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편
- 내가 만났던 촌스러운 사람 -
처음 신고 간 구두가 불편해서 새로 하나를 사야 했어. 알잖아, 내가 갔던 그 도시엔 계단이 너무 많았거든. 그런데 새로 산 것도 편하질 않아서, 발이 퉁퉁 부어올랐어. 할 수 없이 세 번째 구두를 사고, 네 번째 구두를 사고, 그러다 보니 다섯 켤레가 된 거야. 그러고 나서 알게 됐어. 제일 처음의 구두가 제일 편했다는 걸.
- 황경신, 「국경의 도서관」중.
그는 새 것보다는 오래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디지털 보다는 아날로그 감성을 좋아하고, 문자 메시지 보다는 손으로 눌러쓴 글을, 티브이 보다는 라디오를 좋아했다. 이야기도 마찬가지였다. 낯 선 사람들과의 새로운 이야기보다 사랑하는 이와 공유했던 기억을 곱씹는 것을, 열 번이고 백 번이고 행복했던 기억의 조각을 다시 꺼내어 보는 일을 유독 좋아했다.
어느 날 그가 찾아와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했다. 봄 햇살이 가득한 정원에 앉게 되었다고, 그곳엔 따뜻함이 잔뜩 묻어 있는 탁자와 의자가 있고, 마주 앉아 차 한 잔을 같이 할 사람이 있다고 꽤나 보기 좋은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그 시간이 곧 끝날 줄 알고 있었지만, 구태여 그의 기쁨을 망치고 싶지 않아 잠시 내버려 두기로 했다.
역시나 얼마의 시간이 지나 믿을 수 없이 달콤하고 따뜻했던 정원에서 걸어나온 그는, 이별을 이야기했다. 그가 사랑했던 사람은 새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고 했다. 익숙해져버린 그 대신에 새로운 사람을 찾았고, 그가 매일 꺼내어 보던 오래된 이야기보다는 낯 선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다고, 서로의 하루를 채워주던 시간들 보다는 새롭고 흥미로운 그 무언가 들을 찾아 떠나갔다고 이것 역시 꽤나 보기 좋은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그와 함께 잠시 걷기로 했다. 그는 그가 앉았던 자리가 못내 아쉬운 듯 몇 번이나 고개를 돌려 보았지만, 점점 흩어져가는 그 자리엔 아무것도 없음을 확인하고서 터벅터벅 나를 앞질러 걸어갔다. 나를 앞지르던 그는 대체 새로운 것들에 뭐가 있는 거야?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게 뭔지 나도 확인해 봐야겠어. 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당신은 그저 당신처럼 살면 된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이것 역시 구태여 그의 자기학대를 망치고 싶지 않아 내버려 두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