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소거법
기억 / 로나 박
바람이 버들가지 휘감아 돌아가듯
머리속 기억들도 시간에 휩쓸리니
나쁜 건 세월이 만져 희석되면 좋으리
묘하게도 세월이 흘러도 하나씩 올라오는 기억들이 있습니다. 메추리알을 삶으려고 물에 넣었을 때 올라오는 가볍고 오래된 알처럼 그냥 불쑥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지요.
슬픈 사랑의 기억이나 충격적인 배신 사건이나 심하게 심리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아팠던 기억들이 누구나 있습니다.
그런 기억은 꺼내거나 들춰내지 않는 데도 꿈에서, 잠깐의 일상에서 일순간 우리의 숨을 앗아갈 정도로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이런 강렬한 마음씀은 도대체가 나을 방도가 없어 보입니다.
정말 시간이 약일까요?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기억은 내 경험의 일부러 들러붙어 새로운 나를 만들어냅니다. 자칫 그 경험을 붙이기를 잘못하면 내가 깨어져버릴 위험도 있지요. 그래서 굉장히 노련함을 요구하는 마음 다스리기가 필요합니다.
그건 어느 누구도 대신 해줄 수 없습니다. 단지 매일 치솟는 마음을 달래고 수양하고 새로운 나를 받아들이면서 예전 나를 보내줘야 합니다. 극단적인 예로, 학대받은 사람이 학대자를 벌한다고 그 사람의 모든 문제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도 복수를 바라고 누군가에게 폭력을 가할 수도 있습니다. 한강이 쓴 채식주의자의 여주인공처럼 자신이 당해온 분풀이를 누군가를 향해 쏟아놓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표출하고 나면
과연 행복할까요?
전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씻겨지지 않은 아픔의 상처는 내가 내 안으로 깊이 들어가 그 내부를 들여다보고 내가 희생당한 부분과 내가 가해자가 될 수 있는 요소까지 함께 굽어보면서 성찰할 때 희미해집니다.
완전하지 않은 나를 돌아보고 내 불안정성에서 타인을 바라봅니다. 용서라는 거창한 말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픈 상처를 보듬고 자신을 위해 울어주고 다시 보듬어주고 참아내는 자신을 토닥여주면서 아픈 나를 위로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피해자로 자신을 인식하면
존재로서 약해집니다.
존재로서 소명을 다하는 것은 존재로서의 권리이자 의무입니다. 자신을 올바로 다독여주는 연습을 꼭 해야합니다. 나쁜 기억으로 인해 자신에게 스스로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