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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부 시인의 "봄"

봄은 반드시 온다

by 박바로가

봄 / 이성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2)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9)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10)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12)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16)


이 시는 봄을 의인화하여 마치 시적 화자가 봄을 친구처럼 기다렸다가 반갑게 맞이하는 내용을 보여준다.

의인화 된 봄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라고 묘사된다. 어차피 올 너는 언젠가 오겠지만 이상하게도 3-9행까지 상황에서는 더디게 온다. 기다리지 않으면 후딱 와 날 깨우고 , 어디 오나 여기저기 둘러보면서 내 스스로 섣들굳들하면 코빼기도 안비치고 어디 선가 뻘밭이나 썩은 웅덩이나 이런 곳에서 짖궂게 놀다가 지쳐서 나자빠져 있다. 내(시적 화자)가 하도 네(봄)가 안오면 마음이 급해져 바람을 보내서야나 그제서야 눈을 부비며 피곤해서 들어누워버린 곳에서 일어나 눈 비비고 내게로 천천히 찾아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너를 고대하고 고대하였건만 정작 너를 보면 나는 한없이 작아진다. "더디게 더디게" 온 네가 너무나 눈부셔서 똑바로 쳐다볼 수 없어서 만나자마자 너를 와락 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상황인가? 덥썩 너를 안아서 너의 발을 공중으로 들려 너를 빙빙 돌리고 싶은데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심지어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 "반갑다, 봄아!" 이렇게 외치고 싶은데도 목소리가 안나온다. 봄이 너무 반가워서 나는 벙어리 삼룡이가 된 것 같다. 애가 타는 마음을 가까스로 주체하고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데 마음이 몹시 행복하다.

언제 왔건 무엇을 하고 왔건,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인 것이다. 그 추운 겨울을 물리치고 나를 찾아 왔으니 말이다!


#시평론 #시야놀자 #아름다운시 #이성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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