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윤 시인의 “달챙이 숟가락”

어머니의 희생과 헌신

by 박바로가



달챙이 숟가락 / 박병윤 시인


사실, 이 글에서 언급한 보릿고개를 거쳐 본 적도, 소태맛을 맛본 적도, 달챙이 숟가락을 본 적도 없다. 내가 이 분의 삶을 이해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오만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이 어머니의 이야기가 진솔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어머니의 삶은 헌신 그 자체였다.

불교적인 용어로 표현해 보자면, 어머니는 보살이시다. 가엾은 중생을 구하러 자신을 헌신하는 천상의 존재. 어머니는 굳은 일을 “가슴조려” 도맡아 오면서도 하지감자 “한 솥단지” 쪄놓았다는 마음으로 흐뭇해하시면서 자식들을 굶지 않고 잘 클 수 있도록 “하나죽어도” 모르는 그 맛을 만들어내신다. 그 어려운 시기에 배고픈 아이들을 위해 먹을 것을 만들어 내는 것도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그런 일상을 살면서도 어디로 도망가지 않고 끝까지 “한 편생 속마음을 도려”낼지언정 삶을 곁눈질하지 않고 똑바로 바로 보시면서 살아오신 분이다. 그 당시 어머니의 무기는 자신이 시집오면서 가져왔을 숟가락이다. 모진 세월을 자신의 숟가락 하나로 버티며 부엌일을 해내오셨다. 만약 자신을 위해서만 숟가락을 쓰셨다면 그 모양이 반달 모양 달챙이 숟가락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이제는 어머니는 “껍데기만 남은 생이 짠허당게”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어머니가 미각이 사라져서 소태맛이 난다고 하신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고, 그 동안 쓰디 쓴 삶이 입안에서 쓴 맛으로 형상화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자신이 거쳐 온 삶을 후회하시기보다는 “감자 맛도 소태여”라는 말로 담담하게 받아들이시면서 힘들고 고통스러웠을 삶을 짧고 담담한 어조로 일축하신다.

아마도 어머니는 살아오시면서 자식들을 어느 사업가나 어느 선생님이나 어느 검사로 키워냈을지도 모른다. 모든 자식들은 근면과 부지런함을 배웠을 것이다. 어머니의 가르침은 인생에서 현명하게 타협하는 방법과 가장 중요한 가치와 날카로운 교훈을 알려주셨을 것이다. 그녀의 반달 모양의 달챙이 숟가락은 자식들이 그녀의 보살핌을 다른 사람에게 나눠줄 수 있도록 반석 역할을 해주었을 것이다. 그래서 흥미롭게도 반절 비워진 달챙이 숟가락은 자식들의 사회의 기여에 의해 완전한 숟가락으로 마음속에서 재탄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랑스러운 그녀의 자식들은 그녀의 자랑이 되었을 것이다.

비록 그녀가 힘든 삶을 살았을지라도 지제 그녀는 자신이 선택하든 하지 않았든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고 그 결과 일어난 일조차도 인내로 감수하는 삶을 사셨다. 어머니는 그런 삶이 자신의 운명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자신의 필멸성도 억울하다는 마음보다 차분하면서도 해학적인 말로 죽음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있다. 아마도 달챙이 숟가락으로 평생 단련하신 어머니의 마음은 어느 것도 이길 수 없는 것이리라. 그래서 닳아진 숟가락은 닳아진 숟가락이 아니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머니가 평생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삶에서, 그리고 자식들이 어머니를 닮아가는 과정에서, 그 달챙이 숟가락을 한 개의 완벽한 숟가락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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