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벗
묵화
김종삼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영화 "워낭소리"가 떠올랐다.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할아버지와 소였는데 이 시에서는 주인공이 할머니와 소이다. 그러나 영화와는 다른 메세지를 우리에게 준다.
목을 축이는 소가 전경에 나오고 그 소의 목에 천천히 올라오는 할머니의 주름진 손. 보통 소가 물을 마실 때는 목마름을 해소하는데 여념이 없어 경계를 풀고 있는 중이라서 누구의 손이 올라오면 깜짝 놀라기 마련이다. 그러나 소의 놀라는 묘사는 없다.
오히려 할머니의 작은 탄식과 같은 독백이 나온다. "이 하루도 함께 자났다"라는 짧은 말. 할머니가 소와 함께한 시간이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는 대사이다. 특히, '도'라는 격조사의 쓰임으로 그 둘의 시간이 오래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할머니는 소의 목을 매만지면서 서로의 발잔등이 부음을 위로한다. 같이 한 오늘의 일도 그러려니와 다음의 일 역시 지금 같이 있는 소와 호흡을 맞춰 해야할 일이다. 하루 이틀 쌓인 일하는 파트너가 아닌 셈이다. 그래서 할머니는 소의 발잔등이 부은 것을 보면서 자신의 발잔등 역시 부어있음을 안다. 그리고 그 노동의 힘듬을 함께 한 동지라는 것도 암묵적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마지막 말에서 둘이 말을 나누는 사이는 아님을 강조한다. 할머니의 일을 도와주고 일을 수월하게 해주는 소이지만 할머니와 말을 주고받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소'와 '부은 발잔등'이라는 매개체는 할머니의 고단한 삶을 나타내주는 것이리라. 그래서 "적막하다고"라는 마지막 말에서 할머니의 고된 삶과 적막한 삶을 시인이 드러내려고 했다는 의도를 알게 된다.
우리의 할머니들은 어려운 시대를 겪어오면서 힘드는 많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해오신 여장부들이시다. 그런 할머니의 삶의 한면을 김종삼 시인의 시 "묵화"을 통해 볼 수 있다. 평생을 힘들게 살아오신 할머니들의 삶이 얼마나 고단한 삶이었을까 생각해보면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