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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찰스 Aug 05. 2016

아파라, 너는

이별 편

- 아파라, 너는 - 


원치 않던 타이밍에 아픔을 삼키며 이별의 글자를 꺼내던, 사실은 강제로 이별을 받아든 남자는 억울한 마음에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사랑을 읊어주던 자리에서.


우리가 함께했다면 너무나 빠르고 짧게 흘렀을 시간이, 마치 고장 난 초침 사이에 갇힌 듯 지루하고 더디며 고통스럽게 흐르더라. 그 사이의 네가 얼마나 이질적으로 변해있을지 생각하니 두렵다. 나의 세계는 아직도 한 칸을 내딛지 못하는데 그사이의 너는 시간의 조류를 타고 흘렀으므로, 이제는 내가 알던 네 모습 없을 것 같아 두렵다. 이 시간의 너는 얼마나 낯설어졌을 테냐.


이별이란, 순간의 한 지점이 아니라 구간인 것이다. 그러니까 남자는 아직 이별의 구간을 지나고 있는 중이었다. 어떤 젊은 이들은 때로 쿨. 이라는 말로 사랑이나 이별을 가볍게 이야기 했지만, 고리타분하고 고지식했던 게다가 촌스럽기까지 한 이 남자는 봄을 부르는 겨울처럼 충분한 시간을 들여 정성스레 이별을 하고 있다.


나는 갈등한다. 네게 다시 전화를 걸어 한없이 빠져들던 목소리를 듣고 싶고, 너 따위 내 삶과 기억에서 흔적도 없이 지워지길 기도하며, 내게 꼭 맞는 온도였던 네 품으로 나를 다시 안아달라 하고 싶고, 너는 왜 우리의 사랑을 지키지 못했느냐 비난하고 싶다. 뭐 그리 남은 마음이 많아 나는 너를 붙잡고, 네 기억을 붙잡고, 네 형상을 붙잡고, 이토록 분열 하는가.

여자가 떠난 뒤 남자는 하루도 빠짐없이 술을 찾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고, 잠들지 않았고, 울었고, 방황했다. 남자가 모처럼 떠난 사랑을 이야기 하려고 하면 누구도 그 아픔을, 그 사연을 들어주지 않았다. 주변 친구들은 남자를 유난한 놈쯤으로 생각했다. 당연히 그정도의 상실 따위는 가치없는 무엇으로 묶여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남자는 자신이 진실로 외로운 사람이었음을 깨달았다.

초침이 채 한 바퀴를 돌기도 전에 생각은 줏대없이 흔들린다. 어느날 약속이 없던 네가, 그날 마침 산책을 하고싶어진 네가, 또 마침 나와의 시간이 그리워진 네가, 이자리에 돌아와 주길. 그런가 하면, 나타나버린 네게 어떤 아픈 말을 골라 그 심장을 찔러야 하나 고민한다. 이 얼마나 한심스럽고 미련한 그리움이냐.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남자는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역시 이별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남자가 여자에게 전화를 걸어 그 목소리를 들어보길 바라지만, 자신의 앞자리에 앉혀두고 그 향기를 맡아보길 바라지만, 남자는 그다지 용기있는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그것을 권하진 않았다. 


나는 시간의 태엽에 휩쓸려 흔들리다 결국엔 몸을 뉘일 것이다. 그때에 내가 누울 그자리는 증오의 강변이길 바란다. 나는 여전히 네가 그리웁고, 애달고, 사랑스럽다. 고통과 비어있음이 선명하여 너를 적는 글자마저 아프다. 그러니 나는 기어이 증오와 미움에 물들어, 일말의 아픔과 미안 조차 느끼지 않는 사람이 되길 기도한다. 다만 너는 아파라. 못하고 못해도, 나만큼은 아파야한다. 숨도 못쉬게.

_ 여름의 중간쯤에서. 마지막이길 바라며.


이별의 구간은 생각보다 길고, 아프다.

원망이 깊어질수록 견딜 수 없는 자괴감이 남자의 목을 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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