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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호 시인의 "국화가 피는 것은"

국화조차 자신을 위해 홀로 피지 않는다

by 박바로가

* 국화가 피는 것은 - 길상호


바람 차가운 날

국화가 피는 것은

한 잎 한 잎 꽃잎을 펼 때마다

품고 있던 향기 날 실로 뽑아

바람의 가닥에 엮어 보내는 것은 (5)

생의 희망을 접고 떠도는 벌들

불러 모으기 위함이다

그 여린 날갯짓에

한 모금의 달콤한 기억을

남겨 주려는 이유에서이다 (10)

그리하여 마당 한편에

햇빛처럼 밝은 꽃들이 피어

지금은 윙윙거리는 저 소리들로

다시 살아 오르는 오후

저마다 누런 잎을 접으면서도 (15)

억척스럽게 국화가 피는 것은

아직 접어서는 안 될

작은 날개들이 저마다의 가슴에

움트고 있기 때문이다 *


이 시는 국화의 존재가 스스로 있기 위해서보다는 다른 존재를 보듬어 주는 존재로 꽃을 피우는 것을 보여준다.

1~5행까지 국화가 추운 계절조차 향기를 품는 것은 무엇일까 궁금증을 자아낸다. 왜 하필 추운 날을 골라서 국화는 피는 것일까? 다 좋은 시절 두고 피는 까닭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그러다가 쏟아낸 시인의 생각은 "생의 희망을 접고 떠도는 벌들 불러 모으기 위함이다." 이제 삶을 다 하고 마지막 꿀을 나르는 벌을 위해 한번이라도 더 꿀을 주기위해 꽃을 피우고 있다고 시인은 말한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의 이유인가?

그리하여 마지막까지 꿀을 모으려는 벌들이 다시금 밝은 꽃 주변에 모여서 윙윙거리며 "다시 살아 오르는 오후"를 같이 만들어 간다. 다른 꽃들이 져서 배고픔에 시달릴 벌들을 위해, 마지막 겨울이 오기 전에 꿀을 비축하려는 벌을 위해, 다음 세대를 위한 마지막 비행을 하는 벌들을 위해 노란 극화꽃은 활짝 펴서 그들에게 팔을 크게 벌려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작은 생명체인 "벌들"은 그냥 생명체가 아닌 "저마다의 가슴에 움트는" 날개를 지닌 생명체이다. 이 지점은 단지 벌들이 그냥 벌이 아닌 작은 희망을 가진 사람들까지도 포함할 수 있겠구나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물론 작은 생명인 벌들도 저마다의 가슴에 무엇인가 움트는 것이 있겠지만 "작은 날개들이 저마다의 가슴에 움트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말은 가슴에 무엇인가 희망을 품고 언젠가 날아가고 싶다는 소망을 가진 사람들,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고 무엇인가 꿈꾸는 사람들, 추운 세파에도 마음을 닫지 않고 계속 꿈을 꾸는 사람들을 은유하고 있다.

그래서 "작은 날개들이 저마다의 가슴에 움트고 있기 때문이다"는 말은 울림이 있다. 그리고 국화 역시 그런 꿈을 가질 수 있게 도와주는 큰 역할을 해주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노란 국화는 날개를 가진 벌들도 품어 주었고, 심지어 추운 계절까지 늦게까지 피어서 오상고절의 기개를 펼쳐 꿈꾸는 자들에게 희망을 주며 격려하기까지 한다. 이 얼마나 남을 품어주는 큰 아량인가?

결국 이 시에서 나오는 국화는 인간에게는 그냥 국화꽃이 아닌 그 이상의 의미로 다가온다. 꽃으로서 영감을 줄 수 있기도 하고 지치고 고달픈 만물을 감싸안는 모성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추운 겨울 오롯이 홀로 피어도 자신만을 위해 피지 않는 큰 존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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