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 시인의 “가재미”

필멸의 존재로서의 인간

by 박바로가


가재미 / 문태준 시인



문태준 시인은 시적 화자와 그의 어머니 이야기를 쏟아낸다. 마치 시인은 자신의 분신인 시적 화자에게 자신이 미처 평소에 담아내지 못했던 감정과 후회를 표현한다. 어머니는 시간에서 약하게 변해갈 수밖에 없는 존재인 필멸의 존재로서 어머니와 결국 혼자 뒤에 남겨지게 될 자신조차 필멸의 존재임을 이해한다.


구체적인 병실이 이름이 시인의 경험임을 설명해 준다. 병든 어머니의 모습을 가재미로 표현하여 이제 땅으로 죽음으로 가까이 다가왔음을, 어머니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서글프게 설명한다. 그가 알았던 생기 있었던 어머니는 이제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아 붙은 야윈" 어머니이다. 죽음의 그림자로 그녀는 대낮의 뻐꾸기소리, 맛있던 국수를 마음껏 누리던 옛날을 뒷전으로 하고 있다.


그녀는 시간에 따라 필멸의 존재로 "느릅나무껍질처럼" 피부도 거칠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무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져 있다. 그리고 이제는 병상에 누워 원래 왔던 곳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 과정을 홀로 할 수밖에 없지만 시적 화자는 그것을 알면서도 어머니와 같은 자세로 눕는다. 그러나 시간의 운명으로 자신의 눈은 아직 가재미 눈이 되지 않는다.


인간은 인생이 풍랑을 만난 배로써 위태롭게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언제나 그 과정에서 지혜롭게 이겨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죽음이라는 큰 파랑에 휩싸였을 때 피해 갈 수는 없다. 시적 화자의 어머니는 가재미가 되어 흙으로 돌아갈, 무로 돌아갈 준비를 마쳤다. 이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아닌 죽음을 바라보는 눈이 되어 자신이 "필멸의 존재"임을 충분히 알고 있다.


시적 화자가 어머니를 놓아드리기엔 너무나 마음이 아파서 가재미처럼 누워 어머니를 부여잡아보지만 어머니는 이미 삶의 배를 놓고 죽음의 파도에 자신을 맡긴 상태이다. 그것을 아픈 마음으로 바라보는 시적 화자는 다른 눈으로 하나의 사물을 본다는 것이 시간 위의 존재로서 우리에게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이성적으로 짐작은 하지만 감성적으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하지만 시적 화자는 어머니의 눈물과 산소호흡기를 통해서 죽음의 세례를 조금씩 받아들인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가 인간으로서 영원하지 않으며 필멸의 존재라는 것을 다시금 깊게 받아들이게 된다.

그런데 이런 깨달음의 순간에 시적 화자의 어머니는 지금의 화자의 남은 삶을 잘 살아야 된다고 눈물로 축복까지 해주신다. 어머니의 한없는 자식생각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결국, 문태준 시인은 이 시를 통해, 하이데거의 『시간과 존재』라는 개념을 죽음이라는 유한성으로 시간의 영향을 받는 우리의 필멸성을 쉽게 풀이하면서 어느 시적 화자의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 우리가 존재의 한계에 봉착했을 때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지 진지하게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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