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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찰스 Jun 14. 2016

각자의 방식

이별 편

각자의 방식


좋은 날들이었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며 빙글빙글 돌기도 하고, 풍경이 계속 바뀌고, 당신은 멀어지기도 했지만 곧 가까워질 거라는 선명한 사실이 늘 안심이 되었어. (중략) 내 좋은 친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목마에서 나를 내려주었다. 쿵, 단단한 땅에 발을 디뎠을 때, 갑자기 모든 게 무거워졌다. 후회하지마. 그래, 그럴게. 나는 나에게 다짐을 놓고, 나에게 대답했다.
- 황경신, 「국경의 도서관」중.


집에 돌아와 얼마 간의 시간을 보낸 뒤에, 괜히 멀끔하게 차려 입고 커피를 마시러 왔다. 이른 저녁쯤이라 카페 문을 닫을 때까지 세 시간 정도를 앉아 천천히 커피를 마셨는데, 그 사이에 출입구 윗 쪽에 달린 방울 소리가 들린 것은 서른여덟 번 정도였다.


가만히 앉아 커피만 마시기에는 조금 지루할지도 몰라 책 한 권을 꺼내 읽던 중이었는데 크지도 않은 방울 소리가 울릴 때마다 나는 문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어떨 때는 책 속의 이야기들을 단 한 줄도 읽지 못한 채 온통 귀에만 신경을 집중하여 방울 소리가 들려오기만을 기다린 적도 있었다. 이내 방울 소리가 반갑게 울려 그곳을 보면 역시나 생전 처음 보는 얼굴이라, 잔뜩 실망한 표정으로 조금 전까지 보던 이야기 부분에 눈길을 옮겨 둔다.


그러니까 나는 이 단순하고도 심심한, 때로는 불안해 보이는 행동을 며칠 째 반복하는 중이었다. 분명히 해가 떨어져 온갖 어둠이 몰려오기 전까지만 해도 가지 말아야지. 했는데, 함께 이 곳에 앉아있던 시간쯤이 되면 저도 모르게 이 곳으로 와 앉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 깃털처럼 가벼운 이별 같은 게 어디 있다고, 잘 알지도 못하는 그것을 쉽게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그와 함께 한 기억 또한 그에게 받은 물건들을 태워버릴 때에 걸린 시간처럼 순식간에 지워질 것만 같다 생각했고, 작별의 터널 초입쯤에 들어와서야 무섭다고, 다시 밖으로 나가고 싶다고, 햇살이 부서지던 그 날의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여기 와 앉아 목청 껏 소리를 지른다.


내가 하는 헤어짐의 방식이 이러하여 이런 행동을 반복하는 것은 비록 그와 나누었던 이별의 방식에 대한 대화와는 반대되는 것이지만, 티끌만큼도 부끄럽다거나 바보스럽다거나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러나 방울 소리를 내며 들어오는 이가 낯 선 사람일 때, 주저앉을 뻔한 눈길을 책 속으로 올려다 놓는 일은 상당히 부끄럽고, 바보 같고, 영판 힘든 일이었다.


그가 오고 있음을 확신하며, 그가 열고 들어올 문의 방울 소리를 기다리며, 그에게 시를 한 편 적었었던 그 언젠가의 내가 기억이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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