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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길 시인의 "설날 아침에"

희망의 속삭임

by 박바로가

설날 아침에/김종길


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

새해는 그런 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3)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파릇한 마나리 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8)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13)


세상은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 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 (17)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23)


총 5연 23행의 시로 씌여진 김종길 시인의 "설날 아침에"라는 시는 삶에 지쳤을 때, 본심을 잃어갈 때, 삶의 의욕이 떨어졌을 때, 읽으면 힘이 나는 시이다.

처음 1연의 3개의 행에서 밝힌 바와 같이, 추위 속에 오는 설날일지라도 마음만은 따뜻하게 맞이하라고 권한다.

그 다음 연에서는 추운 겨울 물고기 숨쉬듯, 미나리 싹 피우듯, 봄날을 꿈꾸듯 한 겨울이 추워도 꿈을 가지고 쫒아갈 만큼 마음을 강하게 먹으라고 우리에게 말해준다.

3연에서는 지금, 현재 살고 있는 이 시간에 따뜻한 떡국 한 그릇을 먹을 수 있음을 감사하라고 충고한다. 꿈만 가지고 살기에는 현실감각이 부족해지기 쉽다. 그래서 꿈을 꿀 줄 알면, 나의 현실도 있는 그대로 인정하라는 뜻이다.

4연에서는 세상이 각박하다고 해도 나이를 먹은 지혜로 그 험난한 세상사를 더 착하고 슬기롭게 해쳐나갈 것을 권한다.

마지막 5연에서는 매해 춥게 맞이해도 올해도 이 해가 새해인듯 맞이하라고 충고한다. 이제 막 어린 것들이 고운 이빨을 잇몸에 돋아내듯 매해마다 어린아이가 된 신기하고 진기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을 가지라고 우리에게 권한다.

이미 구정도 지나고 대보름도 지났다. 그 사이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세파에 쓸렸는지, 세상의 험난함에 지쳤는지, 나도 모르게 어떻게 삶을 살고 있는지, 내 자신을 잃어가는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곤 한다. 이런 세월의 덧없음을 느낄 때, 이 시를 보니, 마음에 위로가 되었다.

막 태어나 치아가 나는, 잇몸을 찢고 나오는 치아를 처음 가지게 되는 아이처럼 경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라는 마지막 연은 참으로 마음에 와닿는다. 2연에서는 꿈도 잊지 말라고 가르치고, 3연에서는 현재가 어려워도 현재와 여기에서 살고 있음을 잊지 말라고 충고해준다. 심지어 4연에서 세월탓, 나이탓 하기보다는 연륜이 쌓인 사람으로 더 선하고 슬기롭게 살아가라는 지혜를 알려준다.

어느 정도는 따끔하면서도 전체적으로는 부드러운 어조로 삶의 지혜를 일깨워준다. 그래서 그 지혜를 들려주는 김종길 시인의 어진 마음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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