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두번째이야기_남자편

by 김찰스

"그래서, 그래서!? 뭐라고 했어!?"

"뭘 뭐라고 해, 그냥 내 생각 얘기했지."

"그러니까, 니 생각이 뭐냐고. 따라 갈 거야? 아님 기다릴 거야?"

"모르겠어, 나도 이제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진짜."


본래 내 이야기를 어디든 옮기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이런 류의 고민은 보통 혼자서 하는 편인데, 머릿속이 상당히 복잡했던 관계로 친구를 만나 일련의 과정들을 모두 풀어 놓았다.

유일하게 내 곁에 남아있는 대학 시절 여자 동기.


가끔 만나 밥도 먹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꽤 믿을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친구, 그리고 아무래도 여자니까 이런 이야기를 잘 들어줄 것 같았다.


"내가 볼 땐 장거리 연애도 나쁘지 않을 거 같은데? 근데 왜 미리 헤어지려고 하는 거야?"

"아 알지, 나쁘지 않은 거. 나도 아는데, 언제라고 기약도 할 수 없는 기다림도 자신이 없고, "


"결정적으로, 떨어져 지내다가 서로에게 엄청 지친 상태에서 이별하는 게 너무 싫어. 문자나 전화, 메일 따위로 이별하는 건 정말 끔찍한 일이라고. 차라리 사랑이 남아 있을 때 헤어지는 게 좋은 모습으로 기억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 헤어짐도 더 단정하게 할 수 있고."


"아니 그러니까, 왜 헤어질 거라고 생각하냐고."

"헤어질 거라는 게 아니라 자신이 없다는 거야. 이런 마음을 품고 장거리 연애를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고."


"아니 그러니까!! 휴.. 됐다, 말을 말자. 하여간 넌.. 어휴..."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결국 아무것도 해소되지 않았다. 나와 같은 생각은 어디에서도 이해받기 힘든 사고방식인가. 물론, 누군가에게 나의 생각을 이해시키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모두가 나를 이상하고 답답한 녀석으로 보는 것처럼, 그녀에게 내가 그런 식으로 비춰질까봐 신경이 쓰일 뿐.


턱- 턱-


무거운 뒤꿈치를 들어 걸음을 옮기며 집에 돌아와 가방 또한 턱- 하고 던져 놓는다. 옷은 세탁기에 훅- 던져 놓고 욕실 문을 퍽- 하고 여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들리는 소리들이 온통 둔탁하다.


조금 경쾌하고 밝은 소리를 듣고 싶은데, 기껏 들리는 소리라고는 턱- 훅- 퍽- 이라니.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 같았다.


그녀에게는 아직 연락이 없다. 내가 친구를 만나러 간다거나 일이 바쁠 때, 연락을 하기 힘들 상황이면 항상 말없이 기다려주는 그녀. 집에 돌아왔으니 이제 그녀에게 '잘 놀다 들어왔다'고 연락을 해줘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알 수 없는 무거운 기류가 우리 주변에 잔뜩 끼어 있어, 전처럼 신나는 마음, 설레는 마음들이 잘 안 보이게 됐다는 것.


[우리 사월이 뭐하시나?]

[오늘 어땠어?]

[나 집에 왔어요.]


여러 가지 인사말을 찾아보다가, 결국 무심하게 보일 수 있는 짧은 글자를 적어 넣고 메시지를 보냈다.


[뭐해?]

[응, 집에서 그냥 쉬고 있지~ 찰스는 재밌게 놀다 왔어?]

[음, 그냥 그렇지 뭐~ 밥만 먹고 온 건데ㅋ]


'으으, 내 기분 탓인가. 왜 이렇게 어색하지.'

하여간 뭔진 모르겠지만, 어딘가 분명히 문제가 생긴 듯했다.


'이 상황을 타개할 무언가가 필요한데...'

아직 남은 시간이 한 달. 이대로 가다가는 출국하기도 전에 어그러지고 말 거라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안돼, 안돼.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와야 해. 우리 아직 시간 있다니까?!'


마음을 다잡아 가며,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그녀와 내게 주어진 시간이 얼만큼인지, 그중 얼마간을 함께 할 수 있는지, 그 기간 동안 무엇을 하는 게 좋을지, 생각이 닿는 대로 써내려 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선물이 생각났다.


기억.


그녀가 일본에 가서 뿐만 아니라,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지금의 청춘을 생각할 때 떠오를 수 있을만한 예쁜, 혹은 아주 슬플지도 모를, 그것도 아니라면 피식-하고 웃어볼 수 있을 정도의 그런.


기억을 주고 싶다.


나랑 여행 가자 강사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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