으면 평생 모를 이야기로 남을 것을 안다. 그래서 온전히 내가 다시 볼 이야기이다. 예수를 판 자가 그를 넘기기 전 한 말이 있었다. 회사에선 또 한명의 생명이 낙화했다는 연락이 왔다.


"선생님은 왜 상담을 시작하셨어요?"


"아마 혜진님과 같은 마음이었겠죠... 그러나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선생님의 눈빛이 슬퍼 보였다. 사람은 정말 고쳐질 수 있나. 나의 아드리아는 지금도 행복한 기억으로만 남을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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