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망록 / 문정희
남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남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가난한 식사 앞에서
기도를 하고
밤이면 고요히
일기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구겨진 속옷을 내보이듯
매양 허물만 내보이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사랑하는 사람아
너는 내 가슴에 아직도
눈에 익은 별처럼 박혀 있고
나는 박힌 별이 돌처럼 아파서
이렇게 한 생애를 허둥거린다
문정희 시인의 “비망록”에는 잊지 않으려는 “사랑”의 흔적이 보인다.
보통 비망록은 무엇인가 잊지 않으려고 기록하는 글이다. 전체적으로 큰 골자는 벌어진 일과 그 까닭을 설명하고 있다. 1연과 2연은 자신의 반성하는 글이 기록되어 있고 3연과 4연에서는 그 이유가 사랑하는 너를 가슴에 깊이 담아두고 있어서라고 대답한다.
1연에서 남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이기적인 사람이 된 것도 2연에서 마음이 양식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허물만 남은 사람이 된 것도 자기자신이 부족해서라고 자신을 책망한다.
그런데 그렇게 자신의 “한 생애를 허둥거리”는 것은 사랑하는 “너”를 자신의 “가슴에 아직도 눈에 익은 별처럼” 담아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결국 떠나보낸 너로 인해 나는 남을 사랑하지 못하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었고 너가 떠난 이후로 “가난한 식사 앞에서 기도를 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 또한 “밤이면 고요히 일기를 쓰는 사람”으로 자신을 반성하고 돌아보는 사람이 되지 못한다. 그냥 이제는 “구겨진 속옷”마냥 “매양 허물만 내보이는 사람”이 되고 만다.
“너”는 도대체 내가 얼마나 사랑하던 사람이었기에 무엇을 해도 나는 못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을까?
그것은 너의 기억과 흔적이 강렬해서 너가 없는 나는 모양 빠진, 귀빠진 커피잔과 같이 불완전해보이는 것이다.
구수한 커피가 예쁜 커피잔에 담겨
매트한 맛으로
목으로 넘어가는 그 감각적인 즐거움,
커피를 마시는 동안의 침묵의 시간,
커피를 마시고 나서이 여운
모두가
이 귀빠진 커피잔때문에 감소된 것처럼 나는 떠난 ”너“없이 어색하기만 하다. 그만큼 나는 뼈 시릴 정도로 아프게 “너”의 빈자리를 느낀다.
“별처럼 박혀 있“는 너의 흔적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무엇을 해도 내가 나로서 완전하게 못하게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강렬한 ”지난 사랑“의 흔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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