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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찰스 Aug 09. 2016

이제야 이별

이별 편

- 이제야 이별 -


저녁 바람은 상냥한 나무 그늘 속에서 속삭이고 오월의 은방울들은 잔디에서 바스락거린다. 파도가 포효하고 밤꾀꼬리가 노래한다, 아델라이데.

- 황경신,『아마도 아스파라거스』중.


"너는 계속 나만 좋아할 줄 알았어."

이 년 전 헤어진 여자의 입에서 나오기엔 조금 어색할지도 모를 말이 과감한 어투로 흘러나왔다. 직선으로 뻗어나간 그 말 뒤로는 어쩐지 보이지 않는 아쉬움 같은 것들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원하는 답이 있었을 리 만무하지만 남자는 신중하게 단어를 골라 대답했다.


"너무 힘들었어. 힘들고, 힘들고, 힘들다가, 잊은 것 같아."

둘은 가을에 만났지만 여름처럼 뜨겁게 사랑했고, 겨울에 헤어진 사이답게 시리고 추운 이별을 했다. 그 사이를 함께 했던 시간은 방대한 기억을 만들어 냈으니 여자의 근거 없는 믿음도, 남자의 단순 명료한 변명도, 어쩌면 둘 사이엔 당연한 말이었을지 모른다. 


"좋은 사람 만나."

분명히 이 년 전에도 여자로부터 나왔던 문장이 한 번 더 반복됐다. 그러나 그때와 달리 지금의 여자에게는 체념이거나 새로운 아픔일 수도 있는, 진실한 응원 같은 것들이 한 데 어우러진 말이었다. 남자에게는 두 번째 이별이었다. 남자는 미지근하게 식어버린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며 첫 이별과는 달리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

"너도."


남자가 먼저 일어나 문 밖으로 나섰다. 여자는 그대로 앉아 그의 자리를 응시하다가 약간의 시간이 지난 뒤, 역시 문을 나설 테다. 각자의 방식대로 떠나갔지만, 문을 열고 세계로 나가는 둘의 표정은 꼭 같은 정도로 시원했다.


그들이 마주 앉았던 자리는, 그저 빈자리로 남았다.

마침내, 두 번째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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