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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찰스 Nov 24. 2015

내가 기억하는 K

이별 편

- 내가 기억하는 K -


K는 꽤나 제 멋대로인 녀석이었다. 그를 오랜 시간 만나지 못했던 날들이 있었는데, 어떤 토요일 아침 일곱 시 정도였나. 성의 없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사진 좀 보내봐." 메시지를 세 번 정도 반복해 읽고 나서야 K의 뜻을 알아챌 수 있었다. 내가 보고 싶었구나.


한 번은 실수로(실은 다분히 의도적으로) K의 심기를 건드렸던 적이 있었는데, 그가 작고 예쁜 입으로 비속어를 사용한다는 것보다 놀라웠던 사실은, 나름의 방식으로 시샘을 했다는 것. 그러니까 결국 K는, 자신만의 방식대로 자유롭게 감정을 쏟아내는 중이었다.


난 그런 K를 좋아했었다. 순종적인 사랑을 추구하는 나로썬  내놔.라고 말할 수 있는 그가 좋았다. 그게 무엇이든 내놓고 싶었다. 아마 그가 내게 니 사랑  내놔.라고 했다면, 주머니 탈탈 털어  가져다주었을지도. 아쉽게도 K는, 끝끝내 내게로부터 무엇도 가져가지 않았고, 난 그런 K의 모습을 기억에 묶어두었다.


그 후로 또 오랜 시간 K를 만나지 못했는데, 이번엔 의심이 생겼다. 여태 내가 적었던, 제 멋대로지만 때로는 새끼 강아지처럼 순하고, 거칠지만 상냥한 감정을 쏟아주던 K는 실재의 K가 아니지 않을까.


내 기억에만 묶여있는 K의 모습, 나의 판타지로 인해 왜곡되고 각색된 K의 모습이지 않을까. 그리하여 내가 지금 K라고 착각하는 인물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가상의 인물, H나 P이지 않을까.


그럼에도 난 H일 수도 있고 P일 수도 있는 K가 보고 싶다. 어떤 형태로든 내게로 순수한 감정을 쏟아주던 그가, 여전히, 그립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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