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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서나무 Jul 05. 2023

떡볶이가 먹고 싶어.

내가 기운 내는 법

2023년 7월.

근무 햇수로 19년.


40대를 훌쩍 넘긴 나의 인생 중에는 길다면 긴 회사 생활이 있다. 사실상 내 하루의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다. 나는 내가 마흔이 되면 프로 일잘러, 자신감 있는 어른의 모습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흔이 되니 오히려 더 약한 모습이 생겼다. 흔들리는 멘탈이다. 회사 생활은 늘 그렇듯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다. 크든 작든 꼭 멘탈이 흔들린다. 마흔이 되기 전까지는 멘탈이 흔들린 적이 없었다는 말이 아니라, 이렇게까지 자주 흔들릴지 몰랐다는 의미다.


2년 전, 2년 간의 육아휴직 후 회사로 복직했을 당시 일이다. 근무 환경에서 큰 변화가 생겼다. 근무지도 본사에서 사업소로 이동하게 되었고, 나의 직책은 중간관리자로 바뀌었다. 길고 긴 회사 생활에 마흔이 넘어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업무와 책무를 맡았다. 분명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는데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부서 내에서 내 처신과 행동거지도 신경이 쓰였다. 처음 만나는 직원들은 이런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갓 입사한 신입사원처럼 패기와 열정 넘치게 모르는 것을 묻고 돌아다니며 새로운 경험을 적극적으로 쌓아가면 좋으련만. 위로 아래로 이런저런 눈치만 보는 상황이었다. 이런 내 모습이 싫어진다. 이젠 회사가 내 감정을 장악하고 있다.


멘탈이 흔들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프로 일잘러로 보이고 싶은 거다. 새로운 업무를 완벽히 받아들이지도 못했으면서. 한마디로 현실 파악은 못하고 꿈만 크다. '근무지, 업무, 직책까지 다 바뀌었잖아. 적응 못하는 건 당연해. 그럴 수 있어.' 나 자신에게 핑계만 늘어놓는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내 고민을 나눌 사람이 필요하다.


늦은 5시 50분.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 메신저가 바쁘다. 같은 사옥에 근무하는 신랑에게 말을 건다.

"언제 퇴근해?"

"몰라. 오늘은 일이 많아. 부장님 퇴근하시는 거도 봐야 해."

"마포 도화동에 허름한데 장사 잘 되는 떡볶이집 기억하지? 좁은 골목길에 줄까지 서서 기다리잖아."

그의 대답과는 상관없이 내가 이어 말한다.

"나 오늘은 집에 가기 전에 거기 들렀다 가고 싶어."

"휴, 알았어. 상황 보자."


신랑은 미식가다. 웬만한 분식집은 거들떠도 안 보는데, 그 떡볶이 가게의 꾸덕진 빨간 양념에 묻힌 가래떡 떡볶이는 좋아한다. 나는 커피를 워낙 좋아해서 매일 원두커피를 마신다. 카페에 가서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며 생산적이지 않은 이야기 나누는 것도 좋아한다. 하지만 그는 소모적인 이야기는 싫어하며, 커피를 호로록 단숨에 마실 뿐 아니라, 다 먹은 후에는 카페를 나가자고 한다. 그러니까 그와 내가 동시에 좋아하는 떡볶이집이 최선의 선택이다. 떡볶이가 있어 다행이다.


우리 두 사람의 단합 대회는 분식집에서 하기로 한다. 회사 주차장에서 만나 차를 탈 때까지만 해도 별생각은 없었다. 분식집 인근 주차장에서 내려 차 문을 탁 닫는 그 순간, 설레기 시작한다. 그와 팔짱을 끼거나 손을 잡는다. 분식집을 향해 걸어가는 좁다란 골목길에서도 설렌다. 남편과 손을 잡아서 설레는 건지도 모른다.


규모가 크지 않은 분식집이라 퇴근시간에 몰려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사람이 너무 많은데?"

"그러게, 사람이 너무 많은데?"

같은 말을 하고 있지만 내포된 뜻은 다른 모양이다.

"얼마나 맛있길래 이렇게 사람이 많을까? 빨리 먹고 싶네."

나는 대기 줄의 맨 끝에 자리를 잡는다. 아이가 학원 갔다 집으로 돌아올 시간을 감안하면 1시간이 있다. 우리 집은 분식집과 가까운 거리이긴 하나 줄이 쉽사리 줄어들 것 같지 않아 걱정이다. 주문까지는 아슬아슬하게 할 수 있다고 해도, 자리를 잡고 먹는 데까지는 또 추가시간이 걸릴 테니까.


"주문 먼저 하세요."

"떡볶이 2인분, 김밥, 순대, 김말이 2개요."

쫀득한 떡볶이를 꼭꼭 씹으면 정말 맛있다. 너무 맛있어서 기분이 다 좋아진다. 달달하면서도 매운맛에 스트레스가 날아간다. 회사일은 잊고 떡볶이에 집중한다. 김말이 튀김은 새빨간 떡볶이 국물에 푹푹 담근다. 아주 하찮았던 스트레스도 빨간 국물 속으로 푹푹 담긴다.

떡볶이를 먹는 데 걸리는 시간은 길다면 길고 다면 짧은 20분. 이 시간이 참 좋다. 떡볶이를 먹으며 회사, 아이들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가볍고도 무겁게 나눈다. 기분이 좋아져서 웃음이 나온다. 좋아하는 음식을 신랑과 함께 나눠 먹으니 더 맛있다.

 

"그래서, 업무 마스터는 했어?"

나는 말없이 신랑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고개를 떡볶이 쪽으로 숙인다. 업무 역량이 부족하다고 느낀다면서 나는 적당히 노력을 한다. 적당히는 누구나 한다. 슈퍼 노력은 안 하면서 고민만 하고 잘하길 바라는 건 억지다. 정답은 있다. 추가시간을 들이더라도 내 업무를 마스터하기. 다른 걸 생각하고 후회하며 자책할 때가 아니다.


"그래, 마스터해야지."

세차게 젓가락질을 한다. 마지막 하나, 홀로 남겨진 떡볶이는 내 차지다. 이거 먹으면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절도 포기도 않고 '마스터' 되는 거다. 더 이상 종종거리며 고민 안 하는 거다.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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