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은 덜덜 떠는 추위에서도 투표하라 외쳤다.
펜을 내려놓고 광장으로 달려가야만 했다. 주권자인 나의 목소리가 그들에게 들리도록.
국민의 위임을 받은 국회의원 자신들을 가두고 짓밟으려 했다. 그리고 장악을 하고 나면 무력이라는 두려움과 선동으로 시민을 사유화하고 지배하려고 했다.
그런 개인과 권력을 위해 오직 정권과 당심을 잃을까 두려워 탄핵을 하지 말까 할까 계속 바뀌었다.
그리고 국민에게 독려하던 대의민주주의 꽃이자 권리인 투표조차!!!!! 포기하고 105인은 자리를 떠났다. 그 시각 서울에서 원래 당연히 누릴 수 있는 책 모임을 하고 2시간 거리의 지역으로 돌아온 나는 다시 잠바만 걸친 채 국회로 향했다.
최소한 투표는 했어야지. 부결을 시키더라도. 그게 소신일지라도. 국민이 넘겨준 권리를 행사해야지.
권력을 준 이가 보고 있고, 세계가 보고 있고. 적이 보고 있고, 경제가 보고 있었다.
어느 쪽이 무한히 잘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경제학도로서 정치를 잘한다고 해서 경제성장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을 사실처럼 믿는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정치를 잘한다고 해서 시민을 잘 살게 한다라는 보장이 전혀 없고 오히려 두 가지 영역은 전문가가 다르다.
사람과 시간과 재원은 유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이 모든 건 내가 살아서 안전할 때 모든 문제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밤죄자가 처벌을 받지 않고, 언젠가 그 생각의 뿌리가 확장돼서 반복적으로 시민을 위협하게 둔다면 경제도 적을 향한 안보도 필요 없게 된다.
내가 먼저 죽을 수도 있는 문제다.
광장에 있는 시민들이 외친 것은 하나였다.
“본 회의장으로 돌아와. 투표하라.”
투표는 각자 자신의 소신과 양심에 따라 가결에 찬성할 수도 부결에 찬성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105인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이제 시민은 그들에게 주권을 돌려달라고 한다.
이념이 있고 나서 내가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있고 나서 이념을 선택하고, 어떤 이가 다음에 올라갈지도. 가장 강력한 권한을 견제할 사람으로 국회를 채우는 것도
국민의 선택이다.
다수의 선택이 파멸을 가져온다 하더라도.
자유는 스스로 파멸할 권리가 있다.
나의 시민의식은 나의 양심에서 나온다.
비록 나라가 나의 생사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지 못했어도 각자의 양심에 따라 시민들은 광장으로 향했다.
자신들만의 정언명령을 따라.
권력을 섬길 것인가. 자신의 양심을 따를 것인가.
국민은 끝까지 지켜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